골프장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해문
제목 '골프장 살인사건'만 보고 골프채나 골프공에 맞아 죽는 장면을 떠올린 것은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표지마저 골프공이 그려져 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허나, 살인 현장 근처에 골프장이 있을 뿐이었다. 이게 다야? 그게 전부다. 흉기는 짧은 칼이고 시체가 발견된 장소는 별장 정원 근처 웅덩이다. 뭐야? 골프장하고 아무 관련도 없잖아.
골프장을 포와로는 무질서하다며 무척 싫어하는데 다만 한 가지는 좋아한다. "티 박스들 말이오, 공을 얹어 놓는 거. 적어도 그것들은 균형이 잡혀 있지."(73쪽) 해문의 표지는 적어도 이를 표현했다. 포와로에게 "'질서'와 '절차'는 종교와도"(13쪽) 같다.
여전히 황금가지의 표지는 내 상상을 지지한다. 맑은 하늘을 가로지르다가 골프장 근처를 걷던 사람의 머리를 강타하여 아주 그냥 죽여주는 새하얀 골프공을 말이다. 아쉽다. 내가 얼마나 기대했다고!
크리스티 여사는 반전의 여왕답게 세 번째 발표작에서도 여러 번 뒤집는다.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예상을 깨고나서야 결론에 도달했다.
포와로가 등장하는 두 번째 소설이다. 첫 번째보다 미스터리가 발전했다. 시체가 두 번 나타나고 20년 전 사건이 재현되며 한 사람이 두 사람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복잡한 수수께끼를 초창기에 써내다니, 경이롭다. 전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 커피잔으로 괴롭히더니, 이 소설에서는 단도로 사람 헷갈리게 한다.
로맨스를 강화했다. 사랑을 위해선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커플들. '스타일즈'에서 청혼했다가 퇴자를 맞았던 헤이스팅스는 '골프장'에서 자기 짝을 만나 키스한다. 왕자 신데렐라 쇼 하며 장밋빛으로 끝을 장식한다. ◆ 1회독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9
골프장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황금가지
2007년 1판
한국이 나온다. 지명으로 딱 한 번 나온다. 집사 가브리엘 스토너를 얘기하면서 나온다. "아프리카에서 맹수 사냥을 하고 한국을 여행했는가 하면."(111쪽) 애 여사님이 한국을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괜히 반갑다.
사건의 진상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추리소설을 읽으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처음에 읽었을 때 어리둥절했거나 사소하다고 지나쳤던 것이 새삼 다시 새롭게 보인다. 더구나 크리스티 작품의 특징이 아주 사소하고도 엉뚱하게 보이는 단서를 맨 앞에 놓고 끝에서 회수해서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 식이라서 더욱 인상적으로 읽힌다. 아, 이렇게 힌트를 줬구나. 그래도 진상을 알긴 대단히 어렵다.
작가는 셜록 홈즈를 의식하면서 푸아로의 캐릭터를 만들어 추리소설을 썼다. 이 소설에서 발자국과 담배꽁초를 중시해서 수사하는 지로 형사를 대비시켰다. 푸아로는 그런 증거보다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수수께끼를 푼다. 헤이스팅스가 미인을 보고 '여신' 봤냐고 묻자, 푸아로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아가씨'가 보일 뿐이라고 답한다. 에르퀼 푸아로는 사람의 심리를 본능적으로 관찰하고 심문을 통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곰곰 생각한다.
트릭의 복잡함과 반전의 연속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여기에 목숨 같은 사랑으로 마무리한다. 수수께끼의 정교함은 세계 최고다.
황금가지 번역본의 오탈자는 여전하다. 띄어쓰기가 멋대로다. ◆ 2회독 2014. 07.09
The Murder on the Links (1923)
Agatha Christie
제기랄(Hell! said the Duchess.)로 시작해서 제기랄(Hell! said the Prince-and kissed her!)로 끝난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언급하며 푸아로 시리즈 두 번째를 이어간다. "The Styles Case? the old lady who was poisoned? Somewhere down in Essex? the Cavendish Case."
애거서 크리스티는 셜록 홈즈와 다른, 그래서 차별화된 탐정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작품에서 푸아로는 자신은 발자국과 담뱃재를 추적하는 '사냥개'(The human foxhound)가 아니라 회색 뇌세포(자신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쓴다.)를 쓰며 왜 그런지에 대한 답을 내는 전문가라고 말한다. 육체보다는 머리를 쓰는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안락의자형이라고 표현했지만 푸아로는 대체로 현장에 가는 편이고 발자국를 비롯한 현장의 여러 단서를 관찰하고 수집한다. 그러니까 푸아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논리적 추리다. 증거 수집, 필적 조회는 그런 전문가한테 맡기면 그만이지만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자신이 전문가라는 얘기다.
푸아로는 현장에는 가지 않고 수사관 재프(Japp)의 말만 듣고서 플리머스 급행열차 사건(The Plymouth Express Mystery)을 해결했다고 말하는데, 이 이야기는 단편집 패배한 개(The Under Dog and Other Stories)에 있다.
전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 이어 헤이스팅스의 일인칭 서술이다.
시작부터가 특이하다. 의뢰인의 집에 도착하니, 의뢰인이 살해당했다. 이런 식의 시작은 다른 작품 '벙어리 목격자(Dumb Witness)'에서 또 한 번 반복된다.
without doubt. 이 말을 자주 반복한다. 거슬린다. 초보 작가 티가 난다. ◆ 3회독 영어원서 2015.07.16 ~ 20
골프장 살인사건
해문
2010년 중판
번역은 괜찮은데, 접속사 뒤에 쉼표는 거슬렸다.
용의자들 모아놓고 사건 추리하는, 푸아로 파이널이 이 작품에는 없다.
뒤집기 반전이 워낙 많아서 짜증 혹은 곤란할 지경이다. 독자가 범인 못 맞추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집필 목표로 삼은 탓이겠지. 이래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푸아로가 지로랑 범인 잡기 내기를 하는데 그냥 돈이다. 각색한 드라마에서는 푸아로가 지면 콧수염을 미는 거고 지로가 지면 담배 파이프를 주는 거로 나온다.
미스터리가 워낙 복잡해서 따라잡으려면 생각 좀 해야 한다. 드라마 각색은 더 간결하게 바꾸고 더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로맨스를 제대로 다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랑하는 두 남녀. 특히, 헤이스팅스의 사랑. 드라마는 더 멋진 장면으로 연출해서 보여준다.
추리물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클리셰가 보인다.
1. 사건 의뢰를 받아서 가 보니, 의뢰인이 살해되었다.
2.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범죄 사건이 재현된다. ◆ 4회독 2025.1.27
헤이스팅스는 전편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 제대 후 국방부에 취직했다더니, 이번 '골프장 살인 사건' 편에서는 국회의원 비서로 일하고 있다.
푸아로는 범죄의 심리학, 즉 범인의 마음을 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적 증거들은 그 심리적 일관성에 맞아야 범죄 수수께끼가 풀린다.
이야기의 중간쯤에 두 번째 시체가 나타난다. 역시 추리소설 쓰기의 대가다. 괜히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부르겠는가. ◆ 5회독 영어원서 202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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