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순양함 무적호]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 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민음사 펴냄
2022년 2월 발행
제목만 보면, 아동청소년용 과학소설 같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 무적 최강 병기 우주선을 타고 외계인 악의 무리를 슝슝 뿅뿅 다 헤치울 것 같지 않은가. 책표지에 로켓이 그려져 있었다면, 그렇게들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표지는 소설의 핵심 존재를 묘사했다. 검은 구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공포의 대상이겠으나 아직 안 읽은 이한테는 아닐 것이다. 뭐지? 심심하네. 고작 구름?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
"지구에서 제조된 강철 유기체이자 수백 년 동안의 기술 발전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인 콘도르호가 바로 이곳에서 불가사의하게 사라져 버렸다." 25~26쪽.
무적호는 실종된 콘도르호를 되찾기 위해 파견되었다. 도대체 어떤 존재가 왜 인류 최강의 우주선을 어떻게 그토록 간단하고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었는가. 인류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그 존재는 생물이 아니었다. 머리가 다섯 개 달린 고지능 외계 생명체가 아니었다. 무생물이었다. "무생물 진화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지요. 기계 장치의 진화 말입니다." 175쪽.
초미세 곤충형 기계. Y자 모양. 이것들이 모여 그 공포의 검은 구름 혹은 폭풍우를 형성한다. 일종의 '구름형 뇌'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솔라리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소설 '우주 순앙함 무적호'에서도 인간 중심으로 우주를 보는 관점을 비판한다.
"발 디디는 곳마다 인간의 이해력에 상충하는 모든 것들을 함선의 무력으로 파괴해야 하는가?" 251쪽
"인간과 비슷하거나 이해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아닌 일, 즉 인간과 관계없는 사안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빈 공간은 차지해도 무방하지만, 수백만 년 동안 이미 생존의 균형을 이루어 실재하는 대상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253쪽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316쪽
초중반까지는 딱히 이야기라 할 것이 없었다. 그저 무시무시하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무적의 존재에 대한 묘사와 대결이었다. 그러다가 후반부는 드라마다. 이야기의 초점이 구름에서 사람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일관성에서 벗어난, 엉뚱한 결말이다 싶었다. 조금 지나서 생각해 보니, 무생물 무적 존재와 대비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이다.
무생물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진화한 존재한테는 로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자기 목숨을 걸고서 생존자를 확인하고 죽은 이를 위해 무덤을 만든다.
로한이 마침내 귀환하여 우주선을 보고 "너무도 장엄하였으므로 단연 무적호라고 할 만했다." 하고 말한다. 인간의 진정한 힘은 과학 기술이 아니라 인류애에 있음을 확인한다.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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