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25.01.20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2. 2024.11.04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소설 좋아하는 이들의 필독서
  3. 2024.10.16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소설 같은 자서전, 좌파도 우파도 아닌 회색
  4. 2024.10.15 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평전] 인문주의, 부활을 꿈꾸다
  5. 2022.08.05 [인생의 힌트] 데일 카네기 - 40명의 인생 이야기
  6. 2022.06.10 스테판 츠바이트 [광기와 우연의 역사] 생동감이 넘치는, 역사 전기문
  7. 2022.03.07 제인구달 -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8. 2022.03.07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애너 퀸들런 - 독서 경험담
  9. 2022.03.07 [나의 인생]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단순, 명확, 웃음, 사랑, 신랄, 재미
  10. 2022.03.07 [인생은 뜨겁게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 버트런드 러셀과 사람들
  11. 2022.03.07 프랭클린 자서전 - 지독한 자기 관리자
  12. 2022.03.07 [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 실존주의와 신본주의의 차이
  13. 2022.03.07 [늦었다고 생각할 때 해야 할 42가지] 인생을 바꾼 질문
  14. 2022.03.07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 예술을 위한 고독
  15. 2022.02.17 마크 트웨인 버트런드 러셀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16. 2021.10.18 마이클 더다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셜록 홈즈의 창조자 도일의 초상
  17. 2021.10.15 [심농 -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 도스토옙스키와 발자크를 합친 작가
  18. 2021.09.28 앤드류 노먼 애거서 크리스티 완성된 초상 - 작가 기질
  19. 2021.09.27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포기할 줄 아는 지혜
  20. 2017.08.01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 극적인 장면의 생생함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은이), 곽복록 (옮긴이)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역시 슈테판 츠바이크다. 자서전이지만 전기문에서 보여준 글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로댕과의 만남 에피소드는 소설 같다.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고 예술가의 열정을 찬미하는 글은 신비로운 수정체처럼 매혹적인 광휘를 내뿜는다. 전자책의 오탈자는 좀 그러네. 중간중간 사진 보는 재미가 있다.

Posted by lovegood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職業としての小說家 (2015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펴냄
2016년 발행

책에는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는데, 자서전 혹은 회고록이다.

소설을 읽는 사람, 소설을 쓰는 사람은 필독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11, 12장은 빼더라도 나머지 1~10장은 강력하게 추천한다. 10장까지 내용이 워낙 좋기 때문에 따로 요약이나 밑줄은 필요가 없다. 다 좋다.

소설을 쓰려고 하거나 소설을 쓰고 있거나 소설 쓰기를 포기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책 읽어라.

왜 이제서야 읽었지 하는 안타까움과 아 이제라도 읽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하루키 문체의 비밀이 이 책에 나온다. 일부러 어휘력이 부족한 영어로 쓴 후에 그 영어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평범한 단어 조합으로 비범한 표현을 쓰는 스타일이 확립된 것이다.

나름 웃긴 대목도 있었다. "제정신인 사람은 장편소설 같은 건 일단 쓸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162쪽.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2024.11.4

종이책
전자책

Posted by lovegood
,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지음
이다미디어 펴냄
2014년 발행 개정판
전자책 있음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2005년 발행 초판

자서전인데, 소설처럼 읽힌다. 문장 사이에서 뿜어내는 광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극한까지 가보는 인생, 어디서 읽은 것 같아 생각해 보니,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의 주인공을 닮았다. 정규 학업 과정이 없이 독학으로 최고의 작가가 되는 과정을 보면, 잭 런던이 떠오른다.

에릭 호퍼는 독학하는 과정에서 글쓰기를 익혔다. "돈을 별로 쓰지 않고 살면서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수학이나 화학, 물리학, 지라학 등의 대학 교재로 독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돕기 위해 노트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일에 열중했고, 제대로 된 형용사를 찾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27p

호퍼의 글쓰기는 자발적인 본능이다. "내게 글쓰기는 육체적으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나는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176p "나는 써야 하기 때문에 쓴다. 나는 나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166p

종종 아포리즘 가득한 문장은 니체 같은 통찰을 보여준다. "자기 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를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61~62p

미국 자본주의 성찰은 대체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밑바닥 노동자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면서도 책을 많이 읽은 지성인인 그는 자본주의를 이념의 공격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삶의 한 형태로 관조한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돈과 이윤의 추구는 사소하고 천박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동기에 의해서만 활기를 띠게 된다면 사람들이 움직이고 분투하는 곳에서 영위되는 일상 생활은 빈약하고 궁색해지기 십상이다." 159p

좌우 양쪽 모두한테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이 별종은 정치적으로 회색을 추구하는 예술가들한테 사랑받으리라.

Posted by lovegood
,

에라스무스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원더박스 펴냄
2020년 발행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문은 유명하다. 인물의 감정을 잘 표현해서 생동감이 넘친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을 주로 썼다. 열정적인 인물을 골라 썼다.

츠바이크는 왜 에라스무스를 택했을까? 나치 독일의 폭력에 한없이 시달려 마침내 아내와 동반 자살하기까지, 그의 고뇌가 에라스무스의 삶과 겹친다.

전쟁은 광기다. 전쟁을 부추기는 정치꾼들은 이성보다 감정을 강조한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만을 요구한다. 우리편만 옮다. 공평무사한 이성주의자는 회색분자로 몰린다.

겉보기에는 에라스무스 평전이다. 안을 들여다 보면 츠바이크의 소망이다. 인문주의의 부활을 애타게 바랬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글쓴이의 꿈이다. 이성의 평화보다 감정의 전쟁에 열광하는 세상에서, 그는 에라스무스의 삶을 자기가 가야할 길로 여겼다.

인문주의의 죽음을 떠들어대는 오늘날, 서양 인문주의의 시작이었던 에라스무스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의 삶을 읽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으리라. 처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

나는 알고 있다. 더는 사람들이 책을 즐겨 읽지 않는다는 걸. 더는 좋은 책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영화와 텔레비전 오락물로 시간을 보내기조차 힘들어 한다는 걸. 인터넷 클릭하기 바쁘다는 걸. 당장에 이 고독과 이 절망을 잊기 위한 순간적 자극물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있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좋은 글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위로받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리라는 것을.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도 모든 책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조용한 방에서 좋은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 어느 누구의 지배자도 하인도 되지 않는 것, 이것이 에라스무스의 인생 목표였다.
Posted by lovegood
,

유명한 사람들의 일생을 간략히 쓴 책이다. 편역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데일 카네기의 <5분 인물전>, <전기 집성>, <유명인의 비화> 등 세 권의 저서에서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적합한 것을 골라 엮은 것이다."(7쪽) 40명의 인생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낯선 이도 보인다. 대부분 백인 남자다.

