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학소설'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24.10.13 파운데이션 6 [파운데이션의 서막] 아이작 아시모프 - 이야기의 시작
  2. 2024.10.11 파운데이션 5 [파운데이션과 지구] 아이작 아시모프 - 이야기의 끝
  3. 2024.10.10 파운데이션 4 [파운데이션의 끝] 아이작 아시모프 - 로봇이냐 아니냐가 중요해?
  4. 2024.10.06 에드워드 애슈턴 [미키7 : 반물질의 블루스] 적당히 웃긴 해피엔딩 과학소설
  5. 2024.10.04 파운데이션 1 [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 원자력 기술만 있는데...
  6. 2024.10.03 에드워드 애슈턴 [미키7] 유쾌하고 살짝 철학적인, 복제인간 이야기
  7. 2024.06.13 스타니스와프 렘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우주 여행 블랙 코미디
  8. 2024.06.13 스타니스와프 렘 [우주 순양함 무적호] 무생물 무적 존재
  9. 2024.06.13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불완전한 신
  10. 2024.06.03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책 없는 세상에서 되새기는, 책의 의미
  11. 2024.06.03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미래를 이야기하는 과거
  12. 2024.05.31 아서 클라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하드 에스에프
  13. 2024.05.31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 문명비판 우화 SF소설
  14. 2024.02.26 존 발리 [캔자스의 유령] 과학적 상상력과 미스터리의 결합
  15. 2022.09.02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소설과 영화의 차이
  16. 2022.08.29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필립 딕 - 현대 문명을 비웃는 허무 개그
  17. 2022.08.28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SF 단편소설 종합선물세트
  18. 2022.08.23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 코미디 SF 최종결정판
  19. 2022.08.16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불행 없는 사회
  20. 2022.08.09 조지 오웰 [1984] 미래의 음울한 전체주의 국가
  21. 2022.08.09 [내 이름은 콘래드] 로저 젤라즈니 - 신화적 SF
  22. 2022.08.08 파운데이션 2 [파운데이션과 제국] 아이작 아시모프 - 로맨스의 여운
  23. 2022.08.08 파운데이션 3 [제2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 원은 끝이 없다
  24. 2022.08.08 김상원 외 [내 몸을 임대합니다] 신체강탈자 이야기 모음
  25. 2022.08.05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하인라인 - 냉동수면과 타임머신의 절묘한 결합
  26. 2022.08.04 [은하영웅전설] 다나카 요시키 - 일본 SF 대작
  27. 2022.08.03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로버트 하인라인 - 인간적인 컴퓨터
  28. 2022.05.06 카렐 차페크 [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사랑과 생명은 불멸입니다
  29. 2022.03.09 어슐러 르 귄 [바람의 열두 방향]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30. 2021.10.03 [듄 4 듄의 신황제] 프랭크 허버트 - 신적인 존재

파운데이션의 서막 
Prelude to Foundation | 1988년
아이작 아시모프 | 황금가지 | 2013년

5권까지가 시리즈 전체 이야기의 끝이다.
6권이지만 시대순으로는 가장 처음이다.

현대정보문화사에서 나온 파운데이션은
이 책 6권 내용이 맨 앞에 있었던 모양이다.

‘파운데이션의 서막’은 이 시리즈의 출발점
심리역사학자 해리 셀던의 이야기다.

클레온 황제와 에토 데머즐 총리는
수학적으로 미래 예견을 하는 법칙을 
발견한 해리 셀던을 궁으로 불러 들인다.

황제는 셀던과 대화를 나눈 후 쓸모없다며 
쫓아내는데 그런 셀던을 기자 휴민이
도와서 황제의 추적을 따돌린다.

휴민은 셀던에게 "은하제국은 멸망하고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셀던은 트랜터에 있는 스트릴링 대학에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한다.

또한 자신을 도와줄 역사학자 도스를
만나서 사랑을 키운다.

역사학을 공부해도 진척이 없자
기상학 쪽으로 눈을 돌린다.

읽다가 포기했다.

1판 18쇄 135쪽 오탈자
당산이 -> 당신이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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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과 지구
Foundation and Eearth 1986년

아이작 아시모프 
황금가지 2013년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총 7권인데
이 5권이 시간순으로 마지막 이야기다.

지난 4권 '파운데이션의 끝'에서
집단정신 가이아를 선택한 트레비스.

트레비스나 이 이야기를 읽는 나나 찜찜하다. 
집단정신 초공동체라니, 개인의 자유가 없잖아.

5권은 찜찜함을 해결하고자 지구를 찾는다.
지구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일단, 지난 4권에서 언급된 '콤포렐론'에 간다.
중력 우주선을 빼앗으려는 리잘로 장관을 만난다.

장관과 거시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트레비스.
지구 찾아 떠나서 금지된 행성에 도착한다.

로봇화된 행성 지하에 사는, 양성체인 솔라리아인.
로봇으로 거의 다 자동화하고 인간 접촉은 최소화.

중후반부는 속독했다.
이런저런 고생 조금 하고서 드디어 지구 발견.

읽기에 지루했다. 사건보다 설명이 많았다.
그렇다고 사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추리소설식 전개랄까. 맨 끝에 짜잔하는 반전과
복선 회수를 겸하고 있다.

달에 접근. 2만 살 로봇 다닐 올리바를 만난다.
인류를 위해 헌신했던 다닐은 죽어가고 있다.

자신의 두뇌 기억을 심기 위한 개체를 불러오는,
다닐의 계획에 다들 놀아난 꼴이다.

트레비스는 우리 은하계에 지성 유기체는 인간이라고
결론 내리면서도 다닐의 기억을 물려 받게 될
양성체 변환 대뇌 능력자 팰롬을 애써 외면한다.

그렇게 끝났다. 팰롬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7권을 쓴 후 사망한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미완성이다. 이야기 전개상
5권에서 멈추고 말았다. 6, 7권은 파운데이션의 시작이다.

작가가 더 살았다면 8권은 5권 이야기의 끝을 이어받아서
팰롬의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것이다.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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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의 끝 
Foundation's Edge 1982년

아이작 아시모프 
황금가지 2013년

이 책 예전에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니 완독은 못한 듯.

서문에 지난 3권까지의 이야기를 잘 요약했다.
큰 그림만 그렸기에 각 권 읽는 재미는 남겼다.

제2파운데이션은 정신력에 치중한다.
지구 찾으려는 제1 파운데이션.

트래비스는 트랜터가 옛 지구일 거라 추측한다.
페롤랫 교수는 지구를 가이아로 불렀다고 한다.

제1파운데이션 트래비스 이야기와
제2파운데이션 젠디발 이야기를 교차해 서술한다.

추리소설 같은 진행과 결말이다.
맨 끝에서 질질 끄는데 아주 환장하게 된다.

결국 가이아라 불리는 집단정신행성에 조종당함.
제1, 2파운데이션과 가이아(뮬의 고향) 대치 상황.

그 유명한 로봇3원칙이 나온다. 이 원칙을 따른
가이아는 무력한 상태에 빠졌다. 이제 결단의 시간.

무력을 지배, 정신력으로 지배, 집단정신 속 평화.
트래비스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가이아를 택한 후,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데...
로봇이냐 아니냐보다는 감정에 충실하자는 식이다.

어차피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 작가도 이 선택을
강요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제시했다.

의문 하나가 해결되지 않았다.
왜 트랜터 도서관에 지구 관련 문헌을 삭제했는가?

가이아는 그에 대한 책임도 목적도 모른다는데.
트래비스는 지구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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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 반물질의 블루스 
Antimatter Blues (2023년)
에드워드 애슈턴 | 황금가지 | 2023년
3점 ★★★ 무난해

미키7의 후속작이다.
가짜 평화 협정 맺은 이후 2년이 흘렀다.

거주지 돔에 에너지 문제가 생겨서
반물질 폭탄/에너지원을 회수해야 한다.

안 그러면 겨울이 오고 사람들이 얼어 
죽게 된다는 사령관의 말에 미키7은 출발한다.

171쪽에서 폭탄 돌리기 유머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 더 읽을지 말지 결정될 듯.

약간의 전투와 다소의 곤욕을 치른 후에
전작과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이다.

잘 읽히고 적당히 웃기고
살짝 진지하게 철학적인 것은 여전하다.

적당히 잘 써서 잘 읽힌다. 너무 잘 쓴 것은
읽기에 부담스럽고 자칫 질투를 유발한다.

"잠재적인 목적지를 찾아냈다." 431쪽.
3편이 나올 것 같은데...

202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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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Foundation 1951년

아이작 아시모프
황금가지 2013년

아시모프의 소설은 재미있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지루해서 완독하기 힘들다.

읽다가 중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기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파운데이션은 그나마 드라마로 이미 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소설 이야기는 드라마와 많이 달랐다.
큰 틀거리와 주요 인물은 유사했다.

1권은 파운데이션의 설립과 
세 차례의 위기 극복 이야기다.

파운데이션은 은하제국의 멸망을 예견한
심리역사학자 셀던이 우주의 끝에 세웠다.

겉으로 은하백과사전 편찬을 내세웠지만
다 그의 계산과 예언에 따라 그곳에 마련된 것.

광물이라고 하나도 없는 터미너스에
유일한 경쟁력은 원자력 기술이다.

자, 파운데이션은 계속 다가오는 
'셀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군사력에서 절대적으로 약자인데
주변 강대국과 싸우지 않고 생존하려면?

위기 극복의 영웅들은 무력을 대신
다른 것을 이용한다. 과학 종교, 무역 경제.

주인공 한 명이 있는 게 아니라
각 시대별 주인공들이 나열되는 식이다.
해리 셀던, 샐버 하딘, 호버 말로.

역시나 원작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보여줄 장면이 너무 부족하다.

20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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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Mickey7 (2022년)
에드워드 애슈턴 | 황금가지 | 2022년
4점 ★★★★ 괜찮네요

봉준호 감독 영화 '미키17'의 원작소설이다.
영화는 개봉 전이다. 예고편은 나왔다.

복제인간 이야기. 
SF 과학소설 장르에서 흔한 소재다.

과연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관건이다.
'미키7'은 가볍고 유쾌하며 살짝 철학적이다.

잘 읽히고 소소하게 재미도 있다.
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해서 해피엔딩이었다.

초중반까지는 좋은데 후반이 별로였다는
평이 종종 보이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작가 스스로는 반전이 있는 훌륭한 결말이라고
여길 테지만, 너무 운이 좋아서 동화 결말 같다.

테세우스의 배 문제가 핵심인데, 거론만 할 뿐
딱히 더 전개하거나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

이야기 후반부에 외계 지능 생물체랑 대화에서
본질(오리지널을 번역한 듯)이냐는 질답을 한다.

네가 미키7이냐는 거였다, 복제 미키8이 아니라.
자신과 경험을 공유했느냐가 중요했다.
이 정도가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성찰이다.

202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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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민음사 펴냄
2022년 2월 발행

 

 

 

렘의 대표작이 '솔라리스' 영향이 워낙 커서
다른 소설도 그런 분위기일 거라 짐작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놀랐다.

