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9년 11월 발
어릴 적에 이 책은 내겐 공포였다. 너무 무서워서 끝까지 읽지 못했다. 앨리스가 목이 길어져서 뱀처럼 변한 장면 이후로는 더 무서운 장면이 나올까 봐 더는 다음 장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어, 이제 더는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책을 읽으며 상상에 빠지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앨리스는 호기심 하나만으로 토끼를 따라가서 굴에 빠져 추락한다.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오직 지금 읽는 쪽에 집중하고 이미 읽은 쪽은 잊고 다음 쪽에 나올 것을 기대한다.
이 책은 발표 당시에 파격적인 오락물이었다. 교훈 따위를 추구하는 구닥다리 이야기를 걷어차고 즐거움을 추구했다.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외우도록 했던 시를 패러디해서 웃긴다. 상상을 마음껏 펼치는 즐거움은 그 어떤 소설에서도 읽지 못했던 것이었다.
루이스 캐롤이 수학자였다. 언어를 수학처럼 비례와 대칭으로 만들어 재미있는 퍼즐로 바꾸었다. 논리적으로 언어적으로 일부러 미친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정말 미친 사람은 논리적 일관성 없이 언어적 완결성이 없이 횡설수설한다.
진정한 소설가, 즐거운 상상가, 몰두한 독서가는 무엇을 하는가. 이 소설 후반부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눈을 감은 채 앉아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지루한 현실로 바뀌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상상력을 회복하기 좋은 책이다. 기꺼이 이야기를 마시고 하얀 토끼를 쫓아라. 지루한 현실이 당신을 질식시키지 않도록 호기심을 따라 모험을 떠나라.
열린책들 번역본에서 알아두어야 할 점 두 가지!
1. 삽화가 존 테니얼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머빈 피크가 그린 그림이다. 익숙치 않아서 어색해 볼 수 있겠으나 나는 좋았다. 나는 테니얼 그림이 무섭다. 반면 피크 그림은 그렇지 않다. 부럽고 다정하다.
2. 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지만,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같이 들었다.
그 많은 번역서 중에 열린책들 번역본을 추천하는 이유
주석 때문이다. 그냥 읽었을 때는 뭐지 이상하네 괴상하네 틀렸네 정도로 이해하고만 넘어갔던 부분을 잘 설명해 놓았다. 원서로 읽어도 잘 몰랐긴 마찬가지였다. 원서로 읽으면서 무척 도움이 되었다.
지은이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였다. 이야기에서 이상하고 괴상하고 틀린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난센스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1장에 나오는 곱하기 셈은 그냥 틀린 게 아니라 수학적으로 질서 있게 틀린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주석에 따르면, 앨리스가 4 곱하기 5는 12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10진법으로는 틀리지만 18진법으로는 맞는 말이다. 20 = 18 + 2 이후 앨리스는 진법을 3씩 올려서 셈한다. 그래서 4 곱하기 6은 13이라고 말하고 21진법으로 맞는 계산이다. 24 = 21 + 3 그렇게 계속 이어져 4 곱하기 12까지 도달하면 39진법은 19가 되고 4 곱하기 13 이후에도 20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앨리스가 도저히 20에 도달할 수 없다고 푸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앨리스는 상당히 수학적으로 똑똑한 유머를 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작가가 한 것이고 어린이 독자가 이를 알아차리라고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구구단(영국에는 십이단까지 있단다.)에 틀리니 엉뚱한 말을 한다고 여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201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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