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최성은
민음사
2022.02.25.

 

'솔라리스'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대표작이다.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많이 읽혀졌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을 읽어내는 이는 드물다.

무척 씁쓸한 결말이었다. 달콤한 환상만 골라 먹으려는 이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겠지. 구원을 바라지 않는, 불가지론자/무신론자의 바람은 무엇인가?

외계와의 접촉.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와 만난다. 살아있는 바다? 외계 존재도 인간을 이해하려는 듯 뭔가를 보내는데...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솔라리스의 바다와 소통할 수 있겠어?" 52쪽

"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치 않은 거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거야." 160쪽

그가 지구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솔라리스 바다의 움직임을 해일이라고 명기했음을 알 수 있다. 솔라리스 앞에서 지구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무능력하고 우스꽝스러운 발상이다. 245쪽

솔라리스의 바다를 핵무기로 파괴해야 한다는 청원이 제기된 것은, 솔라리스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복수보다 훨씬 가혹한 방식이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모두 파괴해야 한다는 식의 대응책이었기 때문이다. 271쪽

이런 식의 대응은 후속작 '우주 순양함 무적호'에도 나온다. 솔리리스는 1961년, 우주 순양함 무적호는 1964년 발표했다. 대결로 치달아서, 완전히 없애려고 시도한다. 헛수고가 되지만.

"채찍으로 바다를 내려쳐서 복수를 시도하는 건 어때?" 340쪽 '우주 순양함 무적호'에도 똑같은 말이 나온다. "배와 선원들을 침몰시킨 벌로 바다를 채찍질하는 짓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무적호 184쪽 애초에 의미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이야기 중후반에서 켈빈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없애고자 했던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 자기 기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진심으로 사랑한다.

"물론이지, 나는 당신을 사랑해. 만약 당신이 본래의 그녀였다면, 사랑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
"왜요?"
"내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거든."
323쪽

켈빈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속죄하는 마음에서 이 존재를 사랑하는 것일까. 본질적으로 사랑, 그 자체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이런 켈빈한테 스나우트가 냉정하게 말한다.

"자네는 지금 이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것은 아름다운 노력임에 분명하지만, 결국은 헛된 일일세. 달리 생각하면, 그게 과연 아름다운 행위인지도 잘 모르겠군. 어리석은 행위를 가리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335쪽

그리고 켈빈의 뼈를 때린다.

"그녀는 자네 뇌의 일부를 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고. 그녀가 아름다운 건, 자네의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네. 그러한 근거를 제공한 건, 순전히 자네야. 순환적인 환상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게!" 342쪽

정작, 심리학자는 켈빈이고 스나우트는 인공두뇌학자다.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고. 켈빈의 심리 분석은 본인 스스로가 아니라 스나우트가 해준다. 스나우트는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니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그 존재의 자살로 끝난다. 기억을 모방한 존재인지라, 마음과 행동의 최종 결과도 같아져 버렸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난 듯한데, 주인공/작가의 바람을 표현한 사색/후기가 덧붙었다.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신은 바로 그런 신이야. 자신이 겪는 고통을 구원이라 떠벌리지 않고 아무도 구원하지 않는 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인 신 말일세." 435쪽

켈빈은 솔라리스 바다와 직접 접촉한 후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내 안에는 아직 일말의 기대감이 남아 있다. 그것은 그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자취다. 내가 여전히 기대하는 완결과 환멸과 고통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잔혹한 기적의 시대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굳건하게 믿고 있다." 447쪽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이 책을 읽은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그 사람이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장담한다. 이 소설책이 그리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에 그런다. 그는 분명 상당히 복잡한 인간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리라. 나도 그 부류니까.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지 못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정리할 수 없었다. 장황스러운 설명과 철학적 사유는 어지러웠다. 다시 한 번 읽었다. 여전히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소설은 우주선 출발로 시작한다. 주인공 켈빈이 미지의 행성 솔라리스로 향한다. 솔라리스 스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켈빈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다. 스테이션에 있는 동료 학자들은 환각에 시달리고 있다. 캘빈도 그 환각과 직접 만난다. 환각이 솔라리스의 바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는다.