쇠고기 조각이 로켓 근처를 둥글게 회전하여
스패너를 추월하게 될 거라는 데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주 여행 일지 형식의 블랙 코미디 단편 모음집이다.
대놓고 웃기려 들면서, 인류의 어두운 측면을 인정사정 없이
마구 도려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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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순양함 무적호]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 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민음사 펴냄
2022년 2월 발행

 

 

제목만 보면, 아동청소년용 과학소설 같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무적 최강 병기 우주선을 타고 외계인 악의 무리를 슝슝 뿅뿅 다 헤치울 것 같지 않은가. 책표지에 로켓이 그려져 있었다면, 그렇게들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표지는 소설의 핵심 존재를 묘사했다. 검은 구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공포의 대상이겠으나 아직 안 읽은 이한테는 아닐 것이다. 뭐지? 심심하네. 고작 구름?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

"지구에서 제조된 강철 유기체이자 수백 년 동안의 기술 발전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인 콘도르호가 바로 이곳에서 불가사의하게 사라져 버렸다." 25~26쪽.

무적호는 실종된 콘도르호를 되찾기 위해 파견되었다. 도대체 어떤 존재가 왜 인류 최강의 우주선을 어떻게 그토록 간단하고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었는가. 인류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그 존재는 생물이 아니었다. 머리가 다섯 개 달린 고지능 외계 생명체가 아니었다. 무생물이었다. "무생물 진화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지요. 기계 장치의 진화 말입니다." 175쪽.

초미세 곤충형 기계. Y자 모양. 이것들이 모여 그 공포의 검은 구름 혹은 폭풍우를 형성한다. 일종의 '구름형 뇌'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솔라리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소설 '우주 순앙함 무적호'에서도 인간 중심으로 우주를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발 디디는 곳마다 인간의 이해력에 상충하는 모든 것들을 함선의 무력으로 파괴해야 하는가?" 251쪽

"인간과 비슷하거나 이해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아닌 일, 즉 인간과 관계없는 사안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빈 공간은 차지해도 무방하지만, 수백만 년 동안 이미 생존의 균형을 이루어 실재하는 대상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253쪽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316쪽

초중반까지는 딱히 이야기라 할 것이 없었다. 그저 무시무시하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무적의 존재에 대한 묘사와 대결이었다. 그러다가 후반부는 드라마다. 이야기의 초점이 구름에서 사람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일관성에서 벗어난, 엉뚱한 결말이다 싶었다. 조금 지나서 생각해 보니, 무생물 무적 존재와 대비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이다.

무생물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진화한 존재한테는 로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자기 목숨을 걸고서 생존자를 확인하고 죽은 이를 위해 무덤을 만든다.

로한이 마침내 귀환하여 우주선을 보고 "너무도 장엄하였으므로 단연 무적호라고 할 만했다." 하고 말한다. 인간의 진정한 힘은 과학 기술이 아니라 인류애에 있음을 확인한다.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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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민음사 펴냄
2022년 발행

불완전한 신

'솔라리스'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대표작이다.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많이 읽혀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마지막을 읽어내는 이는 드물다.

무척 씁쓸한 결말이었다. 달콤한 환상만 골라 먹으려는 이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겠지. 구원을 바라지 않는, 불가지론자/무신론자의 바람은 무엇인가?

외계와의 접촉.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와 만난다. 살아있는 바다? 외계 존재도 인간을 이해하려는 듯 뭔가를 보내는데...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솔라리스의 바다와 소통할 수 있겠어?" 52p

"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치 않은 거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거야." 160p

그가 지구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솔라리스 바다의 움직임을 해일이라고 명기했음을 알 수 있다. 솔라리스 앞에서 지구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무능력하고 우스꽝스러운 발상이다. 245p

솔라리스의 바다를 핵무기로 파괴해야 한다는 청원이 제기된 것은, 솔라리스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복수보다 훨씬 가혹한 방식이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모두 파괴해야 한다는 식의 대응책이었기 때문이다. 271p

이런 식의 대응은 후속작 '우주 순양함 무적호'에도 나온다. 솔리리스는 1961년, 우주 순양함 무적호는 1964년 발표했다. 대결로 치달아서, 완전히 없애려고 시도한다. 헛수고가 되지만.

"채찍으로 바다를 내려쳐서 복수를 시도하는 건 어때?" 340p '우주 순양함 무적호'에도 똑같은 말이 나온다. "배와 선원들을 침몰시킨 벌로 바다를 채찍질하는 짓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무적호 184p 애초에 의미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이야기 중후반에서 켈빈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없애고자 했던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 자기 기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진심으로 사랑한다.

"물론이지, 나는 당신을 사랑해. 만약 당신이 본래의 그녀였다면, 사랑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
"왜요?"
"내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거든."
323p

켈빈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속죄하는 마음에서 이 존재를 사랑하는 것일까. 본질적으로 사랑, 그 자체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이런 켈빈한테 스나우트가 냉정하게 말한다.

"자네는 지금 이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것은 아름다운 노력임에 분명하지만, 결국은 헛된 일일세. 달리 생각하면, 그게 과연 아름다운 행위인지도 잘 모르겠군. 어리석은 행위를 가리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335p

그리고 켈빈의 뼈를 때린다.

"그녀는 자네 뇌의 일부를 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고. 그녀가 아름다운 건, 자네의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네. 그러한 근거를 제공한 건, 순전히 자네야. 순환적인 환상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게!" 342p

정작, 심리학자는 켈빈이고 스나우트는 인공두뇌학자다.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고. 켈빈의 심리 분석은 본인 스스로가 아니라 스나우트가 해준다. 스나우트는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니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그 존재의 자살로 끝난다. 기억을 모방한 존재인지라, 마음과 행동의 최종 결과도 같아져 버렸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난 듯한데, 주인공/작가의 바람을 표현한 사색/후기가 덧붙었다.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신은 바로 그런 신이야. 자신이 겪는 고통을 구원이라 떠벌리지 않고 아무도 구원하지 않는 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인 신 말일세." 435p

켈빈은 솔라리스 바다와 직접 접촉한 후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내 안에는 아직 일말의 기대감이 남아 있다. 그것은 그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자취다. 내가 여전히 기대하는 완결과 환멸과 고통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잔혹한 기적의 시대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굳건하게 믿고 있다." 447p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강수백 옮김
시공사 펴냄
1996년 발행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이 책을 읽은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그 사람이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장담한다. 이 소설책이 그리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에 그런다. 그는 분명 상당히 복잡한 인간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리라. 나도 그 부류니까.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지 못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다. 장황스러운 설명과 철학적 사유는 어지러웠다. 다시 한 번 읽었다. 여전히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소설은 우주선 출발로 시작한다. 주인공 켈빈이 미지의 행성 솔라리스로 향한다. 솔라리스 스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켈빈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다. 스테이션에 있는 동료 학자들은 환각에 시달리고 있다. 캘빈도 그 환각과 직접 만난다. 환각이 솔라리스의 바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는다.

솔라리스 행성은 인간의 인식 범위에 벗어난 존재다. 이 행성의 유일한 생명체로 여겨지는 것은 바다인데, 이 또한 인간의 과학적 사고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존재다. 작가는 이 솔라리스에 대한 인류의 접근 방식이 인간/지구 중심적인 인식 체계를 고집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걸 비웃는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솔라리스에 대한 도전은 그 문명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면적인 문제, 즉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솔라리스에 대한 묘사는 백지다. 그 백지에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느껴서 그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는 그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 사실과 문헌과 대화를 꾸며냈다. 솔라리스는 당신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불가지론의 사유에 이를 수도, 한낱 우스개로 여길 수도 있다.

작가는 지구 중심적 사고에 대한 회의를 켈벤의 동료 학자인 스노우를 통해 말한다. SF소설과 우주에 대한 생각의 옹졸함을 꼬집는다. "우리는 우주를 정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지 지구를 우주 규모로 확대하고 싶어할 뿐이야. (······)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아냐. 지구 이외의 다른 세계 같은 건 필요 없어. 다만 우리를 비출 거울이 필요한 것뿐이야. 다른 세계 같은 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 우리에겐 지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그 지구만으로는 뭔가 불충분한 것 같이 느끼지. 그래서 우주에서 이상향을 찾아 보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지구 문명보다 더 완전하고 우수한 문명을 가진 세계를 찾아 우주로 나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미개했던 과거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거야."

이 책이 난해한 것은 아니다. 인식론을 다룬 철학책은 아니니까. 이야기를 쓴 소설책이기에. 이야기는 켈빈의 과거 정신적 고통과 사랑이 그 환각적 존재와 연결되면서 감상적으로 흐른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켈빈의 과거를 읽어내어서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가짜 존재를 보낸다. 옛날에 켈빈이 매정하게 애인을 떠난다는데, 애인이 그만 자살해 버렸다. 그 옛 애인이 다시 생생하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다. 허상이라는 걸 알지만, 진짜 같아서 믿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독자를 그런 소재의 재미로 이끌기보다는 생각하는 흥미로 인도한다. 솔라리스에 대한 이해 불가능은 인간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소설 마지막 부분에 켈빈의 독백, "지구는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대한 도시에 파묻혀 버린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를 읽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텅 빈다.

사람이 사람을 정말 이해할 수 있는가.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한가.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남을 추측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솔라리스가 당신에게 묻는다. 책장을 덮어도, 그 물음은 한동안 당신 머릿속을 맴도리라.

렘의 솔라리스는 세 가지 시각에서 읽을 수 있다

1. 과거 소중한 존재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공포

자살했던 옛 애인이 다시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점만 강조해서 읽으면, 단순한 공포소설이다. 렘이 아무리 과학 지식을 줄줄이 늘어놓는다고 해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진짜처럼 출몰하는 과거의 유령들. 그리고 이를 물리치려거나 거기에 매혹되는 인물들. 

이 소설을 영화로 바꾼 감독들은 이 점을 주목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이 소설을 죄의식과 구원의 주제로 바꾸었다. 원작 소설가가 영화 제작자한테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은 물론이다. 인간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으니. 원작자가 북쪽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는데, 각색자가 남쪽으로 돌려놓은 꼴이다.

2. 진정한 소통의 부재

이야기의 재미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인간이 자기 중심적 사고를 우주로 팽창한다는 소설가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의문이다. 솔라리스와 인간이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맞추면 정작 나 자신을 전할 수 없고, 나 자신의 메시지만을 전하면 상대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남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남과 같은 무엇을 전하는 게 전부다. 근본적으로 남과 다른 무엇이란 애초부터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자기와 공통되는 부분만 받아들이기 마련이기에.

3. 외계 존재의 인식 방법

렘은 이 소설로 기존 과학소설의 전제를 무너뜨렸다. 기존 이야기는 외계 존재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확신하거나, 외계 존재를 무시무시한 침입자로 묘사했다. 왜 이런 식으로만 외계인을 볼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렇다고, 렘은 말한다. 인간은 다른 존재에 대해 여전히 자신을 투사해서 볼 뿐이다. 자신을 투사할 수 없으면 괴물이다. 없애야 한다.

솔라리스는 다른 과학소설이 무시했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지구 이외의 세계 존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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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황금가지

 


이제는 고전이 된 소설 '화씨 451'은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작가는 책이 없는, 책을 불사르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그리면서 오늘을 예언했다. 혼자서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는 생활. 텔레비전 방송과 광고에 중독된 사람들. 대화가 거의 없는 가족.
 
어떤 존재의 진정한 의미, 어떤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고자 한다면 그 존재가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공기의 소중함을 알고 싶다면, 당장 진공 상태를 상상해 보라. 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화씨 451'를 읽으면서 독서가 금지된 사회를 그려보라.