각 전기문은 세네 장 분량이다. 출퇴근 혹은 등하교 시간에 하루 2명씩 읽으면 한 달 안에 통독할 수 있다. 양장본이라서 휴대가 편하진 않다. 표지가 두껍고 튼튼하다. 갈피끈이 달려 있다.

40명의 인생 이야기를 읽기 전에 이 40명의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써서 성공한 '데일 카네기'의 인생을 보자.

데일 카네기는 앤드루 카네기와 성이 같아서 친척이거나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생각할 것이다. 전혀 아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반대다. 그는 실패의 왕이었다.

이 일 저 일 이 직업 저 직업 다 해 보지만 모조리 성공하지 못했다. 소설가가 되려고 했으나 이 역시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인생이 이쯤 되면 자살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죽기 전에 꼭 알고 싶은 것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의문을 풀고자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실패할지 끝을 알 수 없었던 그는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온갖 책과 각종 문헌을 섭렵했다. 연구 결과가 쌓이자 이를 책으로 펴내고 강연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자기계발서'의 아버지가 되었다.

실패하면서 그동안 조금씩 키웠던 글솜씨, 강연 능력, 현실 경험이 책에서 절묘하게 결합해서 기묘한 결정체를 이룬다. 다분히 현실적인 사실에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지적해낸다.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가 여전히 고리타분한 교훈론(젊어서 고생은 사서하는 거야)과 몽상적인 예언론(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데일 카네기의 책이 지금까지도 자기계발서의 혁명이다.

데일의 책은 아주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잘 읽힌다. 게다가 빠르게 읽힌다. 쓸데없는 말이 없고 학자연하는 말도 없다. 쏙쏙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표현을 쓴다. 읽자마자 두손 들고 항복해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술력과 설득력이 최강이다.

앤드루 카네기 : 이름과 명예를 이용해서 사람을 설득했다. 사람 부리는 재주가 있었다. 유능한 사람을 유능하게 쓸 줄 알았다. 뭐가 돈이 될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이 떠오른다.

존 록펠러 : 97세까지 살았고 돈을 많이 번 만큼이나 많이 사회에 기부했다. 장수 비결은 정오부터 30분간 낮잠과 식전 기도였다. 술, 담배, 극장, 놀음, 춤 모두 안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서 흥분하거나 서두르는 일이 없었단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 "그에게는 단 두 가지의 행동 원칙밖에 없다. 하나는 어떤 규칙도 만들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좌우되지 말라는 것이다." 29쪽 이런 그는 어린이같이 살았다. 하기 싶어도 참는 어른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다." 30쪽 기발하네! 역시 천재야.

설마 40명 모두 얘기해 줄 거라 예상한 것은 아니죠? 뭡니까, 그 표정은. 행복하려면 남한테 기대를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한 사람의 인생살이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짤막한 소설 읽는 기분마저 든다.

5분만에 읽을 수 있도록 짧게 쓴 위인전이 인기가 높으리라는 힌트를, 지은이는 어디서 얻었을까? 에드워드 보크의 인생에 나온다. 담배 상자 안 경품용 사진이 있었는데, 뒷면이 백지였다. 보크는 회사에 찾아가서 그 백지에 유명인 100명의 전기를 싣자고 제안해서 성공한다. 당시 돈으로, 한 사람당 십 달러, 총 천 달러를 벌었다.

이 책에서 당신만의 성공 힌트를 얻을 수 있으리라. 행운이 있길 바란다.

Posted by lovegood
,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휴머니스트

전기와 역사를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게 쓸 수 있다니! 놀랐다. 풍부한 상상력과 세밀한 문체.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이 지금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놀랍다.

발보아, 무하마드, 헨델, 루제, 나폴레옹, 괴테, 수터, 도스토예프스키, 사이러스 필드, 톨스토이, 스콧, 레닌 등이 작가의 문장을 통해 살아난다.

특히, 헨델이 뇌졸증을 극복하고 <메시아>를 작곡하는 모습과 톨스토이가 가출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Posted by lovegood
,

제인구달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사이언스북스

침팬지 연구라니, 거기서 뭘 배울 수 있을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침팬지를 꾸준히 관찰한 연구자는, 인간이 문명화되기 전 순수했던 마음씨를 보았다. 돈 때문에 자연과 자신을 파괴하기 이전의 인간 모습이랄까. 그 모습에는 사랑과 이해가 충만하다. 참여 관찰법은 상당한 인내심과 꾸준한 이해심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연구 방법이다. 제인 구달은 연구 이전에 사랑과 이해를 중시했다. 침팬지 연구는 그걸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제인은 착했다. 애벌레 키우기에서 분명히 보인다. "한번은 내가 벌레에게 먹이 주는 것을 잊어 버린 적이 있다. 벌레가 바싹 말라 죽은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죄의식을 느꼈고 내 자신이 미워졌다."

꿈을 이루기 위한 조건들은 뭘까. 첫째는 열정이다.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데, 꿈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둘째는 운이다. 노력하는 자에게 운도 따른다고 하지만, 꼭 그런 건만은 아니다. 셋째는 노력이다.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는 기회만 기다리지 않았다. 그 기회를 얻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 아프리카로 떠날 여비를 꼬박꼬박 모아 두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틈이 나면 동물학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 

"어렸을 때 이미 나는 내가 어쨌거나 아프리카로 가서 야생의 동물들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책으로 쓰고 싶었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꿈을 이룰지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단지 좋은 기회가 꼭 오리라고 믿고 있었으며, 내 꿈을 당장 이룰 수 없다고 좌절하지는 않았다."

