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설을 쓰는 사람은 역사가한테서는 상당히 많은 욕을, 독자들한테서는 대단한 찬사를 동시에 들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다.

왜 욕을 먹을까? 읽는 재미를 위해 역사를 변형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참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픽션이라는 타이틀을 빼면 정말 사실이라고 믿어버릴 정도로 써 놓았기에, 역사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왜곡은 절대로 용납이 안 된다. 베스트셀러였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이휘소 박사의 삶을 소설적 재미를 위해 거짓으로 꾸며서 말이 많았다. 지금도 말이 많다. 그게 정말이냐는 질문이 오늘도 인터넷에 끝없이 올라온다. 가짜라는 대답도 역시 끝없이 올라온다.

그러면 찬사는 왜 그리 대단한가? 한마디로, 재미있기에 그렇다. 대개 음모론까지 덧붙으면 재미는 상상초월로 가 버린다. 이 재미를 재미로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지 않아도 권력자들에 의해 과거 역사가 멋대로 해석되고 바뀌는 상황에, 이제는 단지 재미를 위해 역사를 변형한다는 건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허구는 욕망을 따라 현실과 상상을 오르내리는 곡선이다. 사실과 상상은 때때로 경계가 모호하다. 우리는 사실로 믿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을 때가 많다. 상상은 그런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그릴 수 있다.

훌륭한 논픽션 작가였으나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칼렙 카, 그는 사실을 조사하던 중에 재미있는 점을 발견한다. 루스벨트가 하버드 재학 시절 윌리엄 제임스한테서 해부학 강의를 들었다. 그렇다면, 루스벨트는 심리학 지식도 알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윌리엄 제임스는 미국 심리학의 개척자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붙은 상상은 루스벨트가 뉴욕 경찰총장으로 지냈다는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범죄 심리학으로 범인을 잡는 형사도 있을 법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이를 증명할 사료는 없다. 작가는 허구 인물을 추가하며 이야기를 꾸며 나아간다. 허나, 그 서술과 묘사는 철저히 사실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꾸며낸 이야기라는 점을 곧바로 잊는다. 소설 첫머리에 루스벨트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는데, 표지에 소설이라는 작은 글씨를 보지 못하고 무작정 읽었다면 진짜 역사적 사실로 착각하리라. 분명히 소설이라고 알고 읽기 시작했던 나조차 이거 역사서네 하며 나도 모르게 믿어 버렸으니.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은 사실이 아니다. 꾸며낸 이야기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 미국 뉴욕을 그리고 있다. 2권 끝에 주요 실존 인물 소개가 있으니, 그걸 먼저 읽고 1권 첫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유명한 사람들이라고는 하나 우리에겐 낯설다. 이를 고려해서 출판사에서 덧붙인 모양이다. 친절하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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