 



책이란 무엇인가. 파버 교수가 방화수 몬태그에게 하는 말이다. "책이란 단지 많은 것들을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의 한 종류일 따름이니까.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을 담아 두는 것이지. 책 자체에는 전혀 신비스럽거나 마술적인 매력이 없소. 그 매력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에 있는 거요."(136쪽)

책이 없는 사회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 사회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파버 교수는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정보의 질이다. 책은 세밀한 짜임새를 지니는데, 좋은 책일수록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담는다.

둘째, 그 정보의 좋은 질을 충분히 되새길 수 있는 여기 시간이다. 여기서 여가란 일하지 않는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뜻한다. 우리는 책을 읽다가 잠시 책장을 덮고 곰곰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두 가지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책에서 읽고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리다.

우리는 지금 책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진 않으나 책 읽기를 싫어하는,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바쁘다. 뭔가 생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세상은 바삐 돌아간다. 나는 행복한가. 소설의 주인공 몬태그는 현실에 의문을 품으면서 책 읽기에 빠져든다.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실행한다.

작가는 후기에, 등장인물 이름을 어디서 따온 것인지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다. 몬태그는 제지, 파버는 필기구 회사의 이름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은 것은 아주 오래 전이었다. 이십대 때였다. 도서정가제에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워낙들 요즘 말이 많아서, 문득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싶었다.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대중들 스스로가 책 읽는 것을 거의 포기했소."(143쪽) 소설에서 묘사하는 디스토피아는 요즘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세상에 누가 아이를 낳아 길러요?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157쪽) 책도 상품인지라 마케팅을 하면서 팔리긴 한다. 하지만 정말 읽고들 있는 걸까? 예쁜 인형처럼 사모으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레이 브래드버리를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면, 레이 브래드버리는 이야기꾼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등장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강력하지도 특징이 있지도 않다. 작가가 설정한 상황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형에 가깝다. 단편적인 인물이다. 깊이가 전혀 없다. 사건 전개와 결말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만 풍기다 끝나거나 냉소적인 문명 비판으로 일관한다. 그러니 재미없다. 다 읽고나면 덜 쓴 것 같다.

문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레이 브래드버리는 최고다. 운율이 있으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을 썼다. 번역문에서는 느낄 수 없으나 영어 원서로 읽으면 경이롭다. 시적인 산문이다. 멋지다.

나는 이 작가의 영어 원서를 읽고 절망에 빠졌었다. 문장을 이 사람보다 더 잘 쓸 수 없다. 나는 끝났다. 젊은 시절에는 문학 야망이 컸고 뭔가에 빠지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이제 나이 들어 다시 읽어 보니 그렇게 대단하진 않다. 그래도 내 무의식 어딘가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내 문학의 첫사랑으로, 아름다운 문장의 여신으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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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레이 브래드버리

황금가지

 



단편소설 19편을 수록한 책이다. '화성연대기'처럼 각 단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산만하게 이것저것 있다. '문신을 새긴 사나이' 이야기를 맨 앞과 맨 끝에 넣어 이야기 18편을 묶었다. 사나이는 온몸에 살아움직이는 듯 생생한 문신이 있다. 문신마다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과거 회상이면서도 미래를 예언하는 환상이다. 이 소설집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문신을 새긴 사나이'에서 미래에서 온 마녀가 새겼다는 문신은 "미래를 이야기하는 과거"다. 작가가 추구하는 소설이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짧은 소설은 장르가 모호하다. 과학소설이라지만 그다지 과학소설 같지 않다. 판타지, 우화, 공포, 괴기, 범죄가 뒤섞였다. 미래사회를 그리는 설정에 시적이고 몽환적인 전설 같은 분위기다.

썰렁하고 별 재미가 없지 않나. 이런 항의나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소설이 짧아서라기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기승전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 제시, 상황 끝. 이런 식이다. 단편소설이 아니라 이미지나 우화로 읽힌다.

'기나긴 비'를 보면, 한없이 비가 내리는 금성에서 피난소 일광 돔을 찾아 헤매는 군인들이 나온다. 이상하고 으스스하고 황당한 상황이다. 몇 사람은 이내 미쳐버리고 자살하고 절망한다. 마침내 돔에 도착한다. "문이 닫히자 비는 다만 욱신거리는 몸에 박인 기억에 불과했다."(120쪽) 그리고 끝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 혹은 썰렁한 농담. 갑작스레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니 사건이 발전하여 그럴 듯한 결말에 이르기를 바라지 마라.

 



레이 브래드버리의 이야기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현대 문명을 매섭게 비난하며 화풀이를 한다.

집 안 놀이방에서 아프리카 초원을 생생하게 느끼거나(대초원에 놀러 오세요) 우주 미아가 되어 끝없이 추락하거나(만화경처럼) 금성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기나긴 비).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에서는 문학 검열자들을 비난하고 '역지사지'에서는 흑인차별을 역공격한다. '도로가 전해준 소식'과 '세상의 마지막 밤'은 전쟁에 몰두한 인류의 종말을 보여준다.

기독교 종교 분위기의 소설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그분이 오셨습니다'는 예수의 우주 미래 버전이고 '불덩어리 성상'은 외계인 기독교 선교다. 작가의 성찰은 상식적이면서 비판적이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서 대단한 것인가. 아니다. "그 남자는 우선 병든 자를 낫게 하고, 가난한 자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위선과 부패에 맞서 싸웠고, 하루 종일 민중 속에 머물며 대화했다고 합니다."(85쪽) 종교인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인다.

몇 편은 망작이다. 냉전시대 쓴 소설이라서 이제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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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아서 C. 클라크 지음
-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펴냄

 


작가의 튼튼한 과학 지식으로 쓰여진 SF라서 허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외계인에 의해 인류가 진화되었다는 독특한 가정이 이 소설의 재미다.

SF라고 하면 괴상한 외계인이 나타나 그에 맞서 우리의 영웅 인간이 싸워 이겨 마침내 우주의 평화가 찾아온다. 괴상한 모양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거나 우주 전쟁을 하는 스페이스 오페라류의 활극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서 클라크의 이 작품은 그런 게 없다. 이 소설에는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소설의 시작은 파충류의 시대가 끝난 시기에 지구다. 인간 원숭이들은 배고픔에 허덕인다. 어느 날 그들에게 이상한 돌(선돌)이 나타난다. 그 돌은 바로 외계인 설치한 것이다. 그 돌은 인간 원숭이들 중에서 몇 명을 골라 도구의 발명을 시키는 등 문명을 가르쳐 준다. 그리하여 인류는 혹독한 환경에서 승리자가 된다. 그러나 지금 그 도구는 인간 자체를 위협하는 무기로 바뀌었다. 곧 핵무기.

 



인류가 달에 정착한 시기. 그러나 소련과 미국의 대립은 여전하고 국경선도 여전하고 핵무기의 위협도 여전하다. 프로이드 박사는 달 기지에 이상한 물체를 조사하러 달로 간다. 달의 중심에 있는 타이코 분화구에 있는 TMA-1(앞에 말한 선돌과 같이 인류를 가르치기 위해 외계인이 설치한 물질)이다. 그것을 조사한 결과 3백만 년 전에 있었던 물질이었다. TMA-1은 빛을 받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전자 굉음을 낸다.

디스카버리 호가 토성 탐사를 위해 떠났다. 그 우주선에는 깨어 있는 폴과 보먼, 그리고 동면 상태의 우주인이 있다. 또 '할 9000'이라는 컴퓨터가 우주선을 통제한다. 동료를 잃는 어려움을 겪고 토성에 도착한 보먼은 토성의 띠 중 유난히 반짝이는 제이페투스에 도착해서 TMA-1과 비슷한 물체를 발견한다. 보먼은 끝없는 심연을 빨려 들어가고, 초우주의 세계를 경험한다. 창조자(외계인)에 의해서 그는 영원의 순간을 지나 아이(스타 차일드)가 된다. 그는 핵폭발로 인간의 역사를 마감시키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한다.

핵폭발에 의해서 인류가 우주에서 사라진다는 결말은 아마도 이 작품이 냉전 시대에 쓰여진 탓이리라. 미국과 소련의 대립에 중국이 작고 빈곤한 나라들에게 핵무기와 발사 장치를 판매한다.

우리 스스로가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발달한 외계인이 인류 문명의 탄생과 종말을 좌우한다는 작품 전체의 전제가 놀랍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독자가 실제로 우주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작가의 과학 지식과 글재주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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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연대기
-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펴냄

 


The unknown is always mysterious and attractive." (未知의 것은 언제나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내 엣센스 영한 사전 표지에 써 놓은 영어 구절 중에 하나인데, 아마 고등학생 때 맨투맨 영문 독해 하다가 마음에 들어서 써 놓은 모양이다. 낭만주의는 아마도 미지의 것에 대한 상상일 것이다. 그것이 공포이건 환상이건 간에. 이미 다 아는 것에는 아무래도 상상하기가 어렵다. 

뛰어난 작가들은 일상에 그 흔하디 흔한 것을 새로운 눈과 느낌으로 표현해서 감동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너무 예외적인 경우다. 사람들은 달에 아무것도 없다고 밝혀지자 달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달은 달콤한 상상이나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달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지구와 가까운 화성과 금성에 대해서 아주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그런데, 그의 대안 없는 문명 비판이 그 아름다운 상상을 가끔 버려 놓는다. 그의 상상은 꼭 그 문명 비판을 배경으로 깔거나 대안 없는 공허한 환상으로 채운다.

 



'화성 연대기'는 SF라고는 하지만, 문명 비판을 위한 우화 소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화성에 도착한 지구인은 화성인한테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작가의 신랄한 지구 문명 냉소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火星 年代記. 말 그대로 1999년부터 2026년까지 여러 사건들이 화성에서 일어난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 과학 발달의 속도를 지나치게 빠르게 생각했다. 허긴 나도 어려서는 서기 2000년이 오면 달나라로 소풍 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화성에 인류가 발을 디디려면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웃긴 부분은 <2005년 12월 침묵의 거리>. 화성에 남은 유일한 남자와 유일한 여자. 간신히 연락해서 서로 만나는데, 나머지는 여러분이 상상해 보시길. 남자가 불쌍하더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도 보인다. 화성에 나무를 심어 녹색 혁명을 이루려는 사나이 이야기도 있다. 꽤 감동적이다. 성실만큼 감동적인 것도 없다.

소설 전체를 통과하는 것은 문명 비판이다. 지구는 핵무기와 전쟁으로 희망이 없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 마지막은 그의 노골적이고 대책 없고 무책임하고 황당한 문명 비판이 나온다. 아니 어쩌면 그런 비판은 인류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겠다. 다들 문명 발달에 제동을 걸지 않고 반성하지 않았던 그 시대 상황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분명 다른 입장을 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시대 상황에서도 그렇다만.

 


다음은 이 소설 2026년 10월 1백만 년 피크닉의 일부분이다. "아빠는 지구인의 논리와 상식과, 좋은 정치와 평화와 책임이라는 것을 찾고 있었단다." "그것들이 모두 지구에 있었나요?" "아니 찾지 못했다. 이제 지구에는 그런 게 없어졌다. 아마 두 번 다시 지구에는 나타나지 않을 거다.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소설 마지막은 정말 냉소의 극치다. 화성에 정착한 지구인 가족들. 아들은 아버지한테 화성인이 보고 싶다고 조른다. 아버지는 물에 비친 자신들을 가리키고 바로 자신들이 화성인이라는 알려 주는 역설로 끝을 맺는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이 책은 근본적으로 화성이 아니라 지구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 특히 미국인들에 대한 비난과 냉소다.

