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지 않는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21세기북스(북이십일) 펴냄
이 책의 기본은 불교다. 불교는 인생 문제 해결 방법으로 욕망을 줄이거나 없애버리는 길을 택한다. 해탈이다.
사람은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수련을 해야 한다. 이 책 읽는다고 바로 화를 내지 않게 되지는 않는다. 제목처럼 연습이 없다면 자기 중심적 생각을 버리기란 불가능하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실행하는 것 사이에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욕망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책 아무리 여러 번 읽어 봐야 잠깐의 자기 만족이라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을 뿐이다.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은? 이 질문에 대해 지은이의 대답은 "마음의 관찰법"이다. 코이케 류노스케는 수행의 기본 경전 '대념처경'의 첫머리를 인용한다.
욕망이 있는 마음을 욕망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 것,
욕망이 없는 마음을 욕망이 없는 마음이라고 알 것,
반발이 있는 마음을 반발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 것,
반발이 없는 마음을 반발이 없는 마음이라고 알 것.
181쪽
잘못 타이핑했다고? 아니다. 왜 같은 말을 반복하냐고? 책에 적혀 있는 그대로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솔직히 '뭐야? 이게 다야?'라고 실망했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 182쪽
화내는 감정에 휩싸이면 냉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이 화를 내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 감정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주관의 환상이 아니라 객관의 사실에 집중하면 헛된 욕망을 마음에서 떼어내 볼 수 있다.
조선일보를 보는가? 당신은 조선일보적 주관에 따라 세상을 편집해서 본다. 한겨레를 읽는가? 그대는 한겨레적 세계관으로 세상에 일어난 일을 해석해서 생각한다. 신문에는 '사실'이 아니라 '선택된 사실'이 실린다. 기사는 기자 혹은 편집국이 자기 주장하면서 사실처럼 이야기로 꾸민다.
대표적인 예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에 대한 보도다.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만 짜깁기해서 그럴 듯한 이야기로 기사를 만들었고, 그 기사를 읽은 사람들조차 그 선택된 사실에 열광하며 자기를 쏟아냈다. 사실은 뭐였는가? 돌연사였다.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집착이 망상을 낳으니, 그 집착을 버려야 마음이 평온해지고 화내지 않게 된다. 당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새 차를 샀다. 기분 좋게 차를 타고 출근했다. 퇴근해서 차를 보니 조수석 문에 1센티미터 정도 뭔가에 긁힌 자국이 보인다. 당신은 화내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현실을 산다기보다는 욕망으로 산다. 자기계발서는 자기 욕망의 실현이다. 타인한테 인정받고 자기 기분 좋으면 인생 성공이고 행복 만세다. 출세해라. 유명해져라. 부자가 되라. 자기 꿈을 생생하게 상상하고 생각하고 실현시키려고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죽을 똥 싸며 아둥바둥이다.
그런 당신에게 이 책은 한 방 이렇게 날린다. "소원은 이루어지는 순간 공허해진다." 뭐야? 이 책 쓴 사람 돌았나? 욕망의 실현은 순간적인 자극과 쾌락이지 지속적인 평온과 안락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쓰는 이는 드물다. 쓰기도 전에 다른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소설 쓰는 일보다 그 외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운다. '이렇게 쓰면 출판이 안 될 것 같은데... 요즘 대세는 판타지야, 판타지를 써야 팔려.'
"일하고 싶다거나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행동하는 편이 훨씬 더 충실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다."24쪽 "마음속에 아무것도 넣어두지 않고 텅 빈 상태인 '공(空)'의 상태를 만들면, 더할 나위 없는 충실감을 느낄 수 있다." 25쪽
글을 쓸 때는 글 쓰는 것만 생각한다. 나머지는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버린다. 그러면 글을 쓸 수 있다. 너무 단순해서 어이가 없다고? 이 단순함을 실천해 보라.
어느 등산가한테 왜 산에 오르냐고 질문했더니,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 책을 읽지도 불교를 공부하지도 않았으나 산행을 꾸준히 하면서 삶의 진리를 자신도 모르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그저 산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했다. 마음이 한결같은 이에게 세상은 평화로우리라.
2011.04.14
오늘부터 피아노 연주를 다시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내가 쓴 이 글을 다시 읽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해서 믿을 수 없는 진리는, 실천하기 어렵다기보다는 제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파이노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식이 익혀야 하고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돈처럼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아니다.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전체는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다시 독학으로 독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려는 지금 이순간 내 머릿을 가득 채우는 생각은 오로지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려는, 즐거운 마음뿐이다.
2015.10.27
# 댓글
깊은 하늘 2011.04.14 11:57
화내지 않는 연습.. 저는 너무 화를 참는게 문제인거 같은데.. 그것도 화를 내는 거겠지요?
빅보이7 2011.04.14 12:05
너무 참아도 문제죠.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는 욕망도 버리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더 화가 납니다.
저는 화가 나면 그걸 글로 마구 쏟아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게 해 놓죠.
어느 주부는 화가 나면 동네 근처 공터에 가서 벽에 대고 맥주병이나 그릇을 던져 깨뜨린다고 하네요. 좀 위험해 보이긴 합니다만, 스트레스 해소에는 그만이라고 하네요. 전 소심해서 아직 못 해 봤어요. 언젠가 해 보고 싶어요. 앗, 욕망이다. ㅋㅋ.
깊은 하늘 2011.04.14 15:10
벽에 맥주병을...켁~~
다음에 저도 정말 열받으면 한번 해봐야겠네요. ㅋ
공군 공감 2011.04.14 16:02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닐라로맨스 2011.04.14 21:24
화내는 자신을 인식한다라.... 어렵네요...저번에 서점에서 봤을때 끌린 책이었는데 한번읽어봐야할듯..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4.14 23:04
그것을 알아야지요.
어떠한 상황이 나에게 닥쳤을때
그리고 그후에 내가 낼 감정사이에는
분명한 갭이 있다.
그 갭만 인지하면
화를 참는개념이 아니라
화를 없애는 개념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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