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폴라북스 펴냄
2011년 4월 발행
전자책 없음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다보면, 반복되는 이야기 패턴과 단어를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의 관심사와 지식 범위를 알게 되죠.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을 3권 읽고 마지막으로 이 책까지 읽으니까 확연히 보이네요.
일단 이 추리소설가는 밀실을 엄청 좋아합니다. 저택섬은 엄밀히 말해서 천장이 뚫려 있으니 밀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들어가거나 빠져나올 방법이 없으니 밀실입니다. 소설에서 밀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사를 읽고 덮석 천장으로 오가는 방법으로 패러세일링을 생각했었다는. 바보야, 그게 가능해. 무슨 007 영화냐.
건축 관련 지식이 상당한 편이네요. 전공은 법학이고 전직은 카메라 제조회사 사무직 직원인데, 특이합니다. 허기야 저도 제 전공과 전직과는 별 관련 없는 지식이 많은 편이긴 하네요.
세월의 간격으로 두고 동일 장소에서 사체가 발견되고 이 장소에 트릭에 있어 이를 알아내지 못해 미궁에 빠지는 점에서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와 비슷합니다.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저택입니다. 비닐하우스의 트릭은 해당 전문 지식이 없으면 추리하기가 어렵지만, 이 작품은 아주 코앞에 대고 힌트를 알려줘서 금방 눈치를 채고 읽어가면서 발생한 사건들과 어떻게 짜맞출지 고민해 보셨던 분들은 무척 재미있었을 겁니다.
저는 이런 기계적 트릭이 싫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읽었던 것은 순전히 만화책을 방불케 하는 코미디 때문이었습니다. 해당 트릭과 어울려서 환상적인 시트콤을 만들어 냅니다. 그냥 웃기려고 한 게 아니라 그렇게 웃음이 터지는 장면마다 추리의 결정적 힌트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라 논리적 필연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었죠.
덜렁거리고 썰렁하고 긴장감 없이 가볍게 진행되어서 이 소설 별로라고 여기는 분도 없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날카롭게 쏘아대는 탐정의 한마디는 그 어떤 추리소설에서도 읽지 못했던 진지함을 중후하게 표현해냈더군요.
"범인일 가능성이 십중팔구"일 텐데 왜 그런 모험을 했냐고 가미야마 경부가 묻자, 사키 탐정이 대답합니다. "경부님. 십중팔구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경찰에 고발하려면 한없이 100퍼센트에 가까운 확신이 있어야만 하니까요." 빨리 읽어치우고 잠이나 자려던 나를 때리는 문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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