화성 탐사에 열을 올리는 미국인들에게 내가 한마디하자면, "그런 화성 탐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희들 마음 탐사니라. 세계 평화 운운하면서 무기 장사하는 니들. 인종 차별로 총 들고 싸움박질하는 니들. 인디언을 몰아내고(뭐 거의 대량 학살이지) 멋진 문명을 만들었다고 떠드는 니들. 레이 브래드버리의 경고를 잊지 말지어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화성인은 혹시 인디언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Red Planet은 화성이고 Reds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다. 화성에 도착해서 뭔가 세우고 개척하려는 지구인, 그런 지구인한테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화성인의 모습.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소설 곳곳에 보이는 모습이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연상시킨다.

 


:: The Martian Chronicles
- Bradbury, Ray
- Simon & Schuster


화성 연대기. 제목 그대로 소설의 각 장을 연 월의 연대기 사건으로 표시했습니다. 목차 대신에 연표(Chronology)가 나오죠. 1999년 1월부터 시작해서 2026년 10월에서 끝납니다. 사건은 단편적이고 독립적이면서도 적절하게 이어서 나아갑니다. 여러 잡지에 단편으로 기고했던 글을 모으고 앞뒤에 더 써서 이렇게 한 권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 책에는 시대 분위기 두 가지가 어둡게 깔려 있습니다. 전쟁과 검열. 레이 브래드버리가 이 단편소설들을 쓰던 시절이 암담했죠. 핵 폭탄 위협으로 인류가 전멸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시대였습니다. 출판 기록을 보니 1950년 5월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그 유행어 기억하십니까? "지구를 떠나거라." 80년대에 김병조가 만들었죠. 지금도 종종 쓰는 표현입니다. 짜증나는 인간이 보일 때마다 그 말을 하죠. 이 소설은 반대로 짜증이 난 사람들이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갑니다. 흑인들이 몽땅 화성으로 가고 주부들도 모두 화성으로 갑니다. 지구에 남은 사람은 고집불통인 백인 남자 늙은이죠.

예술과 종교를 무시한 과학과 전쟁에 대한 비난과 조롱으로 가득한 풍자소설입니다. 소설 전반부에서 화성 탐사대가 어처구니없이 죽고 넷째 탐사대가 화성에 도착했을 때는 화성인이 황당하게 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는 사람들이 죽이고 죽네요. 중반부는 지구인의 화성 이주를, 후반부는 지구인의 화성 정착을 이야기합니다.

 


작가의 주장이 등장 인물을 통해 거침없이 나옵니다. 화가 정말 많이 나셨던 모양이에요. 과학과 종교는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수 없을까. 제대로 읽지도 않고 검열하는 인간들 죄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매섭죠.

예전에 이 소설의 번역본 독후감에, 대안 없이 문명 비판만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면서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는 무척 어려웠겠죠. 지은이가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며 훌륭한 문명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들에 의해 한순간에 폐허로 변하는 것을 일일이 들어 얘기하는데, 말문이 막히더군요. 반박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계속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화성에 산소가 부족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한 남자가 나무를 심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상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 놓았죠. 소설 후반부에는 웃긴 이야기도 있습니다. 최후에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남았을 때 과연 결혼할까? 이런 농담 같은 거요.

화려한 환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요. 외롭고요. 적막합니다. 화성이 사막처럼 황량하게 그려졌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향수와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있죠.

마지막 문장에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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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자스의 유령 The Phantom of Kansas
- 존 발리 지음
- 안태민 옮김
- 불새 펴냄

 

 

과학소설이 재미있다고 하면, 대개는 그 과학적 상상력의 재미를 뜻한다. 존 발리의 단편소설은 거기에 하나를 더했다. 수수께끼. 궁금증을 유발한 후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한다. 미스터리 수법을 쓰기 때문에 진짜 재미있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 다 읽을 수밖에 없도록 이야기를 써 놓았다.

'캔자스의 유령'은 그 자체로 대단히 흥미로운 미래사회 설정을 보여준다. 은행의 주업무가 돈이 아닌 사람의 기억을 저장하는 일이다. 사람들을 사실상 거의 영생을 산다. 육체에 저장된 기억을 넣어서 계속 사는 것이다. 따라서 살인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계속 죽이려는 자가 있다. 이미 세 번이나 죽였다. 그때마다 육체를 갈아타서 살아나긴 했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 폭스는 과연 범인 누구이고 왜 그러지는 알아내고자 한다.

미래 과학 상상력을 빼고 보면, 빼어난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 소설이 기존 추리소설보다 재미있다. 독특한 미래 사회 설정 때문에 기존 추리소설의 수사수법으로는 범인을 잡을 수 없다. 육체개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문도 성별도 의미가 없다. 그나마 유일한 신분 확인 방법은 유전자 검사뿐이다. 과연 범인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작가 존 발리는 이 소설에서 의도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추리소설의 규칙과 명칭을 가져다 비틀어 표현한다. 후만추, 모리아티가 인용된다. 중앙컴퓨터가 셜록 홈즈처럼 말한다. "유의미한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자료가 축적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는 질문은 언제나 대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게다가 '붉은 청어'라는 용도도 나온다.

짐작했던 자가 범인이라서 김이 샌 상태에서 계속 읽었는데, 이야기 후반부에서 인간적인 컴퓨터의 모습에 놀라 감탄했다.

'공습'은 미래사회의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이용해서 과거 시대의 추락 직전 비행기에 공습해서 사람들을 납치하는 이야기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1989년 영화 4차원 도시(원제 밀레니엄 Millennium)는 이 단편소설의 상황을 가져다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어 버렸다.

'역행하는 여름'은 한 사람당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는 미래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에게 누나가 있는지 그 의문을 푸는 이야기다. 핵가족과 기존 가족 제도에 유쾌한 웃음 한 방을 선사한다.

'블랙홀, 지나가다'는 낭만적 사랑 이야기와 음란소설의 과학소설 버전이다.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린 남자가 여자의 지혜로 구조된다는 이야기다. 성교를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나름 웃긴다.

'화성의 왕궁에서'는 화성 탐사를 하러갔다가 사고를 당해서 생존 투쟁 끝에 화성 개척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탐사대는 화성에서 태양계 행성 궤도와 움직임을 재현한 기계 모형을 발견하는데... 화성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참신한 해석이 돋보인다.

2024년 2월 26일 현재
서점에서 새 책으로 구할 수 없다. 전자책으로 나와 있지도 않다.
헌책을 구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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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필립 K. 딕 지음

대개들 소설보다는 영화의 내용을 더 잘 알고 있다. 해서, 둘을 비교하며 그 차이점을 얘기해 보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필립 케이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다른 면이 꽤 많았다.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와 안드로이드 간의 숨막히는 대결에 초점을 두고 전개하지만, 소설은 그런 대결보다는 릭 데커드의 고뇌를 많이 다룬다.

자, 소설을 볼작시면, 영화와는 다르게 릭 데커드에게 아내가 있다. 시작 부분에서 둘은 자신들이 기르고 있는 전기 양에 대해서 투덜거린다. 끝에서도 이 부부가 전기 두꺼비에 대해서 투덜거리며 끝난다. 웬 전기 양과 전기 두꺼비?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물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대전 후, 지구는 오염되어 살아 있는 동물이 많지 않다. 그래서 다들 실제와 흡사한 가짜 동물을 소유하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만 진짜 동물을 갖고 있다. 안드로이드 사냥꾼인 데커드는 진짜 동물을 사려고 돈을 모으기 위해 화성에서 탈출한 안드로이드를 죽이려고 다닌다. 그래서 진짜 양을 사지만 그 양은 안드로이드에 의해 허무하게 죽고 만다. 나중에 데커드가 진짜 두꺼비인 줄 알고 집에 가져 와 보니까 그것마저 전기 두꺼비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와 소설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인간이 만든 안드로이드를 통해 제기되는 인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데커드는 안드로이드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혼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안드로이드가 단순히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죽여서 값비싼 진짜 동물을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안드로이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심지어 자신이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의심한다.

영화나 사이버펑크를 선호하는 이들은 이 상황을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많이 해석한다. 소설에서는 그 상황을 주로 고립되고 기계화되어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에 대한 비난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전기 양과 전기 두꺼비는 황막한 현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냉소다.

'무드 오르간'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원하는 상태에 다이얼을 돌리면 그 분위기에 빠지게 하는 기계다. 작가는 왜 이런 황당한 '무드 오르간'을 등장시키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기계 없이는 항상 불안한 사람들. 물질 문명 최고조에 이른 현대인의 운명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릭의 아내는 텔레비전을 끄면 고독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공감 박스를 통해 마사교에 열중한다. 자신의 고독을 '마사교'라는 종교로 해결한다. 타인과의 교감. 그러나 그 마사교가 가짜임이 안드로이드에 의해 밝혀진다. 현대 사회에 대한 작가의 냉소가 극에 달아 있다. 마사교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언덕을 오르는 노인의 등장과 돌팔매질. 세속화된 기독교에 대한 비아냥거림.

건물마다 키플이 넘친다. 키플은 "빈 성냥갑이나 껌 포장지, 어제 받은 신문 같은 그런 쓸모 없는 것들"을 말한다. 쓰레기로 가득한 세계.

이처럼,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 대한 비판은 소설 곳곳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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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필립 K. 딕 지음
유영일 옮김
집사재

딕의 소설은 영화로 나왔다.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까지. [토탈 리콜]과 [스크리머스]가 있다. 소설과 영화를 모두 봤다.

영화 [토탈 리콜]의 원작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이 책에서 읽어보니 영화와는 다르게 썰렁한 블랙 유머다. 가상 기억이라는 설정만 따왔다. 블랙 유머가 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소설 앞부분만 영화에서 따다 썼다. 원작 그대로 따라 했으면 관객 대부분이 매표소에서 환불해 달라고 난리가 났을 거다. 영화는 소설에서 기억으로만 있었던 화성 비밀요원 활동을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영화 [스크리머스]의 원작 소설 [두번째 변종]은 영화와 거의 똑같다. 끝 부분을 시나리오 작가가 좀더 극적으로 바꾸었다. 영화를 먼저 본 탓에 이 소설을 가장 빨리 읽었다.

기계와 비기계(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철학적 사색으로 이어지는 대사가 [블레이드 러너]와 [스크리머스]에 나오는데, 원작 소설에는 그런 게 적거나(블레이드 러너) 아예 없다(스크리머스). 그러니까, 영화는 단지 아이디어나 상황설정을 원작 소설에서 따오는 것이지, 원작 그대로 옮기진 않았다.

내가 읽은 딕의 소설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현대 문명을 비웃은 허무 개그다. [두번째 변종]처럼 공포와 스릴로 분위기를 바뀌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진지한 고민에 빠지는데, 원작 소설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웃는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긴다. "마법의 투명 지팡이"(94쪽), 하하하.

딕의 매력은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이다. TV세트로 변하는 살인 기계([아무도 못말리는 M]), 가상 기억([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스스로 진화해서 마침내 인간을 닮아가는 기계([두번째 변종]),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장악하는 송신기([죽은 자가 무슨 말을]), 시간 여행을 통해 장사를 하는 사람([매혹적인 시장]), 시간 여행으로 역사적 인물한테 영감을 주는 일([오르페우스의 실수]). 그의 소설은 아이디어 보물 창고다. 영화 감독들이 SF 영화를 만들 때, 딕의 소설에 끌리는 건 당연하다.