청소년을 위해 쓴 자서전이다. 자신이 침팬지 연구자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자세히 썼다. 글이 워낙 간결하고 흑백 사진도 곁들여 있어,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간다. 자신의 사적인 얘기는 짧게 간단히 썼다. 학업, 취직, 결혼, 출산, 이혼, 재혼 등.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질질 끌기 쉬운 것들이다.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삶이 소설 같다. 운명처럼, 특이하게도 어렸을 때 곰 인형이 아닌 침팬지 인형을 좋아했다. 때마침 나타나 도와주는 남자들. 극적이지 않은가. 학위보다 연구자의 자세를 더 높이 평가했던 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날 수 있었기에,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었다. 그의 연구 업적을 필름과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아준, 첫 남편 휴고 반 라윅을 만났다. 재혼은 탄자니아 국립공원 책임자와 했다.

재미있게도, 첫 남편 휴고가 찍은 제인 구달의 모습은 대체로 옆모습이다. 정면 얼굴 사진은 거의 없다. 자신의 아들 사진은 정면이다. 이 남자, 이 여자의 옆모습에 반한 모양이다. 침팬지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는 제인 구달의 옆모습은 매력적이다. 휴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구달의 동물 사랑은 사람 사랑과 환경 사랑으로 뻗어 나아갔다. 연구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Posted by lovegood
,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애너 퀸들런 지음, 임옥희 옮김/에코리브르

이 책 제목에 대한 답을 먼저 한다.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 이 책은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애너 퀸들런의 솔직한 독서 경험담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독서 일기 형식은 아니고, 독서 자서전 이라고나 할까.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책과 독서 경험을 주절거려 놓았다.

자신의 독서 경험담과 함께, 책과 독서의 역사는 물론이고 검열에 대한 문제도 짚어 낸다. 주관적인 견해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자연스럽게 이어 풀어내는 솜씨를 보니, 이 작가가 대중적인 인기를 알 수 있었다. 책의 역사는 소크라테스 시절부터 최근 인터넷 온라인 출판물 얘기까지 다룬다.

누군가의 독서 경험담을 읽는 일은 즐겁다. 그 사람의 지적 수준과 취향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펄 벅의 작품을 "전혀 노벨상 감으로 보이지 않는" 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슬픔이여 안녕]은 다소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직설적으로 밝혔다. [포사이트 대하소설]은 격찬을 반복하며 이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에 대해 반박한다.

기억에 남는 건, 자신이 작가가 되려고 한다면 너무 잘 쓴 책부터 읽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이만큼은 쓸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읽고 도저히 이 사람보다 잘 쓸 수 없다고 판단해서 창작을 포기했던 것처럼 너무 앞서가지 말아야 한다. 차츰 실력이 붙으면 그 수준에 맞게 올리는 것이 좋다.

책 끝에는 추천 도서 목록을 다음과 같은 주제로 10권씩 나열했다. 한여름 꼬박 걸려 읽을 수 있는 두껍고 훌륭한 책,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난픽션, 십대들이 보다 인간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책, 불 속에서 구하고 싶은 책, 원기왕성한 소녀들을 위한 책, 여름 휴가철에 내가 가장 찾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 등.

내가 누군가의 독서일기나 독서에세이를 읽는 목적은 읽고 싶은 도서 목록을 얻고자 함이다. 기대와 달리, 이 책에서는 건진 게 없다. 내가 아는 것들을 다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한 번 읽어 보는 정도였다.

Posted by lovegood
,

나의 인생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이기숙 옮김/문학동네

글을 단지 읽기만 하려는 사람에게, 잘 쓴 글은 그저 고맙고 재미있을 뿐이다. 허나, 글을 잘 쓰려는 사람에게 잘 쓴 글은 때때로 절망감을 안겨 준다. 

이 책은 글쓰기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어느 쪽을 펴도 상관없다. 한두 문단을 읽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할 정도로 잘 읽힌다. 평범한 단어의 간결한 조합으로 평이한 문장만을 나열하면서 이토록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니, 경의롭다. 이는 내가 목표로 했던 글쓰기였다. 정답을 봐 버렸을 때, 허탈감이란.

낯선 독일 문학 작품이 나열되고 있음에도 이토록 잘 읽히는 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글솜씨 때문이다. 화려한 문체로 뭔가 대단한 걸 말하려고 했다면 안심했으리라. 그는 평범함 문체로 흔한 걸 절묘하게 잡아낸다.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그가 평론가라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그는 '문학의 제왕'으로 불린다. 그의 서평은 작가의 목숨을 좌우할 정도라고.

'나의 인생'이라는 단순한 제목 아래 자신의 문학과 인생과 사랑을 무려 6년에 걸쳐 쓴 자서전이다. 간결, 단순, 명확, 웃음, 사랑, 통렬, 신념, 재미가 문장에서 뛰논다.

독일인한테 핍박을 받은 유태인임에도, 독일어를 잘하고 독일 문학을 사랑하고 독일 음악을 즐긴다. 부조리한 시대를 살았지만, 웃음과 사랑을 간직하며 그 어려운 시절을 문학으로 도피하여 살아남았다.

문학이, 그를 구원했다.

Posted by lovegood
,

인생은 뜨겁게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
버트런드 러셀 | 사회평론 | 2014년

자서전은 내가 읽지 않으려는 장르다. 공포영화를 안 보려는 사람이 있듯, 나는 자서전을 피하는 사람이다. 자서전 치고 재미있게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호러 무비는 피와 시체가 나오듯 자서전에는 끔찍하도록 지겨운 자기 회상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서전을 쓴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약력을 보면 1872~1970으로 나온다. 러셀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그냥 한 세기가 아니라 격동의 1, 2차 세계 대전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여성참정권 운동, 반전운동, 평화운동을 위해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시위를 하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수학, 역사, 철학, 문학, 윤리학에 걸쳐 70여 권을 써냈다.  

총 3부 569쪽 분량의 이 책은 러셀의 삶에 비하면 축약본이다. 게다가 본인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회고가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정작 자기 얘기만 간추린다면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이 책은 정확히 말해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이 아니라 '러셀,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이다.

러셀 본인이 열심히 활동한 것도 있겠으나 태어나서 물려받은 것도 만만치 않다. 그의 집안은 영국 귀족 가문인데 그냥 귀족이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수상을 두 번이나 역임한 분이 할아버지다. 이게 뭐 대단한 거냐 싶냐고?

