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이든 필포츠 지음
엘릭시르 펴냄
2012년 11월 발행


추리소설을 거의 읽어 본 적이 없는, 순진한 독자라면 이 소설은 흥미롭다. 계속 살인이 일어나는데 시체는 발견이 안 되고 유력한 살인 용의자는 자꾸만 나타난다. 수사에 나선 형사 마크 브렌던은 미인한테 정신이 팔렸다. 수사는 진전이 없다. 여기까지는 근사하다.

펜틴 부인, 마크, 도리아의 삼각관계는 도리아의 승리로 끝난다. 미인이 탐정 마크가 아닌 미남 도리아를 선택해서 결혼해 버렸다. 과연 이 소설을 더 읽어야 할지, 연애소설로서의 갈등 구조는 끝났으니까, 고민하던 중 미국 명탐정 피터 건스가 나타나서 마크한테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연역법의 맹점을 설명한 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한 다른 관점을 통합해서 보라고 충고한다.

가장 의심스럽지 않은 자를 범인으로 만들어 반전을 만든다는 추리소설 장르 규칙에 충실하다.


문장은 좋지만 트릭은 형편없었다. 추리소설의 고전명작으로 손꼽는, 이든 필포츠의 ‘The Red Redmaynes’를 읽은 후에 느낌이 그랬다. 요즘 작가가 이렇게 썼으면 출판이 안 될 것이다. ‘연기의 신’으로 반전을 만드는 짓을 영악스러운 요즘 독자들이 가만 두고 보지 않으리라. 시각적 효과와 반전의 묘미? 붉은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람이 나올 때부터 눈치 빠른 독자한테는 미스터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옛날 작품이다. 셜록 홈즈의 첫 작품 ‘주홍색 연구’가 장황하고 지루하고 쓸데없는 자백 수기를 붙였듯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도 길디긴 사연에 마지막 ‘가짜 눈’ 얘기까지 덧붙여서 그러지 않아도 실망했던 내게 더는 추리소설을 읽지 말라는 저주를 내렸다.

추리소설을 읽은 경험이 거의 없는 독자거나 세련된 문장력을 칭송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으나, 이미 여러 트릭에 익숙하고 추리소설은 반전 기술력에 있다고 믿는 독자한테는 아무리 고전 명작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야 할 작품이다. 다만, 역사적 가치와 문학적 향기를 중시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컴퓨터 그래픽 시대에 스톱모션 영화를 보는 기분이겠지만.

2014.05.22.

Posted by lovego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