번역이 안 좋다는 소문이 돌아서, 이 책 사는 걸 망설였는데, 실제로 읽어보니까 아주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단, 내가 한글로 번역된 외국 소설을 워낙 많이 읽었기에 직역투 번역문에 익숙해져 있어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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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정영목, 홍인기 옮겨 엮음
도솔


여러 작가의 단편들을 모은 책을 읽는 건, 어릴 적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기분이랑 똑같다. 크고 묵직한 상자를 뜯으면서 뭔가 굉장한 게 들어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막상 열어 보면, 진짜 멋진 게 있기도 하지만, 형편없는 것도 있다.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선물세트에 들어 있는 단편소설들이 모두 맘에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몇은 마음에 들었다. 앞에 수록한 작품들이 지루해서 좀 고생했는데, 뒤에 수록한 작품들이 재미있어서 그럭저럭 다 읽었다.

재미있었거나 인상깊었던 소설만 적어둔다.

[용과 싸운 컴퓨터 이야기] 스테니슬라프 램: [솔라리스]처럼 철학적인 소설만 쓰는 줄 알았더니, 이런 유쾌한 단편소설도 쓴다. 최첨단 과학 기술(인공 두뇌학)을 군사 지배(전쟁) 꿈을 위해 쓰려는 사람을 비웃는 우화.

[사기꾼 로봇] 필립 딕: 이 소설은 최근 영화 [임포스터]로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 배우, 매들리 스토가 주연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아직 못 봤다. 외계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연구를 하던 올햄은 갑자기 외계인의 스파이 로봇이라는 협의를 받는다. 올햄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도주하면서 마침내 외계인 우주선을 발견하고 도착하는데... 멋진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자기 놓은 덧에 자기가 빠지는 현대인의 진퇴양난이 냉소적인 결말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채소마누라] 팻 머피: 환상소설. 여자 나무를 키우는 남자 이야기. 남자의 여자에 대한 편견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 편견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대단하다. 진짜 페미니스트다.

[스파이더 로즈] 브루스 스털링: 사이버펑크. 유전 공학을 지지하는 Shaper와 인공 장기로 기계 인간이 되어가는 Mechanist. 그리고 이 두 사이에 외계인 우주 상인 집단 Investor. 스파이더 로즈는 Mechanist인데, 자신의 감정을 주사로 없애고 살아가는 기계인간이다. 사랑의 감정을 잃은 인간에 대한 비유랄까.

[일주일간의 공포] 래퍼디: 환상소설. 맥주 깡통 구멍으로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이 사라진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인데 정말 재미있다. 가볍게 보일지도 모르나, 작가의 유머 감각과 친근한 문체는 남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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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책세상
2005.12.20.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려는 분을 위한 안내서
혹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려는 분이 알아야 할 10가지
혹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려는 분을 위한 도움말

1. 1권 초반부 외계인의 지구 폭발까지 읽어야 이 책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각자 느낌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라. 애써 한 글자 한 글자 다 읽을 의무는 없다.

2. 이 책이 웃긴다는 소문을 듣고 읽으려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개그 콘서트 웃음을 바라지 말 것. 영국식 유머다. 우리랑 다르다. 바로 웃기는 게 아니라 좀 있다가 웃긴다.

3. 어느 정도의 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철학·예술 상식이 있으면 좋다. 그런 상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으나 크게 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4.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 점심을 먹은 후 나른한 오후에 딱히 할 일 없는, 그런 한가함이 있어야 한다.

5. 이 책은 코믹 SF다. 하드코어 SF를 바라지 마라.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왜냐고 따질 사람은 다른 책을 읽어라.

6.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를 아는가. 알면 제대로 찾아 왔다. 같은 종족이다. 블랙 유머를 즐겨라.

7. 이 책에서 지구가 멸망하고 우주가 사라져도 당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무해하다. 다시, 이 책은 대체로 무해하다.

8.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왜 42인지는 5권에 나온다. 거기서 이야기는 끝난다.

9. 이 소설이 진지하지 못하다는 평은 무시하라. 이 소설을 끝까지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10. 마음껏 웃어라. 그러라고 쓴 책이다.

지구가 사라져도 쫄지 마라

코믹 에스에프 소설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무척 일상적인 얘기를 우주적 차원으로 놓고서 수다를 떤다.

제목부터가 여행 안내서를 따서 만들었다. 자동차 얻어 타는 걸 우주선 얻어 타는 걸로 살짝 바꾸고, 도로 만든다고 자기 집 부수는 국가를 우주 도로 놓겠다고 지구 부수는 외계인으로 슬쩍 함께 놓았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라는 게 한심하게 일상적인 일이다. 점심 먹고 차 마시고 맥주 먹고 샌드위치 만들고. 이런 게 과연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1권 끝부분에서 점심 먹는 걸 우주 철학으로 끌어 올리는 문장을 읽는다면 정말 재미있다는 걸 감 잡을 수 있다.

영국식 유머는 독특한 찌름이 있다. 무척 평범한 걸 끌어다가 묘한 독특함을 끌어낸다. 게다가, 이 소설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식을 끌어다가 우스개로 재배열시킨다. 방대한 양의 익살이다.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은 걸 할 줄 알지만 고작 시시한 일만 해서 우울증에 걸린 로봇 얘기는 유머의 심리학이다.

완성작은 무려 5권이나 되지만, 그 시작은 무척 미미했다. 처음에는 간략한 라디오 드라마였단다. 시시껄렁하게 대충 만든 거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인기를 끌어서 연작이 되고 마침내 소설로 나온다. 영화는 작가의 사후에 나왔다.

이 소설을 쓴 더글러스 애담스는 부조리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다가 심장마비로 가셨다. 그렇게 가셨다. 부조리 소설가의 부조리한 죽음이여!

소설은 지루한 편이다. 단, 처음에 읽을 때만. 아마 통독하기 만만치 않으리라. 반면, 영화는 경쾌하다. 원작을 너무 줄여 놓아서 심오함이 없지만.

성질 급한 분은 이 소설도 영화도 피하시는 게 좋다. 시간이 넉넉하고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바로 그때 이 소설과 영화를 거들떠 보길 바란다. 우주적 농담으로 해탈하길 바란다.

이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지구가 사라져도 쫄지 마라. 괜찮다. 대체로 무해하니. 안심하라."

서글픈 농담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도서관이었다. SF를 좋아하는 한 분이 적극 추천했다. 막상 읽기 시작하자 재미없었다. 그렇게 재미있다는 책이 이렇게 재미없고 따분하다니. 그나마 재미있었던 것은 1권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점심과 관련된 농담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내게서 잊혀졌다. 몇 년만이었을까.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일 것이다. 적어도 12년만일 것이다. 이 책을 다시 만났다. 시립도서관에 5권까지 나란히 꼽혀 있었다! 완결된 모양이네. 책을 펴서 보니, 작가는 불합리하게 저 위로 가셨다. 심장마비로 죽은 대학 동기가 있어서 우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해진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가셨군요. 뭐 그런. 일단 1권을 대여해서 과연 다시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보려 했다. 역시나 잘 안 읽혔다. 나랑 안 맞나 보군. 그래도 모르지 싶어 갖고 다녔다.

조카 시험 보는 데 따라갔다가 한참을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게 뭐람. 다시 이 책을 펴 들어 읽었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교정 한 구석 의자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시작부터가 나랑 비슷한 상황이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한가함에 둥둥 떠있는 모습. 나는 책에 빠져들었다.

며칠 후 5권까지 다 읽었다. 애써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을 필요는 없다 싶었다. 건너 뛰고 싶으면 그냥 건너 뛰었다. 그런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지 않은가. 재미와 흥분을 거치고서 끝 부분에 이르자 평범하지만 그래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맞다 싶게 끝났다.

글쓴이가 상당히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철학, 문학, 경제학, 역사,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지식을 고작 이런 농담에나 쓸 정도밖에 안 되다니. 서글펐다. 글을 썼던 시대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 뭐 지금이라고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 볼 순 없지만.

영국식 농담에 대한 이해가 아직 덜 된 탓인지, 더글러스 애덤스 스타일에 익숙치 않아서인지, 이 소설은 여전히 내게 낯설고 썩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또 한가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 아서 덴트처럼 훌쩍 지구를 떠나 은하계를 여행하고 싶다.

겁먹지 말고 일단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는 거다. 히치하이커의 기본 자세는 그거다. 책 읽으려는 몽상가가 그러하듯. 지구를 떠나고 싶을 땐 그렇게.

1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아커를 위한 안내서 : 영국식 농담에 SF와 철학의 양념을 뿌린 소설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적이 언제였더라.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지긋지긋한 것이 아니라 지루했던 것이었겠지. 하지만 내겐 지긋지긋한 것이나 지루한 것이나 똑같다. 지루해지면 지긋지긋해진다. 지긋지긋해지면서 지루해진다. 봐라, 뭐가 다른가. 똑같지. 지금 왜 지루함과 지긋지긋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모르겠다.

번역의 문제인지, 내 독서 방법의 문제인지, 묘사가 지루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통독을 거부했다. 대학생 때 이 책을 처음 봤다. 그때 철거 공사 장면까지만 읽고 책 끝에 있는 점심 얘기를 읽었다. 점심 얘기는 마음에 들었다. 마침 배가 고플 때 읽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오늘 2006년 11월 27일 통독했다. 신비스러운 우주의 기운을 받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을까. 신비로운 기운은 무슨, 개뿔. 내가 철이 든 것일까. 남자가 철드는 거 봤냐. 그저 나이가 든 것이다.

가장 심각한 일이 가장 우스꽝스럽다. 사람 죽는 게 그렇다. 이 책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2001년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던 중 심장 마비에 걸려 사망했다.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이 이 책에서 가장 우습다.

이 책이 내게 준 교훈은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나친 심각함은 두통을, 지나친 진지함은 냉소를, 지나친 완벽은 절망을 낳는다. 철학적 농담이 주는 여유, 그게 더글러스 애덤스가 주는 선물이다.

이런 철학적 농담 SF가 아니라 진짜 철학 SF를 읽고 싶다면,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읽어 볼 것. 영화로 보지 말 것. 꼭 책으로 읽을 것!

‘솔라리스’의 인식 철학에 따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면 이렇다. 지구가 멸망하고 우주로 나가 외계인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로봇 컴퓨터랑 대화를 해도 결국 우리 인류의 얘기이다.

영국을 떠났어도 아서 덴트는 여전히 영국 얘기를 하고 있다. 홍차에 뭐에. 영국식 농담에 SF와 철학의 양념을 뿌렸다.이 지긋지긋한 지구를 떠나는 방법을, 작가는 1권 맨 앞에 적어 놓았다. 물론 농담이다. 진짜 전화하려고?

2권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 우주 종말과 시간 여행

왜 사람들은 2권을 읽지 않았을까? 도서관에서 3권을 빌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2, 3. 1권은 많은 사람들이 대출해서 읽었는지 책 가운데가 쩍 갈라졌다. 예전에도 1권이 없어서 대출을 못 했으니 1권의 인기는 대단한 것 같다.