그가 귀족이 아니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평화주의 시위 중에 폭도한테 레셀이 못 박힌 널판지로 맞고 있자, 그를 아는 숙녀가 경찰들한테 그를 보호하라고 했다. "저분은 철학자예요." 경찰은 어깨를 으쓱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 "유명한 학자라니까." 여전히 가만 있는다. "백작의 동생이에요." 그러자 경찰이 달려와서 도와주었다.

러셀의 재치있는 문체는 자서전에서 더욱 빛난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힌다. 어린 시절 요리사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만화의 한 장면 같은 문장이 나온다. "소금덩어리를 상자에서 훔쳐내 오기도 했다. 그녀가 고기 써는 칼을 들고 추격해 오곤 했지만 나는 늘 힘들이지 않고 빠져나갔다."(37쪽)

이 책 서문에 자신의 열정을 세 가지로 압축한다. 사랑, 지식, 연민.

사랑

자신의 연애사와 결혼생활에 대해 솔직하고 상세하게 써 있어서 놀랐다. "한두 번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녀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 싶은 마음에 1년에 두 번 정도 성관계를 시도했지만, 그녀에게서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쓸데없는 짓이 되고 했다." 결혼을 세 번이나 했고 그 사이에 불륜도 있다.

지식

주로 수학에 대한 열정이다. 러셀의 어린 학창 시절은 우울하고 혼자였다. 자살을 생각했으나 실행하지 않은 것은 수학 때문이었다. 수학을 더 알고 싶어서였다. 수학 사랑에 대한 정점은 화이트헤드와 함께 쓴 '수학 원리'다. 러셀은 수학이야말로 지식의 가장 확실한 기초이자 근거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수학마저도 하나의 의견이고 불완전한 지식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지성인이란 이성을 견지하면서도 이성의 한계를 아는 자다.

논리 모순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이 종이 뒷면에 적힌 진술은 거짓이다." 종이 뒷면에는 "이 종이 뒷면에 적힌 진술은 참이다." 논리실증주의의 실패는 예고되어 있었다.

연민

평화주의자로서 끊없이 전쟁을 반대했다. 그가 이상주의를 추구했으나 사람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성인은 으레 진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나, 인기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는 지성인은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234쪽) 그래도 그는 평생 진리를 추구하고 평화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고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반전운동이 실패했음도 인정한다. "전쟁이 끝나자 내가 해온 모든 일이 나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했고, 단 1분도 전쟁을 단축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94세 때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반대하며 '베트남 연대 운동'을 전개한다.

아무리 세상이 비관적이어도 그는 지성의 불씨를 계속 지피며 인류의 평화로운 발전을 기원했다.

읽다가 웃었던 문장. 형이상학(철학)을 혐오하는 할머니는 그에게 이런 식으로 놀렸다고 한다. "What is mind? no matter; what is matter? never mind."

러셀이 자서전에 서술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힌다. 별별 사람이 다 나온다. 스포츠를 전혀 안 하는 사람은 자전거도 안 탄다. 스포츠니까. 성불능으로 이혼하는 사람. 문학 야망이 너무 커서 비극을 맞는 사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면 그의 제자였던 비트겐슈타인이다. 여기에 유명 문학가와의 교류도 있었다. D. H. 로랜스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써 놓았다.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표출하고도 비교적 무사히 살았고 인생 후반기에는 온갖 사회적 영예(노벨문학상 수상)를 받으면서 계속 활동하고 책을 썼다. 마지막에는 이런 자서전까지 남기고 98세로 편안하게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버트런드 러셀처럼 열정적인 삶을 산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자서전에 남길 수 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 볼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받았습니다.

◈ 반디 & View 어워드 수상 2014년 4월 2주 ◈

Posted by lovegood
,

프랭클린 자서전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이계영 옮김/김영사
 
프랭클린이 밝힌 13가지 덕의 계율
01. 節制: 배부르도록 먹지 말라.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
02. 沈默: 자기나 남에게 유익하지 않는 말은 하지 말라.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
03. 規律: 모든 물건은 제자리를 정해서 그곳에 두어라. 모든 일은 미리 때를 정해서 하여라.
04. 決斷: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라.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
05. 儉約: 자기나 남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에 돈을 쓰지 말라. 즉 낭비하지 말라.
06. 勤勉: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 항상 무엇에나 유익한 일에 종사하고 쓸데없는 일은 모두 끊어 버려라.
07. 眞實: 사람을 속여서 해치지 말라. 공정하고 남에게 해가 없게 생각하라. 말할 때도 그렇게 하라.
08. 正義: 남을 모욕하거나 내줄 것을 주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주지 말라.
09. 中庸: 극단을 피하라. 남의 비난과 불법을 참으라.
10. 淸潔: 신체.의복.주택의 불결한 흔적을 남기지 말라.
11. 沈着 : 사소한 일이나 흔히 있는 일, 어쩔 수 없는 일에도 침착함을 잃지 말라.
12. 純潔 : 성교는 건강이나 자손을 위해서만 행하라. 그것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며, 부부의 평화가 깨지고 소문이 나빠지도록 성교를 해서는 안 된다.
13. 謙讓 :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라.

이 책을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정말 솔직했다. 젊은 시절 성적 충동에 못 이겨 절친한 친구의 애인을 범한 것까지 써 놓았다. 그는 이 사건 이후, 결혼을 생각한다. 프랭클린은 지독한 자기 관리자였다. 앞서 말한 덕의 계율을 표로 만들어 날마다 지켰는지 여부를 표시했다.

벤자민은 84세까지 살았다. 그 당시로서는 장수한 사람이다. 비결은 적게 먹는 거였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그의 책 사랑은 미국 전역에 공공 도서관을 만드는 기초를 마련한다.

벤자민 프랭클린, 참 열심히 살았다. 그에 비해, 난 참 게으르게 산다. 

Posted by lovegood
,

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마음산책

피에르 신부의 자서전이다. 

아베 피에르는 부유한 상류층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으나 19세 때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들어가 신부가 되었고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일했으며 '엠마우스'라는 공동체를 설립하여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살아 있는 성자'로까지 불렸던 인물이다. 글쓴이가 유명한 사람인데 종교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지라, 나는 이 책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단순한 기쁨'은 스님 법정, 소설가 최인호, 여행가 한비야가 추천하는 책이다. 그래서 읽은 건 아니다. 세 사람 모두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 외에는 내 흥미를 끄는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다. 제목에 끌려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무심코 집어든 책인데, 소득이 있었다.

