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 그는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으며 일본 최고의 영문학자이자 진정한 일본 지성인이었다.

그는 가장 일본인다운 사람이었다. 동시에 가장 일본인답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인들이 서구화와 군국주의에 열중할 때, 그는 성급한 서구화의 문제점과 군국주의의 폭력성을 경고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기고만장한 일본인에게 일본은 곧 망할 거라고 말했다. <산시로>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수염 기른 남자는, "우린 서로가 불쌍하군!"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이런 몰골을 하고 이렇게 볼품 없어서는, 아무리 러일 전쟁에 이겨 일등국이 되어도 소용없지요. ……(중간 생략)…… 산시로는 러일 전쟁 이후 이런 사람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정말이지 일본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제부터 일본도 점점 발전하겠지요."라고 변호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태연하게, "망하고 말거요."라고 말했다.} 17-18쪽

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새로운 서양의 압박은 사회상으로나 문예상으로나 우리 신시대의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구식 일본의 압박과 마찬가지로 고통이다. 우리는 서양의 문예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연구는 어디까지나 연구다. 그 문예 밑에 굴종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서양의 문예에 얽매이기 위해서 이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얽매인 마음을 해탈하기 위해서 이것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36쪽

나쓰메 소세키의 '자기 본위' 사상은 우리 한국 지식인도 머리에 새겨 둘 가치가 있다. 동양 지식인들에게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감과 지나친 동경,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서구 지식 중에서 쓸데없는 것은 배우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서구 지식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도 버려야 할 것이다.

영국 유학 시절, 그는 밥보다 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책을 사기 위해 식비를 줄인,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그는 학문에 미친 사람이었다. 미학, 철학, 역사, 문학, 과학, 회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 습득. 끝이 안 보이는 독서량.

우리나라 소설가들은 글을 써서 성공하면 국문과 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소세키는 그 반대였다.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전업 작가가 되었다. 또, 일본 문무성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거절했다. 남들이 그렇게 바라는 지위와 명예를 훌훌 털어 버리고 글쓰기에 전념했다. 그는 진정한 작가였다.

1908년 발표작 '산시로'는 청춘 소설이다. 시골 청년 산시로가 도쿄로 상경해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그렸다. 우정, 사랑, 도시 문화에 대한 충격 등. 갓 개화된 일본 사회의 모습.

주인공 산시로와 신여성 미네코의 사랑이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다.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사랑은 정신적 사랑에 가깝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은밀하게 품고, 뽀뽀도 포옹도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서로 좋아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소세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사 구조가 뛰어나다. '산시로'는 시작 부분부터 독자를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이 호기심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번역은 대체로 의역이냐 직역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최재철의 이 책은 직역이다. 시제와 등장 인물의 명칭을 세세하게 신경을 써서 번역했다. 주석도 달았다. 읽기는 쉽지 않으리라.

읽기 쉬운 책은 따로 있다. 최병련의 번역본(<사랑이라는 무지개>; 하남출판사 펴냄, 1991년 초판)은 의역이다. 오늘날 잘 안 쓰는 말은 비슷한 의미의 요즈음 우리말로 바꾸었다. 주석을 달지 않았다. 시제는 읽기 편하도록 과거형으로 통일시켰다. 소설 내용 이해를 돕는 그림도 있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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