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어두운 방에서 글을 쓰는 사람. 책을 읽는 일 외에는 특별히 열중하는 것이 없는 사람. 답답할 때면 무작정 길거리를 정처 없이 걸어다니는 사람. 가끔 낯선 사람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이 사람은 누구인가. 작가다.

'뉴욕 3부작'은 작가의 존재를 살핀다. 

유리의 도시: 탐정소설가 퀸은 잘못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우연히 사립 탐정 폴 오스터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스틸맨이라는 노인을 계속 감시한다. 

유령들: 사립 탐정 블루는 화이트의 의뢰를 받아 블랙을 감시한다. 

잠겨 있는 방: 실종된 작가 팬쇼. 그 팬쇼를 추적하는 팬쇼의 친구. 세 소설은 교묘하게 서로 연결되며, 거울이 되어 서로를 비춘다.

겉모습은 탐정소설이다. 허나, 추격전도 총싸움도 격투도 독자의 추측을 반전하는 추리도 거의 없다. 그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차분히 따라갈 뿐이다.

추격하는 사람과 추격 받는 사람. 관찰하는 사람과 관찰 당하는 사람. 독자와 작가. 이 역할은 엎치락뒤치락 돌아간다. 읽으면서 작가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등장 인물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독자의 역할도 한다.

역할 바꾸기를 통해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만 마침내 이해하지 못한다. 관찰과 추격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는 점점 불확실해진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난다.

폴 오스터가 '뉴욕 삼부작'에서 언어, 글쓰기, 자아 정체성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오히려 독자한테 묻는다. 답은 작가가 아닌 독자 스스로 해야 한다.

소설가. 허구의 등장 인물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어쩌면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은 사라져 가는 사람. 몇 년 동안 집 안에 틀어 박혀 글을 쓰는 사람. 단어 하나 때문에 한 달을 보내기도 하고 문장 하나로 일 년을 고민하는 사람. 언어에 괴로워하면서도 끈질기게 언어에 매달리는 사람. 이 책에서 내가 읽었던 것은 혼자 방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바로 작가 폴 오스터였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던지는 질문이 만만치 않아서다. 읽은 후 남는 것은 즐거움과 해결이 아니라 쓰라림과 의문이다. 작가의 고통, 자아 정체성의 혼란, 언어의 불확실성 등을 진지하게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모두 잠든 밤중에 홀로 깨어 이 책을 펴기 바란다. 글 쓰고 글 읽는 자아, 존재의 심연이 당신을 바라본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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