실존주의와 신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그동안 정리가 안 된 채 오랜 세월 내 머릿속에서 괴롭혔는데 이 책을 읽고서 명확해졌다.

신을 믿는 신본주의자 피에르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행했던 실존주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며 '부조리와 신비'라는 글을 자서전에 남겨 놓았다. 

요약하면 부조리와 악을 인식하는 것에 치중하는 실존주의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절망 외에는 선택을 못하고 대개들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다. 세상에는 부조리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면 더는 세상 사는 의미를 찾지 못한다.

신을 부정하는 부조리는 절망으로 흐르지만 신을 믿는 신비는 희망을 낳는다.

나는 불가지론자다. 흔히들 불가지론자를 무신론자로 싸잡아 말하는데, 틀린 건 아니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불가지론자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정직하게 시인하는 사람이다. 

신은 알 수 없는 존재다. 피에르 신부는 이 명백한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우리가 세상의 온갖 신학 서적들을 뒤진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가질 수 있겠으나 하느님을 알지는 못할 겁니다."(92쪽)

자, 그럼 진정으로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 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그것이 그분의 본질을 이룬다." (92~93쪽)

파스칼이 '팡세'의 사색에서 이미 말했듯, 믿음은 이성과 논리로는 파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신비다. "믿음이란 논리적 추론의 결과도 수학적 계산의 귀결도 아닌 것이다." (76쪽)

글쓴이는 신앙생활의 토대인 세 가지 확신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확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확신

"인간의 자유는 그것이 사랑을 위해 쓰여질 때만이 위대한다."(128쪽) "사랑은 타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존중을 전제로 한다. 사랑하도록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105쪽) "자유가 없다면 사랑도 없을 것이며, 인생은 흥미도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108쪽)

사랑은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를 피에르 신부는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227쪽)

신자/비신자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비인간적이다. 어느 나라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꼭 이런 식으로 말하는 예수쟁이 년놈들이 있다. "예수님을 안 믿어서 천벌을 받은 거야." "동성애를 벌하기 위해 신이 태풍을 보내셨다." 이런 인간들은 그냥 저 좋을 대로 믿고 저 편한 대로 사는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이런 타인은 확실히 지옥이다.

신을 믿건 안 믿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93쪽),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들"(93쪽).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용기와 정직의 문제다.

우리는 희망을 종종 열망이나 욕구와 혼동한다. 뭘 갖고 싶은 것, 성공하고 싶은 것, 유명해지는 것, 삶이 편하게 돈을 많이 버는 것, 권력이나 지위를 획득하는 것 등은 욕구일 뿐이다. 채우면 그뿐이다. 되면 끝이다. 의미는 없다. 물질의 편리와 쾌락의 만족은 밑이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충만함이란 결코 있을 수 없으니, 계속 불안한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그 희망이 사랑이고 신이고 믿음이고 삶이었다. "희망이란 우리 안에서 빈자리로 호소하는 것 모두를 하느님께서 채워줄 것임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랑을 배풀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베풀려고 애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58쪽

그렇다면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54쪽) 희망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저 믿는 것이다. 설령 당신이 무신론자이고 비신자라고 하더라도 뭔가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희망은 있다. 그리하여 뜻있는 삶을 살라.

Posted by lovegood
,

늦었다고 생각할 때 해야 할 42가지
밈 아이클러 리바스, 크리스 가드너 지음
이다희 옮김
흐름출판 펴냄


크리스 가드너는 빈손으로 시작해서 떼돈을 번 미국인이다. 가진 돈이 일억팔천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천칠백억 원이다. 

그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었다. 가난한 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의붓아버지는 술에 취해 걸핏하면 때렸다. 고졸 흑인으로 접시닦이, 간호사, 철강 노동자, 의무병, 야간 경비, 병원 연구실 총 책임자, 의료기기 영업사원을 거쳐 마침내 천직인 '주식중개인'이 된다.

세 살짜리 아들과 노숙을 하면서 증권회사 인턴 생활을 했다. 이 기막힌 인생 이야기는 자서전 '행복을 찾아서'와 같은 제목의 영화로 나왔다. 어느날 길을 가다가 활짝 웃으며 값비싼 스포츠 카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자 호기심에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이 두 질문이 스물여덟 홀아비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그냥 되는 대로 살 것인가, 내 꿈을 이루면서 살 것인가. 이 갈림길에서 사람들은 고민하고 좌절하고 방황한다. 꿈을 갖고 목표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불가능해 보인다.

크리스는 과연 어떻게 한 것일까? 비결은 계획 세우기다. 그 계획은 5C를 실천해야 한다. Clear, Concise, Compelling, Committed, Consistent. 하나라도 빠지면 꿈은 거품처럼 잠깐 보였다 사라진다.

당신의 계획은 명확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말하라. 간결해야 나도 남도 이해할 수 있다. 

절실한가? 이거 안 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할 정도 믿고 밀어붙어라. 

충실한가? 그냥 성실하지 말고 평균 이상으로 광기에 가깝게 성실히 실행하라. 

끝으로, 날마다 꾸준히 일관적으로 하라. 

명확성, 간결성, 절실성, 충실성, 일관성. 좋은 글의 5요소다. 글 잘 쓰는 방법과 꿈을 실현하는 방법이 똑같다.

왜 그토록 꿈을 이루기 어려운가. 상황이 변하고 어려움이 닥치면 어느새 그만둔다. 쉽고 편하고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한다. 먹고살아야 한다고 핑계를 댄다. 꿈은 또 멀어진다.

어떤 꿈도 계획 세워 실행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적절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돈이 모일 때까지 참지 마라. 지금 여기서 시작하라. 글쓴이는 대양과 같은 끈기, 두려움을 인정하고 계속 싸우는 용기, 자신감을 강조한다.

"할 수 없다는 말을 용납해서는 안 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위해 3A를 다져라. Authority, Aunthenticity, Autonomy. 권위, 진정성, 자치. 자신을 알고 자기답게 행동하고 스스로 결정하라. 자발적 행동으로 노력하면 사람들이 당신을 주목할 것이다.

