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히가시가와 도쿠야
씨엘북스
2012.02.16.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나오면 무조건 사는 작가다. 바로 구입했다. 국내 번역된 책 모두를 사서 소장하고 있다. 이로써 총 6권이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시리즈인 모양인데, 평들이 좋다. 기존 번역된 작품 못지 않다고. 방과 후에? 학생들 얘긴가?
다 읽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가 정점인 걸까. 이야기하는 방식은 분명 같은 작가인데, 미스터리 수준은 참 많이도 떨어진다.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혹시 예전 습작을 뒤늦게 발표한 것 아닐까. 야구 얘기와 유머가 지나치다. 장난과 잡담은 됐고 미스터리를 내놓으란 말이야.
다시 곰곰 왜 예전 작품들과 달리,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까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학원물 하이틴 소설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나중에 고려해 보니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그러다 깨달았다.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라서 모르고 있었다, 추리소설에서는 반드시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것! 이 단편집에는 그 어디에도 시체가 나오지 않는다. 살인자가 없다! 긴장감이 없다!
'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에 실린 단편 8편은 정교한 트릭이라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다. 일본 에어콘 상표와 이름이 동일한 여학생을 내세울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우스개 퍼레이드다.
수수께끼는 모순상황을 연출해서 만든다. 가장 훌륭한 작품은 '키리가미네 료의 옥상 밀실'이다. 밀실 트릭의 장인다운 솜씨다. 우연과 필연을 결합시켜 이상한 일을 만들어냈다. 알고나면 피식 웃음만 나오지만. 힌트는 책 표지 그림에 있다.
'키리가미네 료의 옥상 밀실'의 해답은 만화에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상대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방법은? 아는 사람만 키득거릴 수 있다.
히기시가와는 이 소설집에서 선배 추리소설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 모양의 복도는 분명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을 연상시키며, 독을 탄 커피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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