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단편소설 19편을 수록한 책이다. '화성연대기'처럼 각 단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산만하게 이것저것 있다. '문신을 새긴 사나이' 이야기를 맨 앞과 맨 끝에 넣어 이야기 18편을 묶었다. 사나이는 온몸에 살아움직이는 듯 생생한 문신이 있다. 문신마다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과거 회상이면서도 미래를 예언하는 환상이다. 이 소설집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문신을 새긴 사나이'에서 미래에서 온 마녀가 새겼다는 문신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과거"다. 작가가 추구하는 소설이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짧은 소설은 장르가 모호하다. 과학소설이라지만 그다지 과학소설 같지 않다. 판타지, 우화, 공포, 괴기, 범죄가 뒤섞였다. 미래사회를 그리는 설정에 시적이고 몽환적인 전설 같은 분위기다.

썰렁하고 별 재미가 없지 않나. 이런 항의나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소설이 짧아서라기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기승전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 제시, 상황 끝. 이런 식이다. 단편소설이 아니라 이미지나 우화로 읽힌다.

'기나긴 비'를 보면, 한없이 비가 내리는 금성에서 피난소 일광 돔을 찾아 헤매는 군인들이 나온다. 이상하고 으스스하고 황당한 상황이다. 몇 사람은 이내 미쳐버리고 자살하고 절망한다. 마침내 돔에 도착한다. "문이 닫히자 비는 다만 욱신거리는 몸에 박인 기억에 불과했다."(120쪽) 그리고 끝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 혹은 썰렁한 농담. 갑작스레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니 사건이 발전하여 그럴 듯한 결말에 이르기를 바라지 말 것.

레이 브래드버리의 이야기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현대 문명을 매섭게 비난하며 화풀이를 한다.

집 안 놀이방에서 아프리카 초원을 생생하게 느끼거나(대초원에 놀러 오세요) 우주 미아가 되어 끝없이 추락하거나(만화경처럼) 금성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기나긴 비).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에서는 문학 검열자들을 비난하고 '역지사지'에서는 흑인차별을 역공격한다. '도로가 전해준 소식'과 '세상의 마지막 밤'은 전쟁에 몰두한 인류의 종말을 보여준다.

기독교 종교 분위기의 소설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그분이 오셨습니다'는 예수의 우주 미래 버전이고 '불덩어리 성상'은 외계인 기독교 선교다. 작가의 성찰은 상식적이면서 비판적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서 대단한 것인가. 아니다. "그 남자는 우선 병든 자를 낫게 하고, 가난한 자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위선과 부패에 맞서 싸웠고, 하루 종일 민중 속에 머물며 대화했다고 합니다."(85쪽) 종교인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인다. 서준식 같은 사람 말이다.

몇 편은 망작이다. 냉전시대 쓴 소설이라서 이제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글도 있다.

2015.08.02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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