마케팅 비법은? 구매자의 입장이 되라. 인맥 확장법은? 이름을 기억하라.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상대방의 어머니, 아이, 애완견의 이름까지 외운다!"(256쪽) 유명인에게 말을 거는 법은? 상대가 관심을 가질 무언가를 찾아내 그걸 말하라. 돈 모으는 방법은? "버는 것보다 적게 쓰고 빚을 지지 마라."(316쪽) 성공의 비법은? 실패한 사람들이 실천하지 않는 작은 일을 실천하라. 사람 뽑을 때는 재능과 학벌보다 자제력과 품성을 중시한다. 투자할 때는 탐욕과 무절제를 경계한다.

대단히 성공한 사람의 비결은 공기처럼 평범하고 단순했다. 기본에 충실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죽어라 노력한다. 남들처럼 해서는 어림도 없다. 독종이 이긴다. 크리스의 영업 방식은 지독했다. 인턴 시절, 커피를 줄이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하루 200통 전화 걸기. 사장님이 된 후, 기금 관리 담당자 일일이 직접 찾아가 투자계획 설명하기.

이 사람의 인생살이 원동력은 자기 자식이 자신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에 있다. 그에게 힘을 준 것은 신의 은총이 아니라 아들의 승인이었다. "아빠, 아빠는 좋은 아빠야." 이 말을 들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다. 크리스 가드너의 행복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받았습니다.

Posted by lovegood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동문선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전기다.

굴드가 워낙 독특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생애를 풀어내는 방법도 독특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미셸 슈나이더는 기존 전기문과 다른 형식과 다른 내용으로 굴드의 전기를 썼다.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가장 유명한 곡,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형식을 따왔다. 아리아, 30번의 변주, 다시 아리아. 보통 전기문이 그 사람의 생애를 처음부터 시간 순서대로 다루는 데 비해, 이 전기문은 글렌 굴드가 32세 정상의 자리에서 섰을 때 갑자기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완전히 그만 둔 시점인 1964년부터 시작한다. 그의 갑작스러운, 세상과의 단절을 예술적 행위로 파악하면서 그의 예술에 대해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글쓴이는 세상과의 의도적인 고립과 예술적인 고독의 문제를 단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사색을 한다. 굴드의 연주를 들었던 분이라면 그의 연주에 내재된 피아니스트의 영감을 글로 가장 잘 표현한 글이라고 격찬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리라. 굴드의 사색을 따라가는 기분이다.

슈나이더의 유추 중에 흥미로운 것 두 가지. 앨범 사진에 30개 장면이 보였던 것이 변주곡 30곡과 의도적으로 맞추기 위함이었을까? 악보도 없이 연주하면서 안경을 쓴 이유는 주변 사물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존재의 심연 속에서 굴드의 고독이 투명하게 빛난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는 그 황홀한 홀로됨을 묘사한다.

170쪽 나츠메 소세키의 <<삼각의 세계>>는 도대체 어떤 작품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검색해 보면 남녀 삼각관계만 나온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1회독 2011.02.06
2회독 2015.07.18

Posted by lovegood
,

자서전 읽기 좋아하세요? 저는 아닙니다. 자서전 안 읽어요. 안 읽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도 안 읽어요. 자서전 대부분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지 죽을 지경이거든요.

그럼에도 다음 세 사람의 자서전은 너무 재미있고 무척 흥미로워서 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대대로 재미있고 예상대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언제든 다시 또 읽을 마음이 여전히 있고요. 비상용 음식처럼 사서 곁에 두세요.

제가 여기 추천하는 세 사람이 자서전은 세 가지 공통점이자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 사람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둘째, 자기 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더 많이 합니다.
셋째, 읽고 있으면 웃음이 터집니다.

마크 트웨인 자서전 The Autobiography of Mark Twain (1959년)

마크 트웨인 자서전
마크 트웨인.찰스 네이더 지음, 안기순 옮김/고즈윈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톰 소여의 모험'은 읽어 봤어도 정작 그가 쓴 자서전이 있다는 사실과 그 자서전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는 점과 이게 미치도록 재미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회고록에, 아니 수필에, 아니 콩트에 가까운 글이다. 웃는라고 정신이 없다.

자기 얘기보다는 자기가 만난 사람들 얘기가 더 많고, 잔인하다고 할 정도로 솔직하게 써 놓아서, 타인의 위선을 익살스럽게 고발한다.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

인생은 뜨겁게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사회평론

1872~1970. 98세. 러셀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지금 우리처럼 지루한 불황의 시대가 아니라 1, 2차 세계 대전 격동의 세월을 몸소 경험했던 사람이다.

수학자, 철학자, 노벨 문학 수상 작가, 교육자, 연설가, 평화주의 반전운동가. 그냥 유명했던 사람이 아니라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그의 뜨거운 삶이 솔직담백하게 적혀 있는 책이다. 그는 물론이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흥미롭다. 비트겐슈타인, D.H. 로랜스.

재미있는 일화가 많은데, 그중에 하나는 영국이 여전히 신분사회 전통이 짙게 배어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시위 도중에 러셀이 폭도한테 폭행을 당하고 있자 경찰한테 저 분은 철학자다, 저명한 학자다 하고 얘기해도 꿈쩍도 안 하더니 백작 동생이라니까 움직였단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An Autobiography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황금가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추리소설로 유명한, 애거서 크리스티다.

평생 써낸 책 80여 권의 분량 자체도 대단하지만 이 책들의 판매와 인기가 여전하다는 것이 더욱 미스터리다. 책에 무슨 마법이라고 넣었는가.

자서전에 잘 나오는데 그렇게 많은 책을 써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정작 자신은 직업란에 주부라고 적을 만큼 글 쓰는 일을 부업으로만 여겼다. 쏠쏠한 부업이었지. 나중에 적업작가로서의 자세를 갖추긴 하지만.

"작가란 모름지기 지금 써야 하는 것만 빼고는 무엇이든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라"며 시작부터 독자를 웃긴다.

가끔씩 자잘하고 일상적인 잡 얘기(이사, 새 차 구입, 사람 구함)가 있는데, 잘 건너뛰어 읽으면 되겠다.

내가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을 읽고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작가가 되려고도 문학을 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재미로 썼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젊었을 때 그동안 꿈꾸었던 꿈(희망했던 인생 진로)을 과감하게 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원하는 일이라도 이룰 수 없다면 빨리 포기하는 지혜라니. 뭐 작가로서 대성공을 거두니까 이런 말을 자서전에 남길 수도 있는 것이겠다만.