2권은 앞부분만 조금 읽었는지 앞표지가 접힌 흔적이 있다. 하지만 3권은 아무도 읽지 않은 듯 표지를 접은 흔적이 없다. 새 것처럼 보인다. 4, 5권은 아마도 3권과 비슷한 운명으로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으리라. 내가 집어 읽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책보다 이 책을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아마도 1권은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궁금해서 다들 읽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역시 공감하기 어려운 영국식 농담과 이해하기 어려운 박학다식 잡담(예술과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어느 정도 상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에 대해 회의적이었던지 2권은 조금 거들떠보고 3권은 아예 안 봤다.

2권은 우주의 종말과 시간 여행을 다루었다. 주인공 아서 덴트는 지구의 과거로 간다. 석기 시대인 듯. 1권과 마찬가지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마도 3권에서 답이 나올 듯하다.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전개되고 농담은 흐른다.

서양인은 왜 그리 성경 이야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종말, 구세주, 사과 이야기에 왜 그리 집착하는 걸까. 이 책에도 나온다.

로봇 마빈의 대사가 걸작이다. 1권이었나 2권이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런 말을 한다. 삶을 외면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어도 좋아하기는 어렵다고. 정말이지 정곡을 찌르는 우울한 대사 아닌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등장 인물이 바로 이 로봇이다.

정확히 똑같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같은 종류로 묶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 미국 사람 커트 보네거트다. 이 사람이 더 냉소적이다. 더 종말론적이다. 더 웃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소설 '갈라파고스'의 만다락스와 '제5도살장'의 새가 겹쳐 보였다.

이제 읽는 속도가 붙었으니 3권은 후다닥 읽어 치울 듯하다.

3권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 무심한 사람의 무의미한 수다

도서관에 갔다. 1, 2권을 반납했다. 4, 5권을 빌렸다. 예상대로 4, 5권은 깨끗했다. 사서의 손과 나의 손을 제외하고 이 책을 만졌던 손은 없었을 것만 같은 그런 모습으로 4, 5권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4권은 두 권이나 있지? 인기가 좋아서 두 권씩 갖춰 놓은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내 짐작이 틀린 거잖아.

크리켓 얘기가 나온다. 영국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스포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가끔 이 경기 장면을 본 적은 있다. 야구랑 비슷하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전을 찾아봤다. 영국의 국기(國技)란다. 한 팀에 11명. 이 경기의 트로피가 이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떻게? 그냥. 주인공 아서 덴트는 우주의 파괴를 막는다. 진지하게 의도적으로 막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냥 어쩌다가 그냥 그렇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왜 42인지'에 대한 설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정말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던 거로 보이네. 천만에 말씀이다.

다음 편에서 얘기해 줄라고 그러는지 이제 한 술 더 떠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역시나 아서 덴트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다. 나도 관심이 없다.

핵무기와 냉전으로 요약할 수 있었던 지난 1980년대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의 그런 부조리에 지긋지긋해진 작가의 끝없는 불만과 불평이 이런 수다로 나온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고 핵무기의 위험과 전쟁의 도발과 인류의 멸망에서 자유로운 시대는 아니다.

4권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 잠을 주는 수다

4권은 주인공 아서 덴트의 연애 이야기다. 피터팬처럼 남자와 여자가 날아다닌다. 왜냐고 묻지 마라. 여기 4권까지 읽은 당신이 내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돌고래가 인간에게 남기고 간 어항 이야기도 나온다.

3권에서 예고했던 그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는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 보라. 다들 그 메시지에 별 관심이 없으리라 믿는다. 여기 4권까지 읽었다면 말이다. 그나마 4권에서 읽을 만한 농담은 그게 다다. 1권의 점심 농담처럼.

참고로, 다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왜 42인지'에 대한 설명은 4권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5권에서 나오나?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정말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던 거로 보이네. 천만에 말씀이다.

주변 사람들 중에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4권”을 읽어 보라고 권하라. 수면제보다 이 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게다가 부작용도 없다. 대체로 무해하다. 1980년대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핵무기와 빨갱이. 정말 옛날 책이다.

5권 대체로 무해함 :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42

지구를 떠나 외계에 정착해도 주인공 아서 덴트는 여전히 지구인의 그저 그런 일상을 산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나와 상관없다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시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결국 그 일들은 무관심했던 나에게 영향을 미쳤고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우연과 부조리와 불합리가 어처구니없이 많이 발생하는 세상이다.

목숨을 걸만큼 대단하고 소중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소중한 것을 버리고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무모하고도 어리석고도 이상한 일을 했던가.

그 많은 전쟁과 그 많은 죽음이 과연 그 하찮은 것을 위해 희생되었어야 하는가. 우리의 슬픔은 거기서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그저 울거나 웃을 수밖에 없다.

오직 종말이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예전에 잘못 읽었다. 이 소설의 끝은 종말이지 사랑이 아니었다. 예전에 대충 빨리 읽고 내 맘대로 나 좋을 대로 결말을 짓고 그렇게 기억했던 것이었다.

이 소설은 그 어떤 희망도 심지 않는다. 오직 종말이 있을 뿐이다. 세상은 끝장나고 그걸로 끝이다.

산만하고 엉뚱하고 복잡해 보여도, 이 잡다한 것들을 모두 연결시켜 이야기라는 인과논리의 그물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구사하는 농담의 차원이 상당히 지적이고 무척 철학적이다.

작가의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인생관이 다소 불편할 수 있고 이를 표현하는 블랙유머도 불편할 수 있겠다.

참고로, 5권 합본 끝에는 부록으로 등장인물 설명이 있다. 이야기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으려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바쁘다는 말과 시간없다는 말을 거의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을 읽어내긴 불가능할 것이다.

2015.5.13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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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 문명 비판
* 끔직한 미래 세계
*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의 등장

SF의 고전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제목만으로 이 소설에 정말 멋진 신세계가 그려져 있다고 짐작한다면 큰 실수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그린 독재 사회보다 더 끔찍한 세계가 펼쳐진다.

얼마나 끔찍할까? 잠시 그 소름끼치는 그 사회를 엿보자. 이 멋진 신세계의 표어는 '공유', '균등', '안정'이다. 왜 그럴까. 조금 더 보자.

'런던 중부 인공부화 조건반사 양육소'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계급이 정해지고 그 계급에 맞게 신체 조건을 조작한다. 상위 계급은 알파, 베타 등이고 하위 계급은 감마, 델타, 엡실론 등이다. 당연히 하위 계급의 인구가 많아야 한다. 그것도 되도록 똑같은 쌍둥이로. 어떻게? 바로 '보카놉스키 법'으로. 그게 뭔데? 한 개의 난자에서 8내지 96개의 싹을 틔우는 방법.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아보육실 신파블로프식 조건반사 양육실'에서 의식이 눈을 뜨기 전인 아기들에게 전기 충격을 줘서 꽃을 싫어하게 하는가 하면, 자기의 계급에 만족하도록 세뇌시킨다.

이 사회는 세뇌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소마'라는 약을 사람들이 먹는다. 이 약을 먹으면 행복해진다. 부작용도 없다. 불행은 이 사회에서 없다.

임신이 아닌 철저하게 배양 시험관을 통해 인간을 만드는 이 사회에서는 가족이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것도 없다.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은 욕이다. 모든 남자는 모든 여자의 것이며, 모든 여자는 모든 남자의 것이다.

그 어떤 계급 투쟁도 있을 수 없다. 타고난 신체 조건과 철저한 세뇌로 자신의 계급과 일에 만족한다. 또 불안이 생기면 '소마'를 먹으면 그만이다. 이제 이 사회의 표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익숙한 이름들을 읽을 수 있다. 엥겔스, 마르크스, 프로이드, 포드, 맬더스, 다윈. 20세기 문명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이런 이름들에서 잘 보인다. 앞에 보이는 파블로프도 그렇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명 비판적이다. '야만인'의 자살은 이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는 작가의 웅변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왜 이런 비관적인 미래관을 제시하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1932년에 발표했다. 그 당시 사회 상황이 이랬다. 세계 대전으로 인해 과학 문명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인간의 정신을 무시하는 사회학과 심리학과 생물학이 등장했다.

지금도 마르크스, 프로이드, 다윈의 영향력은 대단한데 그 당시는 얼마나 충격이었겠는가. 그런 충격 속에서 사람들은 장미 빛 미래 사회를 꿈꾸었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반기를 들어 과학 문명이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제3장에는 독특한 소설 기법이 돋보인다. 마치 영화의 여러 장면이 몇 개로 쪼개져 동시에 보이는 것처럼 글을 썼다.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의 구절을 많이 인용했다. 제목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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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완벽한 전체주의 정치 체계를 가상으로 그린, 조지 오웰의 정치 풍자 미래 소설.

20세기, 세계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분할 점령하고 있다. 오세아니아의 '영사', 유라시아의 '신(新)볼세비즘', 이스트아시아의 '죽음숭배'. 이 국가들은 부자유와 불평등을 영속화시키려고 끝없이 전쟁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자가 풍족하지 못한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살아간다.

"대형"이라는 정체불명의 독재자 아래 일당 독재 체재의 국가인 오세아니아의 영사(영국 사회주의).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이 당원들을 철저히 감시한다. 자식들은 부모를 사상범으로 고발할 정도로 완벽한 통제 사회. 신어(新語)를 보급하여 다양한 언어 구사를 막는다. 성(性)을 극도로 제한한다. '텔레스크린'이 끝없는 세뇌 교육을 한다. 4개의 성(省)이 있는데 평화성은 전쟁을, 진리성은 거짓말을, 애정성은 고문을, 풍부성은 굶주림을 담당하고 있다.

진리성에 일하는 윈스턴 스미드(주인공)는 당의 명령에 따라 뉴스 기사를 조작한다.

이야기 전개는 윈스턴이 당의 보도가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를 잡으면서 시작한다. 그는 사상범으로 애정성에 잡혀가 고문을 받고 풀려나, 마침내 공개 처형된다. 작가는 인간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주인공의 최후를 통해 전체주의 사회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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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콘래드>는 로저 젤라즈니의 첫 장편소설로 1966년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SF와 신화를 결합한, 독특하고 현란한 문체를 보여준다.

사내의 이름이 콘래드다. 그는 불멸의 인간이다. 그의 왼쪽 뺨에는 갖가지 밝기의 자줏빛으로 채색된 아프리카 지도 같은 반점이 있고, 머리카락은 눈썹 위로 손가락 하나 두께도 안 되는 곳에서부터 나 있으며, 좌우 눈동자가 다르고, 오른쪽 다리가 짧기 때문에 그만큼 굽을 높인 구두를 신고 있다. 읽다 보면, 알겠지만 콘라드는 헤라클레스와 닮은꼴이다.

사건 전개 도중의 모든 사건과 등장 인물과 배경은 대부분 신화적이다. SF적 세계에 고대 신화의 인물을 등장시켜 묘한 작품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로 젤라즈니의 소설 세계다.

책을 읽는 독자는 종잡을 수 없는 대화와 비현실적인 인물 묘사를 접하게 된다. 또 줄거리도 그리 확실한 편이 아니고 극적 전환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재미있게 끝까지 읽을 분과 도중에 읽기를 중단하는 독자의 차이는 젤라즈니의 그런 이상한/독특한 문체에 공감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나는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끝까지 다 읽었다.

