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열린책들
발매 2010.05.10.
이 소설은 팩션이라 불러도 될까. 피터 반 호이스의 그림 '체스 게임'을 그대로 가져다가 소설에서 미스터리 장치로 이용했다. 책에는 이 그림을 글로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다고 찾아보니, 언커버드(Uncovered)라는 영어 제목으로 케이트 베킨세일이 애띤 모습으로 나온다. 매혹적인 자태의 여자라기보다는 단말머리에 선머슴으로 나온다.
영화는 소설 분위기와 달리 유쾌하게 풀어내려고 했다. 체스 플레이어를 명랑한 캐릭터로 바꾸어 놓았다. 여기저기 우스개가 터지는데, 소설에는 그런 거 없다. 시종일관 어둡고 진지하다.
초반은 흥미롭다. 주인공은 미녀고 그녀의 직업은 고미술 복원가다. 훌리아는 그림 복원 작업 중에 그림 밑에 숨겨진 글자를 발견한다.
누가 기사를 죽였는가?
대놓고 추리소설이다. 왜 이 문장을 그림에 숨겨 놓았을까? 그런 의문이 들어 그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림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주인공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주인공은 자신의 신변을 위험을 느끼면서도 체스를 잘 두는 남자와 함께 범인을 찾아나서고 그러다가 외통수 같은 결말에 이른다.
옛 그림의 이야기가 현재와 겹치고, 그림 안의 체스 게임이 지금 현재에서 재현된다. 흥미로운 전개다. 그런데 결론이 별로였다.
추리소설 팬의 강력한 추천에, 베스트셀러라는 기대감에 읽었는데 내 취향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체스를 좋아하고 체스를 이해할 줄 안다면 열광하겠지만, 체스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무료하기만 할 뿐이다. 체스 수수께끼는 됐으니까 살인범이 누구일까 고민해 봤는데, 반전 기법에 익숙해서 가장 의심스럽지 않은 자를 지목했더니 역시나였다. 억지스럽긴 하지만 전반적인 소설 분위기와 흐름 상으로 봐서도 그 사람만이 범인이 되어야만 하는 구조다.
머리로 쓴 소설은 재미와 흥미는 있어도 감흥이 없다. 정교하게 짜맞춘 솜씨에는 경의를 표하나 결론은 패배주의와 자기 감상주의에 빠진 지적 유희로 채운 500쪽짜리 장광설이다. 허탈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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