Posted by lovegood
,

마이클 더다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셜록 홈즈의 창조자 도일의 초상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6점
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을유문화사

제목에도 보이지만 초점은 코난 도일이지 셜록 홈즈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책을 셜록 홈즈 때문에 집어 들 것이다. 코난 도일 따위는 무시하고 말이다. 캐릭터를 창조한 작가가 이토록 무시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로 기억되지만 정작 본인은 이 따위 탐정소설은 문학 취급도 안 했다. "내 기준으로 보면 셜록 홈즈는 절대로 고귀한 문학이 될 수 없다. 다른 탐정 소설들도 마찬가지다."(108쪽)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의사가 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재능이었다. 휴일이면 학우들이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자 둘러앉았고 액션과 흥미를 최고조로 만들어낸 다음에 이야기를 멈추었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사과나 과자를 주면 그제서야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이미 알고 있었다. "관중이 나의 영향력 아래 사로잡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03쪽)

도일은 이야기의 최우선 조건이 재미였다. 내가 재미있지 않으면 아예 쓰려고 하지 않았다. 좋은 글의 세 가지 요건에서도 재미는 빠지지 않는다. "첫 번째 필수 조건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재밌을 것, 세 번째는 영리할 것." (125쪽)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은 셜록 홈즈 팬인 마이클 더다가 자신의 독서 경험담과 코난 도일에 관련 자료들을 묶어 펴낸 책이다. 대단할 건 없지만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의 애독자라면 안 읽고는 못 배길 것이다. 초점이 셜록 홈즈가 아닌 코난 도일이라서 그의 생소한 소설들이 나열되고 있지만 그 부분은 건너뛰고 읽으면 되니까 계속 코난 도일 따위는 무시하고 셜록 홈즈로 읽어낼 수 있다.

코난 도일은 이야기꾼 유령으로 사라지며 셜록 홈즈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Posted by lovegood
,

[심농 -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성귀수, 이상해,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11년 3월 발행

전자책 없음

 

 

750원짜리 책이다. 정말? 정말이다. 어째서? 새로 나올 매그레 시리즈의 홍보용 책자다. 매그레 시리즈를 읽으려는, 읽은, 읽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 자료들이 가득하다.


광고/홍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강조점이 엉뚱한 데 꽂혀 있다. 조르주 심농이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는 데는 그런 것들이 흥미롭겠으나 작가를 '이해'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 유명인사가 되면 별별 말이 증폭되어 떠돌아다니기 마련이라서.

1만 명의 여자와 잤다는 얘기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표현한 문장을 제거한 채 앞부분만 편집해서 돌아다니는 말이었다. 본래는? 섹스가 "정상적 행동의 진부한 측면"일 뿐이며 "성적인 집착이 아니라 소통의 욕구"이고 결정적으로 섹스는 "인간적 접촉을 구해도 공허함을 쥐게 된다"는 씁쓸함이다. 111~112p.

 

 

조르주 심농이 쓴 매그레 시리즈는 과연 어떤 소설인가? 임호경의 말이 가장 정확한 설명이다. "분명 추리소설이기는 한데 도스토옙스키 분위기가 풍기는 작품이었습니다. 발자크적인 면도 눈에 띄었습니다." 203p

도스토옙스키 분위기란 갈 데까지 간 사람의 심리적 측면을 깊게 파고들어 끝장을 내버리는 파괴적인 문장들을 뜻하고, 발자크적인 분위기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드라마를 역동적이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해내는 것을 뜻한다.

열린책들에서 매그레 시리즈의 국내 출간을 망설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일즈 포인트가 애매했다. 오락소설도 아니고 문학소설도 아니니. 셜록 홈즈 같은 것을 기대한 독자한테는 매그레에 게임 같은 것이 없어 실망한다. 문장이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수수께끼 풀이 재미는 거의 없으니 다시는 안 찾는다.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소설이 아니라 무늬만 추리소설이고 안을 들여다 보니 인생극장이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추리소설은 대중소설이다. 문장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인간 심리를 깊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사건 해설을 위해 잠깐 짚어 줄 뿐이다. 핵심은 수수께끼다. 범죄자의 사연이 아니다. 트릭의 재미를 추구한다. 사람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는 일은 없다. 사연? 알고 싶지 않아!

 



해외에서는 어마어마한 작가로 그의 매그레 전집을 갖고 있는 것이 일상인데 국내에서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별종 취급한다. 매그레 시리즈는 75권 전부를 기획했으나 21권에서 출간을 멈추고 말았다. 더는 안 나온다.

쓰고 싶은 소설과 팔아야 하는 소설 사이에 갈등한 심농은, 자기 나름대로 전략을 짰다. 이상적으로는 고골과 도스토옙스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자신이 쓴 소설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심농은 대중소설 편집자의 주문대로 문학적인 단어와 표현을 제거해 버린다.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단어로 문장을 쓴다. 추상적인 단어를 배재한다. 구체적인 단어만 나열해서 문장을 만든다.

"형용사, 부사, 단지 어떤 효과를 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든 단어, 단지 문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든 문장. 아름답기만 한 문장은 잘라 버립니다. 내 소설 속에서 그런 것을 하나라도 발견하면, 없애 버리죠." 88p

매그레 시리즈는 소설의 분량을 엄격하게 제한해 놓았다, 중편과 장편의 중간 정도로.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예술가다. 소설가는 밥벌이를 위한 연극이다. 심농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들을 통해, 글쓰기 전체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89p

심농은 대중소설가의 가면을 쓴 문학소설가였다. 

 

"내겐 글쓰기에 대한 아주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갈 겁니다." - 조르주 심농

Posted by lovegood
,

앤드류 노먼 애거서 크리스티 완성된 초상 - 작가 기질

애거서 크리스티 완성된 초상
앤드류 노먼 지음, 한수영 옮김/끌림

여사님이 가장 우선시 했던 일은 소설 쓰기가 아니었다. 글쓰기는 돈을 벌기 위한 부업이었다. 주업은 무엇이었나? 집안일이었다. 직업란에 가정주부라고 썼단다. 

자신을 작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작가 흉내를 내고 있다고 여겼다. 애거서의 인생 목표는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 소설 속에서 부부만세를 꾸준히 계속 외치는 것은 그래서였다.

