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샘터사


The unknown is always mysterious and attractive." (未知의 것은 언제나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내 엣센스 영한 사전 표지에 써 놓은 영어 구절 중에 하나인데, 아마 고등학생 때 맨투맨 영문 독해 하다가 마음에 들어서 써 놓은 모양이다. 낭만주의는 아마도 미지의 것에 대한 상상일 것이다. 그것이 공포이건 환상이건 간에. 이미 다 아는 것에는 아무래도 상상하기가 어렵다. 

뛰어난 작가들은 일상에 그 흔하디 흔한 것을 새로운 눈과 느낌으로 표현해서 감동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너무 예외적인 경우다. 사람들은 달에 아무것도 없다고 밝혀지자 달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달은 달콤한 상상이나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달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지구와 가까운 화성과 금성에 대해서 아주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그런데, 그의 대안 없는 문명 비판이 그 아름다운 상상을 가끔 버려 놓는다. 그의 상상은 꼭 그 문명 비판을 배경으로 깔거나 대안 없는 공허한 환상으로 채운다.

'화성 연대기'는 SF라고는 하지만, 문명 비판을 위한 우화 소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화성에 도착한 지구인은 화성인한테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작가의 신랄한 지구 문명 냉소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火星 年代記. 말 그대로 1999년부터 2026년까지 여러 사건들이 화성에서 일어난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 과학 발달의 속도를 지나치게 빠르게 생각했다. 허긴 나도 어려서는 서기 2000년이 오면 달나라로 소풍 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화성에 인류가 발을 디디려면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웃긴 부분은 <2005년 12월 침묵의 거리>. 화성에 남은 유일한 남자와 유일한 여자. 간신히 연락해서 서로 만나는데, 나머지는 여러분이 상상해 보시길. 남자가 불쌍하더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도 보인다. 화성에 나무를 심어 녹색 혁명을 이루려는 사나이 이야기도 있다. 꽤 감동적이다. 성실만큼 감동적인 것도 없다.

소설 전체를 통과하는 것은 문명 비판이다. 지구는 핵무기와 전쟁으로 희망이 없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 마지막은 그의 노골적이고 대책 없고 무책임하고 황당한 문명 비판이 나온다. 아니 어쩌면 그런 비판은 인류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겠다. 다들 문명 발달에 제동을 걸지 않고 반성하지 않았던 그 시대 상황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분명 다른 입장을 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시대 상황에서도 그렇다만.

다음은 이 소설 2026년 10월 1백만 년 피크닉의 일부분이다. "아빠는 지구인의 논리와 상식과, 좋은 정치와 평화와 책임이라는 것을 찾고 있었단다." "그것들이 모두 지구에 있었나요?" "아니 찾지 못했다. 이제 지구에는 그런 게 없어졌다. 아마 두 번 다시 지구에는 나타나지 않을 거다.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소설 마지막은 정말 냉소의 극치다. 화성에 정착한 지구인 가족들. 아들은 아버지한테 화성인이 보고 싶다고 조른다. 아버지는 물에 비친 자신들을 가리키고 바로 자신들이 화성인이라는 알려 주는 역설로 끝을 맺는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이 책은 근본적으로 화성이 아니라 지구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 특히 미국인들에 대한 비난과 냉소다.

화성 탐사에 열을 올리는 미국인들에게 내가 한마디하자면, "그런 화성 탐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희들 마음 탐사니라. 세계 평화 운운하면서 무기 장사하는 니들. 인종 차별로 총 들고 싸움박질하는 니들. 인디언을 몰아내고(뭐 거의 대량 학살이지) 멋진 문명을 만들었다고 떠드는 니들. 레이 브래드버리의 경고를 잊지 말지어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화성인은 혹시 인디언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Red Planet은 화성이고 Reds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다. 화성에 도착해서 뭔가 세우고 개척하려는 지구인, 그런 지구인한테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화성인의 모습.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소설 곳곳에 보이는 모습이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연상시킨다.


The Martian Chronicles
Bradbury, Ray
Simon & Schuster


화성 연대기. 제목 그대로 소설의 각 장을 연 월의 연대기 사건으로 표시했습니다. 목차 대신에 연표(Chronology)가 나오죠. 1999년 1월부터 시작해서 2026년 10월에서 끝납니다. 사건은 단편적이고 독립적이면서도 적절하게 이어서 나아갑니다. 여러 잡지에 단편으로 기고했던 글을 모으고 앞뒤에 더 써서 이렇게 한 권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 책에는 시대 분위기 두 가지가 어둡게 깔려 있습니다. 전쟁과 검열. 레이 브래드버리가 이 단편소설들을 쓰던 시절이 암담했죠. 핵 폭탄 위협으로 인류가 전멸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시대였습니다. 출판 기록을 보니 1950년 5월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그 유행어 기억하십니까? "지구를 떠나거라." 80년대에 김병조가 만들었죠. 지금도 종종 쓰는 표현입니다. 짜증나는 인간이 보일 때마다 그 말을 하죠. 이 소설은 반대로 짜증이 난 사람들이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갑니다. 흑인들이 몽땅 화성으로 가고 주부들도 모두 화성으로 갑니다. 지구에 남은 사람은 고집불통인 백인 남자 늙은이죠.

예술과 종교를 무시한 과학과 전쟁에 대한 비난과 조롱으로 가득한 풍자소설입니다. 소설 전반부에서 화성 탐사대가 어처구니없이 죽고 넷째 탐사대가 화성에 도착했을 때는 화성인이 황당하게 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는 사람들이 죽이고 죽네요. 중반부는 지구인의 화성 이주를, 후반부는 지구인의 화성 정착을 이야기합니다.

작가의 주장이 등장 인물을 통해 거침없이 나옵니다. 화가 정말 많이 나셨던 모양이에요. 과학과 종교는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수 없을까. 제대로 읽지도 않고 검열하는 인간들 죄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매섭죠.

예전에 이 소설의 번역본 독후감에, 대안 없이 문명 비판만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면서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는 무척 어려웠겠죠. 지은이가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며 훌륭한 문명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들에 의해 한순간에 폐허로 변하는 것을 일일이 들어 얘기하는데, 말문이 막히더군요. 반박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계속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화성에 산소가 부족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한 남자가 나무를 심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상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 놓았죠. 소설 후반부에는 웃긴 이야기도 있습니다. 최후에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남았을 때 과연 결혼할까? 이런 농담 같은 거요.

화려한 환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요. 외롭고요. 적막합니다. 화성이 사막처럼 황량하게 그려졌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향수와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있죠.

마지막 문장에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네요.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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