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루이스 세풀베다
바다출판사
2003.05.26.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은 1993년 국내에 번역되어, 입소문으로 빠르게 알려졌다. 소설 좋아하는 사람치고 이 작품을 읽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나 자신도 소문을 듣고 읽었다. 그 작품이 마음에 들어, 번역된 다른 작품 [세상 끝으로의 향해]를 읽어 봤는데, 번역 문제인지 내가 이해가 안 되서인지 머리만 아팠던 거로 기억한다. 물론, 그 책을 다시 읽을 마음은 없다.
다시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 보려니, 예전처럼 손에 잡히는 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무턱대고 아무 책이나 거침없이 소화하며 읽어내는 시절은 지났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예전에 인상이 깊었던 작가의 작품에 손이 갔다. 인터넷 서점을 좀 검색해 보니,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이 꽤 많이 번역되어 있었다. 마침 송파 도서관에 그 책들이 있었고, 대여 가능했다. 일단 두 권을 빌렸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 그리고 이 책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세풀베다답게 동화라는 장르에서도 그의 환경 사랑은 여전하다. 자연을 더럽히고 세상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한 비판은 동물의 입을 통해 좀더 적극적으로 나온다. 폐기름(갈매기는 그걸 검은 파도라고 부른다)이 묻어 죽어가는 갈매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갈매기는 죽으면서 생명(알)을 잉태한다. 곁에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그 생명을 부탁한다.
고양이가 새 알을 품고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자연계의 질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양이는 새 알을 꿀꺽 먹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모든 우화/동화 소설이 그렇듯, 동물들은 휴머니즘의 논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다. 백과 사전을 읽는 고양이들을 보라, 인문주의다.
작가는 고양이가 갈매기를 도와주는 이야기를 통해, 타인 존재 사랑을 얘기한다. 고양이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란 갈매기는 고양이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갈매기는 갈매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갈매기는 비가 내리는 날, 성당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며 드디어 하늘을 난다. 그리고, 이별.
나와 다르기에, 너를 사랑한다. 이 작품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에 더 공감이 가는 건, 여전히 내가 부정적인 사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고양이 소르바스의 눈물은 내가 부정하지 못할 삶의 긍정이 있다.
각 장으로 나누어 과감하게 생략하며 이야기를 빠르게 생동감 넘치는 전개시키는 작법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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