"추리소설은 쓰기 어렵기 때문에 너는 할 수 없을 거야."라는 말에 발끈해서 짧은 시간 안에 최대 역량을 발휘해서 데뷰작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을 만들어냈다. 작가 기질이란 이런 것이다.

Posted by lovegood
,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
2014년 발행

내게는 부러운 사람이 딱 둘 있다. 둘 다 영국인이고 둘 다 유명인이고 둘 다 작가고 둘 다 오래오래 잘 살았고 둘 다 자서전을 썼고 둘 다 자신의 지난 삶을 만족하면서 죽었다. 그 둘은 러셀과 크리스티다.

죽기 전에 자서전에 이런 말을 쓸 수 있는 인생이란 참으로 멋지다.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 볼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마음이 흡족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은 소설보다 재미있다. 지난 시절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글이 짧아서 틈틈이 잠깐씩 읽었다. "지금 추리소설을 써야 '마땅'하지만, 작가란 모름지기 지금 써야 하는 것만 빼고는 무엇이든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라" 시작부터 이렇게 웃겨 주시는 필력이라니. 그렇게 애 여사는 틈틈이 자서전을 썼다. 1950년 4월 2일 시작해서 1965년 10월 11일에 끝냈다.

여행기, 일상사(집을 얻었네 말았네. 새 차를 샀네 어쩌네. 유모를 구했네 어쩌네. 남편이 이혼하자네 어쩌네. 학교에서 이런저런 수업을 들었네 어쩌네.), 잡담의 혼합이다. 소설 쓰는 것 외에는 대충 빨리 읽었다.

"나는 완전히 아마추어였고 전문적인 작가다운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저 재미였다." 심지어 직업 표시에 주부라고 써 넣을 정도였다. 추리소설을 쓰는 것은 부업이었다. 가계에 보탬이 될까 싶어 끄적거리는 거였다, 세상에나. 첫 추리소설의 출판계약을 한 후, 애 여사는 이것으로 책 쓰는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무려 80여 권이 넘는 책을 써내는 데도 말이다. 책을 계속 써낸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집 저택 '애슈필드'를 팔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이런 생각을 스스로 한 것도 아니다. 남편이 책을 더 써서 수입을 크게 올리면 된다고 권유해서였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푸아로 첫 등장 소설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마친 후, 그러니까 대략의 구상을 거의 다 마무리한 후에 휴가를 얻어(당시에 약 제조실 소속 간호사였다) 크고 황량하고 숙박객이 거의 없는 호텔에 투숙해서 맹렬하게 글을 써낸다. 혼자서 황무지를 산책하다가 등장인물의 대사를 중얼거리며 연기를 했다고.

377쪽부터 애거서 크리스티가 푸아로와 그가 등장하는 첫소설을 구상하는 장면을 회상하는 글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주변의 온갖 것들 가져다 조합하고 변형하고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며 그동안 읽은 추리소설의 예를 검토한다.

소설 속의 인물과 대사와 사건이 실제 현실에서 가져온 것임을 발견하니, 재미있으면서도 당혹스럽다. 어떤 건 그대로 가져다 썼고 어떤 건 변형해서 썼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와 소설에서 가져다 쓴 것과의 차이다. 소설은 더 효과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현실의 것을 '제조'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성공 비결은 작가가 되려고 하지도 문학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재미로, 나중에는 일로 했으며 거창하게 예술 작품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플롯을 짜내면 어떻게든 이야기 글로 써냈다. 묘사니 서사니 문장이니 이딴 거 신경 끄고 일단 이야기의 얼개를 잡았다 싶으면 시장의 요구에 맞춰 자신이 써낼 수 있는 것을 썼다. "나는 나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고는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자기 능력 밖의 것에 대해서는 재빨리 포기했기에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젊었을 때 자신을 알고 진로를 결정했다. "아무리 원하는 일이라도 이룰 수 없다면 현실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후회와 희망에 사로잡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좌절이 일찍 찾아온 덕분에 나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전혀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의 육체적 반응을 조절할 수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애 여사님, 수줍음이 많으셨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일들에 적성이 맞지 않았다. 혼자서 글 쓰는 작가가 딱이었다. 상상력이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날뛰고 문법이니 철자니 그 딴 건 신경도 안 쓰셨단다. 회화는 잘했지만 작문은 낙제였다고. 항상 주어진 주제에서 멀어진 글을 썼단다. 소설가 맞다. 소설은 상상으로 쓰는 것이니까.

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어떻게든 써내는 사람이 작가다. "내가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변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쓰고 싶지 않고,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마음에 안 들고, 잘 써지지도 않음에도 계속 글을 써야 하는 전문 작가의 무거운 짐을 그때 짊어졌던 것이다." 그렇다.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다.

2015.04.28

Posted by lovegood
,
광기와 우연의 역사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휴머니스트

 

 

 

 

[추천도서 006] 광기와 우연의 역사 - 슈테판 츠바이크 / 극적인 장면의 생생함

 

 

역사적 인물 여러 명의 간략한 전기문을 쓴 것을 모은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별다른 매력이 없어 보이는데 작가 이름만 대면 판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슈테판 츠바이크.

 

일단,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전기문를 읽기 시작하면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 그의 놀라운 문체 때문이다.

 

내가 읽은 전기문 대부분이 졸린다. 재미없다. 거의 다 지겹다. 하지만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위인전은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아니, 그가 쓴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 대부분이 다음과 같이 똑같은 탄성을 한다.

 

"역사 전기문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그렇다. 이건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며, 츠바이크가 쓴 전기문은 탁월한 글이다.

 

마치 실제로 목격하는 듯하며 바로 눈앞에서 그 옛날 일 옛날 사람이 보이는 듯할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쓰는 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히 사실과 사건을 나열하는 기존 역사 전기물과 달리,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하면서도 그 사건과 사실의 핵심을 꿰뚫어내는 통찰력에 있으리라.

 

츠바이크의 글에는 헨델이 뇌졸증을 극복하고 메시아를 작곡하는 모습, 톨스토이가 가출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극적인 순간을 잘 묘사해낸다.

 

이처럼,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시점의 한 장면을 풍부하고 세밀한 묘사로 그려낸 글이다.

 

내가 장담한다. 일단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 다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고.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책들을 탐욕스럽게 읽어치우게 될 것이다. 소설은 취향에 따라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갈라지겠지만, 전기문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최고다.

Posted by lovego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