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갈릴레오 3
[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현대문학 펴냄 2006년 9월 발행
재인 펴냄 2017년 8월 발행

헌신적 사랑

추리소설 맞아? 뒤집어진 추리소설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할 수 있을까? 설정은 신선했는데, 결말은 진부했다. 공격은 탐정(물리학자)과 형사가 하고, 방어는 용의자(수학자)와 모녀(살인자)가 한다. 범인을 알아버리면, 추리소설은 맥이 빠져버린다. 더 읽을 이유를 상실한다. 아예 이야기 시작에 범인은 물론이고 범행과정까지 보여준다. 아이고, 어쩌려고 이런 무모한 짓을? 헌신적 사랑을 위해?

사람들이 이 소설 재미있다고 얘기하고, 또한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가 엄청 잘 쓴 소설은 쳐다도 안 보다가 이 소설에 문학상까지 얹어준 이유는 뭘까? 제목에서 이미 결론이 나왔듯, 헌신적인 사랑 이야기로 눈물 짜면서들 읽었겠지.

멜로드라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있다. 우리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더라. 이 소설은 폭력을 쓰는 남편의 학대를 이기지도 못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흔해 빠진 얘기라고?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더라. 물론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일은 거의 안 일어나지만. 게다가 그 결말은 이야기를 위한 결말 같다.

제시하는 문제는 흥미로웠다. "자신이 생각해서 답을 내는 것과, 남에게 들은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간단한가." 339~340쪽 "그가 제시한 해답 말고는 절대로 다른 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해답이 유일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어." 340쪽 선입견을 깨고 진실을 찾으려면 머리를 써서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게 귀찮다. 그럴 듯한 답이 보이면 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감동 포인트는 맹목적 헌신이라기보다는 논리적 신념이다. 이는 비정상이다. "잘 되지 않을 때는 체념을 한단 말이지. 그것이 보통의 인간이 하는 행동이라고. 최후까지 지켜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342쪽

이시가미는 초인이다. 

2012.9.13

이시가마의 독백

촘촘하게 사건을 전개해서 보여준다. 이야기의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살인을 은닉하기 위한, 치열한 논리 구성력을 읽고 있으면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든다.

대결 구도를 만들면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진다. 탐정 갈릴레오의 적수가 될 만큼 천재적이면서도 끈질긴 수학자를 적수로 배치해서 읽는 내내 재미있다.

1인칭으로 쓰여진 소설은 아니지만, 이시가마의 독백을 들려주는데 마치 1인칭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는 듯했다. 완전히 타버린 남자지만 그래도 뭔가를 간절히 바라고 누군가를 반드시 구하려는 의지가 있다. 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이나 장밋빛 희망 따위는 없다. 우직하게 치열하게 자기 구원이라고 믿는 행위를 위해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2014.7.11

내향인

후반부만 다시 읽어 봤다.

트릭 자체는 그냥 그랬다. 역시 [악의]가 트릭 기준으로 최고의 작품이다.

그 트릭을 이용한 이시가미의 헌신적 사랑은 이제 어째 딱히 별 감흥이 없었다.

이시가미는 그 좋은 두뇌로 왜 그렇게 찌질하게 살았는지. 화가 나더라. 너무 내향인이었다. INFP.

2025.5.5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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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08년 초판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악의'에서 인간성의 단면을 날카롭게 묘파해냈다. 추리소설 장르에서 안주하는 그저그런 이야기로 쓰지 않았다. 범인 찾기 놀이와 트릭 보는 재미로 독자를 위한 놀이 한마당을 열고 잊혀지는 소설이 아니었다. 이토록 읽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다니. 놀라운 솜씨다. 

소설 주인공 가가 형사의 수사만큼 끈질기게 기필코 우리 모두에게 있을법한 '그 괴물'을 기어끼 꺼내 코앞에 들이댄다. 이런 악의적인 작가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 이후 이런 작품은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잘 팔리는 작가라고 해서 어떻게든 책에서 못난 점을 찾으려고 혈안이었다. 아무리 잘 써도 그냥저냥 괜찮네 정도로 폄하시켜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불행을 감추고 싶었으리라. 그래, 어쩌면 나도 또 한 명의 노노구치이리라. 이름부터가 마음에 안 들더니. 

초반부 서술 트릭을 읽을 때만 해도 별 기대를 안 했다. 뻔히 나 범인이라고 말하는 문장과 이 수기는 제 멋대로 꾸며낸 거라는 게 확연히 보였다. 시시하게 끝나겠네. 하하핫. 드디어 이 작가 씹어 줄 때가 되었다고 속으로 엄청 좋아했다. 후반부를 읽을 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이 작가를 어떻게든 깔아뭉게 버리고 싶었다. 예상했던 반전이었다. 그래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데...

마지막 세 쪽에서 지고 말았다.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면 좋으려만, 나는 담배를 못 피운다. 그저 찹찹한 심정을 삼키고 한 마디만 덧붙인다. 최고다.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19년 개정판

개정판으로 다시 읽은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감상은 달라졌다. 세월도 많이 지나서 그런지, 트릭과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서 다시 읽어서 그런지.

당시 시대 기술 수준이 그대로 나오고 있어서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포토앨범시디라니. 스마트폰, 인터넷, AI 시대에는 고대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서술 트릭을 이 정도까지 완성시켰다는 점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술 트릭.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호불호가 갈린다. 범인과 수법이 가장 나중에 밝혀지는 식을 선호하는 추리소설 애독자한테는 이 작품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초반에 범인과 수법이 밝혀지고 게다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 1인칭 시점 수기라니. 추리소설에서 싫어하는 것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연속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악의라는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정교하게 디자인된 작품이다. 반전 추리소설 기술력을 보여준다. 이게 최고가 아니면 뭘 최고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재미와 감동이다. 둘 다 있으면 좋지만, 둘 다 소설에 쓰기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악의'보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더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이제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선해도 미움을 받는다는 얘기다. 심지어 악의를 품어 선한 자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인간 본성의 악한 측면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 없다. 악플 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수밖에 없나 보다. 집단 따돌림과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저 계속 외면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버렸다.

학교 폭력(집단 따돌림)을 다루고 있지만 속시원하게 뭔가 해결해 주는 건 없다. 소설 '악의'는 좀 과하게 요약하면 악플 다는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고양이 독살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서술 트릭. 추리소설에서 1인칭 서술이 시작되면 거르는 게 낫겠다.

작가는 독자를 속이는 재미로 독자는 속는 재미로 추리소설을 읽는다지만 읽은 후 허무함을 달래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재미있었잖아? 그래 최고로 재미있었다. 그럼 됐지 뭐.

2024.9.24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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