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페낙 기병총 요정 - 이야기의 위로
기병총 요정
다니엘 페낙 지음, 이충민 옮김/문학동네
말로센 시리즈 2탄이다. 1탄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의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남김 없이 알뜰하게 이용한다.
소설 첫머리부터 사람 죽는 사건이 터지고 아무리 봐도 관련이 없을 법한 일들과 사람들이 나열되며 사건이야 터지든 말든 말로센 가족들은 태평하게 각자의 개성과 일상생활에 충실하다.
젊은 형사가 할머니가 옛날 독일제 권총 P38로 쏜 총알 단 한 방에 죽는다. 미녀 기자가 살해 직전까지 몰린다. 노인들이 살해당한다. 노인 대상 마약 밀매가 성행한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출판될 책이 사고로 연기된다. 이처럼 무관해 보이는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전편처럼 역시나 우리의 희생양이자 우리의 주인공 뱅자맹 말로센은 온갖 범죄의 용의자로 몰린다. 자신이 그 범죄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지도 모른 채 가족들을 부양하기 바쁘다. 전편에 엄마가 임신했던 아이를 이번 편에서 키우느라 말로센 가족 모두들 정신이 없다.
극적이면서도 급박하고 부정적인 사건들의 발생과 전개 속에서 여유롭게 중간중간 쉼표처럼 해맑은 농담을 해대는 이야기 솜씨가 아주아주 능글맞다.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뱅자맹의 엄마가 이야기 본론에서는 별로 눈에 보이지도 않더니 이야기의 끝부분에 웃음의 결정타를 날린다.
부동산 문제와 노령화 사회, 여기에 마약문제까지 개입시킨 어둡고 우울한 사건들이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임에도, 주인공/작가의 낙관주의와 유머감감 덕분에 동화처럼 읽힌다. 노부인이 빙판 위를 걷는 장면을 아프리카 지도에 빗대어 길고 장황하게 묘사하는 것이 그렇고, 총에 맞아 머리통이 터져버리는 모습을 요정이 사람을 꽃으로 바꿔버렸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도 그렇다.
다니엘 페낙은 온갖 사건들과 갖가지 우스개가 펑펑 터지는 가운데 갑자기 깊고 조용한 사색을 불쑥 꺼내 독자한테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 있지도 않은 병을 만들어내는 것은 흔한 일이에요. 외로움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죠. 그러니까 자기가 두 명으로 쪼개지는 거예요. 자기가 타인인 것처럼 자기를 간호하는 것이죠. 본래의 자신과 자기가 간호하는 사람으로요." 251쪽 책/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티안 형사의 실제 사연이기도 하면서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을 잃고 외로움에 괴로워 하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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