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나이트]
Mother Night (1961)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9년 3월 발행
소설을 삼 분의 이 정도 읽을 상태에서 동명 영화를 봤다. 그리고 마저 소설을 다 읽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소설을, 소설을 읽은 사람은 영화를 보려고 할 것이다. 희안하고 재미있게도, 영화에서는 소설의 세부 사항을 생략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영화에서 소설에는 없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그냥 별다른 말 없이 체스 장기 말들을 조각하는데, 소설에서는 체스 말들을 조각하는 조각도가 한국 전쟁의 군수 물자로 받았다고 나온다. 소설은 주인공의 마지막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데, 영화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끝난다. 참,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원작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가 실제로 나온다, 주인공 곁을 지나가는 사람으로.
커트 할아범의 대표작 '제5도살장'에 열광했거나 혹은 질린 독자한테, 이 장편소설 '마더 나이트'는 참으로 친절하다. 이야기가 대체로 시간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예 완전히 시간순으로 재배열해서 보여줬다. 눈물 날 정도로 고맙더라.
스파이, 정획히는 이중첩자 야이기다. 주인공 캠벨 2세는 이스라엘 전범 재판을 기다리며 감옥에 갇혀서 자신의 지난날을 나치 전용 타자기로 타이핑하면서 회상한다. 회고록 형식이다.
아, 미리 경고한다. 이중갑첩의 멋지고 긴장감이 넘치고 재미나는 활약상을 기대하지 마시라. 전통적인 영웅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좋아하는 독자라면, 보네거트의 소설은 피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능동적으로 뭘 하는 캐릭터가 아니고 수동적으로 당하는 인물들이 나오니까. 서양장기 체스의 말, 폰을 생각하면 딱이다.
주인공 켐벨은 부조리 캐릭터다. 반유대주의자로 나치 선전부에서 라디오 선전방송을 하는데, 실은 그 방송을 통해 미국 정보부에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본인 스스로야 미국의 영웅이라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나치다. 그의 장인어른조차 네가 미국 스파이건 뭐건 어쨌거나 선전방송 자체를 훌륭하게 해냈으니 딱히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니.
"다른 사람이 어디로 가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 데도 못 가는 사람,
다음에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기를 애타게 바라는 사람,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을 아우슈비츠에서 수천 명이나 봤어." 325쪽
나는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날마다 보고 있다. 거울 보면 내가 보인다. 사는 데 가장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왜 사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317쪽)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서,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서, 또 누군가는 권력을 위해서 산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말해, 뭐 어쩌다 보니 그냥저냥 살고 있을 뿐이지 않나.이 소설 읽고서 인생의 목표를 고민할 줄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뭔가를 스스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래서들 예술가를 부러워 하는가 보다.
도대체 전쟁에 왜 그렇게들 환장할까? 작가의 통창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을 읽었다면 밑줄을 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320쪽
주인공/작가는, 전범에 대한 올바른 조치가 사형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이라고 한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일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죄라고 인식조차 못 하고 있으니. 그리고 용서해야 한다고. 왜 예수가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참, 안 쓰고 끝낼 뻔했네. 아우프 비더젠. 잘 가요가 아니라 또 만나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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