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0년 3월 발행



공중에 뜨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소년. 소재만 보면 무척 황당한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면 황당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거의 없다. 대공황,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금주령, 갱들의 시대 등 미국 역사를 배경으로 꽤나 사실적이다.

<미스터 버티고>는 미국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음 두 가지 점 때문인 듯. 전체적으로 미국 역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는 점. 첫 부분부터 미국 사람들이 흔히 영웅으로 부르는 린드버그(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미국인)와 베이브 루스(미국 홈런왕)를 들면서 시작했다는 점.

이 작품이 미국적이냐 미국적이지 않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미국 역사도, 미국 영웅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없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빈민가에서 자란 소년 월트. 그 소년을 전적으로 믿는 예후디 사부. 월트가 공중에서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신뢰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에게 어떤 일을 성취하고 싶은 동기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사람들, 바로 "당신 자신이기를 멈출 줄 아는"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후디 사부는 월트에게 공중에 띄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예후디 사부는 월트를 전적으로 믿었다. 월트는 그 믿음에 힘과 용기를 얻어 열심히 훈련을 했을 뿐이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그의 노력도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월트 말고도 '이솝'이라는 소년이 나온다. 이 소년 역시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환경에 있었다. 그러나 이솝도 예후디 사부의 전적인 믿음에 용기를 얻어 일류 대학에 장학생으로 들어간다. 안타깝게도 죽기는 하지만.

폴 오스트가 대본을 쓴 영화 <스모크>를 보면 인종간의 화해를 참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실제 현실은 영화처럼 그렇지 못하다. 묘하게도 <미스터 버티고>에서도 그 인종간의 조화 내지 화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네 명이 어느 시골 마을의 집에서 자급자족하면서 같이 산다. 예후디 사부는 헝가리인이고, 월트는 백인 미국 소년이고, 이솝은 곱사등이 병신인 흑인 소년이고, 수우 아주머니는 전혀 여자다운 면이 없는 뚱뚱한 여자 인디언이다. 이 네 명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모습. 아마도 작가가 미국적 현실(심각한 인종 대립)에서 바라는 희망이 아닐까.

Posted by lovego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