이 책에는 <내 이름은 콘라드>와 더불어 중편 <프로스트와 베타(For A Breath I Tarry)>가 수록되어 있다. 성경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SF적으로 표현했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중편이라고 한다. 깔끔한 문체가 돋보인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기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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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과 제국 
Foundation and Empire 1952년

아이작 아시모프
황금가지 2013년

1권 파운데이션을 도서관에서 대출한 사람이 반납을 영 안 해서, 2권 파운데이션과 제국부터 읽었다. 매권 시작부분에 지난 이야기를 요약해주기 때문에 큰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해리 셸던의 심리역사학적 필연성. 운명론, 결정론. 이미 다 정해져 있고 개인이 아무리 뭘 어떻게 해도 소용이 없다. 이에 반발하며 행동하는 장군, 그리고 뮬이라는 이름의 돌연변이.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의 의지로 죽은 자의 예측에 맞서 싸울 겁니다.” 46쪽.

제1부 장군 이야기는 허무했지만 제2부 뮬 이야기는 반전과 놀라움이 있었다. 그 반전이란 것이 추리소설 많이 읽은 이들한테는 익숙해서 뻔했지만, 가장 의심스럽지 않고 가장 가까이 있는 자가 범인이다, 로맨스로 마무리되는 여운이 진해서 살짝 감동했다.

과연 이 뮬의 정체는 뭔가? 왜 어떻게 그렇게 쉽게 빨리 정복할 수 있었지? 이런 호기심에 계속 읽어나가게 한다. 그리고 뮬의 돌연변이적 초능력이 밝혀지면서 파운데이션이 하나 더 있다는 것도 알려진다. 제2파운데이션. 다음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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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파운데이션
Second Foundation 1953년

아이작 아시모프
황금가지 2013년

도대체 제2파운데이션은 어디에 있는가? 그 여정을 그린 3권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엄밀한 의미에서 딱히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다. 주력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매권 나오긴 하지만 그 캐릭터가 시리즈 전체를 총괄하며 이야기의 큰 흐름을 차지하지 않는다. 해리 셸던의 '심리 역사학'이 핵심이자 주인공이다. 과연 이 예언이 실현되느냐 마느냐가 이야기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돌연변이 초능력으로 우주 정복을 거의 실현한 '뮬'한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제2파운데이션. 제1파운데이션을 점령했으나 아직 그 존재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 제2파운데이션. 셸던이 남긴 힌트는 '끝에 있는 별'이 전부다. 여차저차 해서 그 끝에 있는 별 로셈으로 향하고 드디어 제2파운데이션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원은 끝이 없다. 제2파운데이션 위치를 알려주는 결정적 힌트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알고나면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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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임대합니다
김상원, 가양, 녹희재, 이건해, 우재윤
황금가지
2022.06.02


타인의 신체를 빼앗는 신체강탈자를 소재로 진행한 '제2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 다섯 편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그 소재 자체가 결말이 되는 식이다. 그래서 뭔가 뒤에 더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대상 수상작 '맑시스트'가 가장 좋았다. 다른 작품들은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끝나 버린다. 신체 강탈됨. 끝. 이야기가 완결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김상원의 '맑시스트'가 유일했다. 소설 쓰기에도 경력자는 확실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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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or Into Summer; Robert A. Heinlein; 1957년 발표작

초기 작품이라서 그런지, 조금 엉성하기도 하고 약간 유치하다.

<여름으로 가는 문>의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인 듯하다. <우주의 전사>에서 읽었던 현란한 독설을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도 유감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하인라인과 입씨름해서 이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독설은 내가 그의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 중에 하나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독설가이며, 자신과 이혼한 여자들에게 위자료를 지불하기 위해 열심히 작품을 써야 했던 하인라인. 나이든 이혼남이 갖는 환상과 꿈은 무엇일까? 자신을 배신한 여자들에게 복수! 자기보다 나이 어린 여자와의 결혼! 작가는 그런 소망을 SF기법으로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다.

집안 일손을 거들어 주는 여러 가지 자동화 기계를 발명하는 기술자인 데이비스(나)는 친구인 마일즈와 '문화 하녀 기구'라는 작은 회사에서 경영한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벨이라는 여자가 경리를 담당하면서 그 회사에 참가한다. 나는 벨한테 약혼 선물로 회사 주식의 일부를 준다.

마일즈와 벨은 경영의 확대를 반대하는 나를 배신한다. 회사에서 쫓겨난 나는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30년간 냉동 수면에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30년 후, 세상은 자신이 발명한 기계들이 완벽한 형태로 되어 있었고, 한때 사랑했었으나 자신을 배신한 벨은 할머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다시 3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데……

SF 전통 기법인 냉동 수면과 타임머신의 절묘한 결합과 극적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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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은 우리나라 청소년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일본 SF 대작이다. 워낙 추천이 많았다.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 보았다. 은하영웅전설은 은하제국의 야심가 라인하르트와 그에 맞서는 자유행성동맹의 명장 얀 웬리의 승부를 다루고 있다.

서기 2081년 인류는 지구를 탈출하여 알테바단계의 제2행성 테모리아로 정치적 통일의 무대를 옮겨 은하제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그 해를 우주력 1년이라고 명명한다. 은하제국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독재로 세워진 국가다.

은하제국에에서는 루돌프의 반대파를 철저하게 숙청하자, 그 반대파 중 몇 명이 도망쳐서 민주공화제를 신조로 삼는 자유행성동맹을 결성한다. 또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사이에 상업 자유 무역 국가인 페잔 자치령이 세워진다. 은하제국과 행성동맹은 전면전에 돌입한다. 이 전쟁에 젊은 두 영웅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금발과 날카로운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귀공자로서 전쟁의 천재인 은하제국의 로엔그람 폰 라인하르트. 역사학을 배우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자기 뜻과는 반대로 군인이 되었고 전쟁을 싫어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맹군 대장 얀 웬리. 이들은 바로 그 두 영웅이다.

또 이 두 국가의 경제력을 휘어잡아 우주를 지배하려는 페잔의 영주인 아드리언 루빈스키. 그 루빈스키를 조종하는 지구교 총대주교는 인류의 중심을 다시 지구로 돌리려 한다. 이들이 벌이는 음모와 야심과 전쟁과 사랑과 우정이 우주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얀과 라인하르트의 펼치는 우주 전함 싸움의 전략과 전술이 이 소설의 재미다. 얀은 전쟁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또 전쟁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목숨은 결코 전쟁에 바치지 않는 정치꾼들에게도 냉소를 보낸다. 라인하르트는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야망을 갖고 출세를 향해 돌진한다. 목숨은 중시하지 않고 오로지 승리에 집착한다.

이 SF를 청소년용 SF라고 단순하게 볼 수가 없는 것은 대비되고 있는 정치형태와 등장 인물의 성격이 진지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정치에 대한 작가의 역사적 통찰력이다. 작품의 서술 흐름이 꼭 역사가의 구술처럼 진행된다. 이것은 작가가 얀의 입장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정치에 대한 냉소와 지난 인류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것이 작가와 얀이 똑같다.

민주 공화정인 민주 체재인 자유행성동맹와 전체 군정의 독재 체재인 은하제국의 정치적 변화도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입맛이 씁쓸했다. 자유 행성 동맹에서 일어난 쿠데타는 우리나라 근현대 정치사를 보는 것 같았다.

읽을 가치는 충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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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식민지로 전락한 달세계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마치 과거 호주의 이민처럼 죄수나 추방자가 달에 모여 산다. 또 마치 독립 이전의 미국처럼 지구에 곡물을 꼬박꼬박 수출한다. 그러나 달에는 먹고 죽지 않을 만큼의 물자 공급만을 받는다. 경찰도 법도 없다. 달세계 행정부 관청이라는 지구 기구가 하나 있을 뿐이다. ​

여자의 수가 무척이나 적어서 다부다처(多夫多妻)제다. 여자는 결혼하고 또 결혼할 수 있다. 단 먼저 결혼한 남자가 다음에 결혼할 남자를 인정할 때 결혼할 수 있다. 중복 결혼이 가능한 것이다. 소위 "가계형 결혼 제도"다. 한 집에 여러 남편과 여러 부인이 산다. 또 여러 자녀가 산다.​

이런 달세계의 모든 기계들을 운영하는 행정부 컴퓨터 마이크. 마이크는 사색을 할 줄 알고, 농담도 할 줄 아는 명석한 컴퓨터다.​

이 컴퓨터에게 마이크로프트 홈즈라는 별명을 붙이고 서로 대화하고 수리하는 컴퓨터 기술자인 마누엘(나)은 왼손잡이로 10여 개의 왼팔은 가지고 있다.​

나를 가르쳤던 교수 데 라 파스 교수. 그는 달세계에서 저명한 인사다.​

홍콩(달세계의 홍콩)에서 달세계시로 와서 항의 집회에서 행정부 타도를 외친 급진 운동권인 와이오밍. 금발의 아름다운 여자.​

컴퓨터 마이크, 기술자인 마누엘, 교수인 데 라 파스, 행동파 운동권인 와이오밍. 이렇게 넷이 모여 달세계가 지구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 혁명을 쟁취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다.​

이들은 컴퓨터 마이크의 도움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3인 세포 조직을 만들기 시작하여 조직을 강화한다. 민중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구에서 온 군인이 달세계 여자를 강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구 행정부는 해체된다. 지구와 협상을 하러 지구에 갔으나 거절당한다. 지구에서는 달을 정복하기 위해 쳐들어오고, 달과 지구는 전쟁을 벌인다. 마침내 달세계는 독립을 쟁취하지만, 교수와 마이크는 죽고 만다.​

이 소설의 중심 아이디어는 사람처럼 농담하고 사색하는 컴퓨터 마이크로프트다. 혁명의 주도적 역할을 이 컴퓨터가 해낸다. 사실상 혁명은 이 컴퓨터가 해낸 셈이다. 혁명을 완수한 후 죽는 다분히 인간적인 컴퓨터다. 과학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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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모비딕 펴냄

로봇, 노동자 계급의 은유
로봇을 통한, 인간의 의미 묻기
기계화 문명에 대한 성찰

로봇의 어원을 말할 때마다 인용되는 작가의 작품, 바로 카렐 차페크의 R.U.R, 줄여서 [로봇]이다.

차페크의 작품들은 이야기 상황과 그에 대한 대한 여러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놓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생각하는 재미가 있다. 다분히 일상적이면서도 의외의 결과를 보여줘서, 깜짝 놀라곤 한다. 희곡 [로봇]도 그랬다.

서막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끝부분 도민과 헬레나의 대화. 옮겨 보면 이렇다. "헬레나: 당신은 짐승이에요! 도민: 이상할 거 없죠. 남자는 누구나 조금은 짐승이랍니다. 그건 만물의 자연질서죠. 헬레나: 당신은 미치광이야! 도민: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은 광기가 있답니다, 헬레나. 그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죠.(53~54쪽)" 쿠쿡. 귀여운 재롱동이.

인간의 문명, 산업화와 기계화는 인간의 노동을 줄이는 게 목적이었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짰던 옷감을 방적기가 사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좋게 만들어냈다. 어떤 면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이익을 추구했고, 산업화는 효율을 추구했다. 그 틀에서 사람들은 점점 기계처럼 변했다. 감정을 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점점 기계처럼 좀더 빠르게 좀더 효율적으로 변하려고 했다. 심지어, 이익과 효율을 위해서라면 영혼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별별 짓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쓴이가 작품에서 인간 문명을 바라 보는 시각은 무척 다양하다. 등장 인물들의 로봇에 대한 각자 생각들은, 자본주의 기계 문명에 대한 글쓴이의 다양한 생각이기도 하다.