솔라리스 행성은 인간의 인식 범위에 벗어난 존재다. 이 행성의 유일한 생명체로 여겨지는 것은 바다인데, 이 또한 인간의 과학적 사고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존재다. 작가는 이 솔라리스에 대한 인류의 접근 방식이 인간/지구 중심적인 인식 체계를 고집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걸 비웃는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솔라리스에 대한 도전은 그 문명에 대한 이해보다 더 중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면적인 문제, 즉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솔라리스에 대한 묘사는 백지다. 그 백지에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느껴서 그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는 그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 사실과 문헌과 대화를 꾸며냈다. 솔라리스는 당신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불가지론의 사유에 이를 수도, 한낱 우스개로 여길 수도 있다.

작가는 지구 중심적 사고에 대한 회의를 켈벤의 동료 학자인 스노우를 통해 말한다. SF소설과 우주에 대한 생각의 옹졸함을 꼬집는다. "우리는 우주를 정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지 지구를 우주 규모로 확대하고 싶어할 뿐이야. (······)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아냐. 지구 이외의 다른 세계 같은 건 필요 없어. 다만 우리를 비출 거울이 필요한 것뿐이야. 다른 세계 같은 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 우리에겐 지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그 지구만으로는 뭔가 불충분한 것 같이 느끼지. 그래서 우주에서 이상향을 찾아 보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지구 문명보다 더 완전하고 우수한 문명을 가진 세계를 찾아 우주로 나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미개했던 과거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거야."

이 책이 난해한 것은 아니다. 인식론을 다룬 철학책은 아니니까. 이야기를 쓴 소설책이기에. 이야기는 켈빈의 과거 정신적 고통과 사랑이 그 환각적 존재와 연결되면서 감상적으로 흐른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켈빈의 과거를 읽어내어서는, 보고 만질 수 있는 가짜 존재를 보낸다. 옛날에 켈빈이 매정하게 애인을 떠난다는데, 애인이 그만 자살해 버렸다. 그 옛 애인이 다시 생생하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다. 허상이라는 걸 알지만, 진짜 같아서 믿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독자를 그런 소재의 재미로 이끌기보다는 생각하는 흥미로 인도한다. 솔라리스에 대한 이해 불가능은 인간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소설 마지막 부분에 켈빈의 독백, "지구는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대한 도시에 파묻혀 버린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를 읽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텅 빈다.

사람이 사람을 정말 이해할 수 있는가.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한가.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남을 추측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솔라리스가 당신에게 묻는다. 책장을 덮어도, 그 물음은 한동안 당신 머릿속을 맴도리라.

렘의 솔라리스는 세 가지 시각에서 읽을 수 있다.

1. 과거 소중한 존재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공포
자살했던 옛 애인이 다시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점만 강조해서 읽으면, 단순한 공포소설이다. 렘이 아무리 과학 지식을 줄줄이 늘어놓는다고 해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진짜처럼 출몰하는 과거의 유령들. 그리고 이를 물리치려거나 거기에 매혹되는 인물들. 이 소설을 영화로 바꾼 감독들은 이 점을 주목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이 소설을 죄의식과 구원의 주제로 바꾸었다. 원작 소설가가 영화 제작자한테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은 물론이다. 인간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으니. 원작자가 북쪽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놓았는데, 각색자가 남쪽으로 돌려놓은 꼴이다.

2. 진정한 소통의 부재
이야기의 재미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인간이 자기 중심적 사고를 우주로 팽창한다는 소설가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의문이다. 솔라리스와 인간이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맞추면 정작 나 자신을 전할 수 없고, 나 자신의 메시지만을 전하면 상대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남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남과 같은 무엇을 전하는 게 전부다. 근본적으로 남과 다른 무엇이란 애초부터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자기와 공통되는 부분만 받아들이기 마련이기에.

3. 외계 존재의 인식 방법
렘은 이 소설로 기존 과학소설의 전제를 무너뜨렸다. 기존 이야기는 외계 존재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확신하거나, 외계 존재를 무시무시한 침입자로 묘사했다. 왜 이런 식으로만 외계인을 볼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렇다고, 렘은 말한다. 인간은 다른 존재에 대해 여전히 자신을 투사해서 볼 뿐이다. 자신을 투사할 수 없으면 괴물이다. 없애야 한다.

솔라리스는 다른 과학소설이 무시했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지구 이외의 세계 존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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