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하우스의 유령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엘릭시르
2014년 9월
전자책 있음
드라마와 소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넷플릭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은 무서웠다. 정작 원작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은 마지막만 빼고는 내내 하이틴물 읽는 것 같았다. 하나도 안 무섭다. 꿈과 낭만의 소녀가 재잘거린다. 가끔씩 어둡지만 대체로 명량한 분위기다. 유령집 체험 수기 같다. 원조 맛집이 항상 맛있는 것은 아니다. 명불허전이라는데, 그냥 허전했다.
무더운 여름날 공포물을 읽고자 이 책을 선택했다면, 왜 자신이 연애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동성애 같은데...
나름 미스터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긴 했다. 왜 문이 자꾸만 닫히는지, 왜 집에 있으면 불안한지. 유령 미스터리를 풀어주나. 기대기대 두근두근. 아니었다. 후반부에 박사의 부인과 조수(?)가 와서 플랑셰트 남용하며 맘대로 유령 만들기를 한다.
이 소설은 시작할 때, 이미 끝난 이야기다. 그래서 같은 문장으로 된 같은 문단이 처음과 끝에 나온다.
"어둠을 품은 채 언덕을 등지고 서 있는 힐 하우스는 광기에 물들어 있다. 지금까지 팔십 년간 자리를 지킨 이 건물은 앞으로도 팔십 년은 우뚝 버티리라. 벽은 똑바르고 벽돌은 차곡차곡 쌓여 있으며 바닥은 탄탄하고 문은 꼭 닫혀있다. 힐 하우스를 이루고 있는 목재와 석재 위로는 항상 침묵이 내려앉는다. 무엇이든 저택 안을 걸어갈 때는 항상 혼자이다." 35쪽, 368쪽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유령이지 않을까.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듯 사니까. 숨막히는 현실에서 인간은 탈출의 방법으로 몽상에 빠진다. 꿈을 꾼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짜 유령이 된다. 이같은 주인공 앨리너의 광기는 운명이었다. 소설 첫 문장에 예언했다. "그 어떤 생명체도 절대적 현실에 갇힌 채로 살아갔다면 광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35쪽
단편소설이었으면 깔끔하고 인상적이었을 듯 싶다.
작가와 이 소설 주인공이 겹쳐 보인다. "어머니의 기대와 간섭에 반발한 나머지 병적인 공상과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372쪽
202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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