로봇은 손으로 일하는 노동자 계급을 뜻하기도 한다. 제2막에서 반란을 일으킨 로봇 라디우스는 사람 알뀌스뜨만 살려 준다. "그는 로봇이다. 그는 로봇처럼 손으로 노동을 한다."(139쪽)

로봇은 처음에는 감정이 없는 기계였다. "스스로의 의지도 없고, 아무런 열정도, 역사도, 영혼도 없는 존재"(43쪽)다. 그러다가, 필요에 의해서, 혹은 어떤 사람의 욕심 때문에 하나 둘 인간의 속성을 추가한다. 로봇을 고통을 느끼게 하여 자학하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로봇이 고통을 통해 감정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 인간을 닮으려고 했고 결국 지배하려는 욕망까지 닮아 버린다.

인간에는 고통, 영혼, 노동,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서로 지배하고 싸우고 미워하는 본성도 있으나, 우린 그걸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이게 작가의 생각인 듯하다. 작품의 끝부분에서 그는 생명과 사랑을 강조한다. 오직 그것만이 불멸이라고 외친다. 그렇다. 그것은 불멸이다! 인간이 사라지고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정보사회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자본주의 산업화 시대, 난 이런 옛날 작품을 읽으며 아직 사람들이 정보가 아닌 서로의 감정을 찾고 있다고 믿는다.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믿으면서도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경계하면서.

길에서 펴낸 번역본은 절판되었고 2010년에 리젬에서 다시 번역본을 펴냈다. 리젬은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꾸몄다. 표지 그림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어린이용이니 그럴 수 있지만 표지 글에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적은 것은 용서가 안 된다. 이는 카렐 차페크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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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시공사 | 2004년

이 책은 작가의 회고전이다. 단편마다 작가가 회상한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발전한 사연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르귄의 소설 세계는 중세 낭만주의 SF 판타지다. 주 분위기는 중세 판타지 풍이다. 부가적으로 SF 소재다. 문체는 꿈결처럼 매끄럽고 부드럽게 흐른다. 사건보다 심리를 중시한다.

1. 셈레이의 목걸이 Semley's necklace
이 단편소설은 장편소설 '로캐넌의 세계' 첫부분이 되었다. 중세 판타지다. 여러 계급이 나온다. 그 세계를 둘러싼 것은 우주 식민지라는 SF다. 전설 같은 이야기를 SF로 풀어냈다.

2. 파리의 4월 April in Paris
르귄의 초기 작품이다. 이 단편소설이 자신의 출발점이란다. 자신에게는 무척 의미 있는 작품이겠지. 돈을 받고 쓴 첫 작품이라니까. 작가는 자기랑 맞는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아무리 작품을 잘 써도 그 작품을 제대로 알아 봐 줄 출판 편집자가 없으면 출판되지 못한 원고로 남을 뿐이다. 어딘지 모르게 작가의 실생활이 조금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3. 명인들 The masters
갈릴레이가 받았던 종교 재판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과학자가 자신이 발견한 과학적 사실이 사회의 지배 질서에 어긋날 때 과연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그 사실을 고수할 수 있겠는가. 과학자가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는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다. 기술자가 아니라 사상가인 것이다. 과학의 힘이 약했던 시절에는 꽤나 무게가 나가는 주제였으리라. 하지만 요즘 과학은 지나치게 힘을 얻었다.

4. 어둠상자 Darkness box
그림자라는 소재에 대한 작가의 집착이 시작된 작품인 듯. 그림자에 대한 심리적 해석은 어스시 시리즈 1권에 나타난다.

5. 해제의 주문 The word of unbinding
어스시(EarthSea) 시리즈의 출발점이 된 단편이다. 번역자는 땅바다 시리즈라고 했는데, 그냥 영어로 읽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최근엔 영화로 나와서 게드 마법사 시리즈로 알려진 듯. 그 시리즈 3권에 이 단편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웅진에서 출판한 어스시 시리즈 2권까지 읽은 나로서는 3권 이야기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스시 시리즈의 분위기는 그대로 담고 있어서 읽기 편했다.

6. 이름의 법칙 The rule of names
이 단편 역시 어스시 시리즈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 내용이라기보단 그 마법 세계의 원칙이다. 참된 이름이 그 존재를 통제한다는. 단편의 이런저런 생각이 모여서 어스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거대한 세계의 모습이 한 번에 떠오를 일은 없고 그렇게 단편적으로 보이다가 나중에 크게 다 보이는 것이겠지.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작법이다.

7. 겨울의 왕 Winter's king
이 작품은 그 유명한 장편소설 "어둠의 왼손"의 실마리였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쓴 직후에 이 세계의 사람들이 양성인(여성이 될 수도 남성이 될 수도 있다)인 줄 몰랐다고 한다. 1년 후에나 알았다고. 그래서 다시 이 글을 출판하면서 양성인으로 고쳐 썼다고. 꼭 그래야만 했나 싶다. 그대로 두는 게 낫지 않았을까. 번역에서는 이 점을 크게 고려 하지 않았다. 우리말은 주어의 성을 크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8. 멋진 여행 The good trip
작가는 자신의 글이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현실을 도피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을 반영한다. 작가는 독자의 해석이나 이해나 비평에 대해 자신의 작품이나 입장을 변호해야 할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작가의 손을 떠나 인쇄된 글은 이미 스스로 생명력을 지닌 독립적 존재다. 작가가 그 작품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 것은 이미 자신도 독자의 입장일 뿐이다.

9. 아홉 생명 Nine lives
클론 이야기다. 인간 복제.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심리적 측면에 치중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르귄을 잘 권하지 않는다. 르귄의 심리적 측면에 치중하는 이야기 방식 때문이다. 딱히 사건 전개 위주가 아니라 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중시한다. 따라서 지루하느니 재미없다느니 하는 독자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하다. 자기가 읽고자 하는 게 없는 것만 나오는 책을 누가 재미있게 끝까지 읽겠는가.

10. 물건들 Things
편집자가 제목을 바꿔야 한다고 말할 때는 객관적인 이유 때문이다. 편집자가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대다수 독자의 해석을 잘 아는 사람이다. 제목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는 편집자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 이렇게 애써 자신이 처음 붙인 제목을 고집해서 다시 출간하는 것은 자기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가 작가의 의도대로 읽는 것은 아니다.

11. 머리로의 여행 A trip to the head
글이 막힐 때가 있다. 어느 작가나 언제나 술술 글이 풀려서 쓰진 않는다. 글이 안 팔리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글이 안 써지면 최악의 경우 작가를 죽음으로 몬다. 더 안 써지면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자살이 빈번한 건 그래서다. 쓴 글이 아주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일단 하나 완성하면 다음에 또 쓸 수 있다. 작가에게 자신의 존재 의미는 자신이 쓴 책이 많이 팔리거나 읽히는 것보다 자신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12.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Vaster than empires and more slow
외계 존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다루고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는 철학적 인식론으로 접근했다면 르귄의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는 심리적 감정론으로 접근했다. 타자는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자를 대하는 우리의 일차적 감정은 공포인 듯하다. 그 다음이 혐오. 왜 사랑일 수 없을까. 르귄이 그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진 않는다. 르귄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감정과 심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이다. 이성적이라기보단 감성적인 사람이다. 르귄이 주로 다루는 문제는 감정이다. 감정은 명확히 말할 수는 없어도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우리 삶은 변한다.

13. 땅속의 별들 The stars below
지상에서 쫓겨난 천문학자가 지하에서 발견한 별.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할 수 없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한 쪽이 닫히며 다른 쪽이 열리기 마련이라고. "명인들"처럼 과학자의 이상형을 그리고 있다.

14. 시야 The field of vision
외계 생명체가 우리에게 자신의 신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지금껏 못했을까.

15. 길의 방향 Direction of the road
상대성의 원리. 나무가 느끼는 속도와 자동차의 속도. 왜 이렇게 웃기지. 웃으라고 쓴 건 분명 아닌데.

16.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대한 기억과 도로 표지판(Salem Oregon)을 거꾸로 읽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농담이겠지. 실제 동기는 따로 있다. 미국 사상가 윌리엄 제임스가 쓴 '도덕적 철학자와 도덕적 삶'을 읽고, 그 글의 주제를 은유로 표현한 이야기로 만들었다. 당신은 집단의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가? 타인의 불행을 담보한 다수의 행복은 정당한가? 질문을 하는 소설이다. 이 책에서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작품이리라. 가장 잊혀지지 않는 소설이 되리라.

17. 혁명 전날 The day before the revolution
장편소설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에 나오는 오도주의 사상가 오도에 관한 이야기다. 장편을 끝내고 외전으로 만든 단편이다. 오도주의는 일종의 무정부주의다.

이 책을 다 읽는 데 5일이 걸렸다. 읽는 속도가 빠르고 이해력이 높다고 해도, 이 책은 빠른 독서를 용납하지 않는다. 빨리 읽으면 남는 게 없고 느낄 수 있는 것도 적다. 천천히 읽으면서 글쓴이가 전하려는 감정과 심리를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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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4 - 듄의 신황제   
원제 : God Emperor of Dune

프랭크 허버트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황금가지 2021-01-22 

양장본 696쪽 155*235mm 1044g
ISBN : 9791158887575


레토는 모래벌레의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수천년의 평화. 사막이라고는 이제 아주 한정된 곳만 있다. 스파이스 또한 그 수가 줄었다. 듄 제국의 황제인 레토가 이 스파이스를 독점하고 있다. 진정한 브레맨은 사라지고 브레맨을 흉내낸 박물관 전시용 브레맨이 있을 뿐이다. 제국의 반란군이 생기지만, 그 힘은 미약하다. 암살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여성 군대인 물고기 웅변대를 지휘하는 남자는 끝없이 복제된 골라 던컨이다. 유전자 교배는 황제 자신이 하고 있다.

레토는 듄이 다시 사막으로 돌아갈 것이고 새로운 모래벌레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결국 자신이 모래벌레가 된다는...? 사막->물->다시 사막->물, 이런 순환이 반복되는 걸까.

레토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모두 가진 존재다. 물론 미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다. 대신 유한한 인간성은 상실한다. 신성을 얻는 대신 인간성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영원은 열정을 없애고 지루함에 빠진다.

 


정확히 말하면, 레토는 신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다. 4천년의 생명을 지닌 벌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존재다. 듄 제국의 황제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신과 같은 존재가 된 것에 대한 저주인가. 레토의 약점은 아직 그런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것? 연민으로 결혼하려는 레토는 아직도 인간적이다.

유전자 교배를 통해 레토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이을 다음 황제의 탄생?

거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으면서 결집시킨 여성군대를 거느리면서 경제 독점과 종교로 제국을 지배한다. 갑자기 북한의 기쁨 조가 생각이 나는 이유는?

스스로 폭군이 되어 가는 걸 알면서도, 그걸 평화의 시대인 황금의 길이라고 부르는 모순된 행동은 뭘까.

듄은 상당히 많은 시각을 가진 다층 소설이다. 신화, 정치, 경제, 신, 철학적 문제, 이성, 물질, 역사 등에 관한 의문과 답이 이어진다. 4부는 신에 대한 작가의 사색이다. 물질에서 비물질로 변하는 레토 황제. 불멸은 형태가 없어야 한다? 이제 듄 제국은 복제인간 골라 던컨한테 인계된 건가?

예언, 전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흥미롭다. 미래를 볼 수 있으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절대적으로 예언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미래를 미리 확실히 알 수 있다면, 그 미래를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듄의 황제들은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죽을지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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