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페낙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 현실은 환상보다 참을 만하다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는 프랑스 소설가 다니엘 페낙의 엽기가족 추리범죄 스릴러 소설 시리즈 '말로센'의 1편이다. 현재 7편까지 나왔다.
Au bonheur des ogres (1985)
La fée carabine (1987)
La petite marchande de prose (1989)
Monsieur Malaussène (1995)
Monsieur Malaussène au théâtre (1996)
Des Chrétiens et des maures (1996)
Aux fruits de la passion (1999)
국내 번역은 순서대로 순탄하게 나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계속 번역이 되고 있다. 이 소설 시리즈는 프랑스에서 편당 백만 부 이상 팔아치운 베스트셀러다. 번역한 출판사에서는 프랑스처럼 한국에서도 대박을 기대했으리라. 판매 결과는 부진하다. 다행스럽게도, 문학동네에서 다니엘 페낙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 출판 중이다.
웃음과 살인이 폭죽처럼 펑펑 터지는 소설이지만 읽기가 그리 수월친 않다. 소설 등장인물들 설정이 우리나라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엄마는 같으나 아빠는 제각각인 아이들이 모여서 이룬 가족이다. 오히려 그 반대 설정은 이해가 되겠지만. 또한, 다문화를 능숙하게 녹여낸 글은 이제서야 다문화 가정에 신경을 쬐금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고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프랑스 하나만 해도 버거운데 다른 여러 나라 문화와 언어가 뒤섞여서 펼쳐지니, 부담되리라. 게다가, 동성애자도 나온다.
그래도 추천한다. 읽은 보람과 즐거움을 충분히 선사하는 소설이다. 국내에 가장 먼저 번역되어 나온(1996년) '산문 파는 소녀'를 읽은 사람들이 말로센 시리즈 전체를 구해서 다 읽으려고 드는 것을 보면, 이 말로센 시리즈의 독특한 재미가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는 증거다. 나 자신도 이를 입증하고자 이 글을 쓴다.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문학동네
소설 배경은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이곳 이때 다소 독특한 '희생양'을 연기해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우리의 주인공 '뱅자맹 말로센'이 있다. 쾅, 백화점 안에서 폭탄이 터진다. 폭탄에 터진 것은 사람. 이곳저곳 시체의 파편이 튄다.
계속 터지는 폭탄. 평소 희생양을 '연기'했던 뱅자맹은 졸지에 범인으로 몰려 동료들한테 구타를 당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공은 끊없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재미있는 허구의 이야기로 꾸며내서 동생들한테 들려주고 동생들도 각자 엽기 행각을 천연덕스럽게 꾸준히 이어간다.
식인귀 꿈을 꾸고 식인귀 그림을 그리는 프티
점성술로 폭발시점과 장소를 예견하는 테레즈
손수 제조한 폭탄으로 학교에 화재를 일으킨 제레미
엽기사진을 찍어대는 클라라
쌍둥이를 임신 중인 루나
끊없이 아빠가 다른 아이를 낳는 엄마
키우는 개마저 엽기다. 간질에 걸린 쥘리우스.
작가의 너스레가 기막히다. 개 이름 쥘이우스와 두운을 맞춘 쥘리아를 주인공이 꼬시려 드는 여자들의 총칭으로 정했다. 시체 조각이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시체의 남대문이 열렸다고 말한다. 그다지 관련이 없어보이는 사실과 사건이 마지막 순간에 모두 결합되어 수수께끼가 풀린다.
백화점 폭파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 풀기를 따라 읽다가 이 책 340쪽에서 작가의 인생관을 발견했다. 말로센 시리즈가 추구하는 삶의 자세다.
"현실이 늘 환상보다 참을 만하다는 거야. 설령 그게 더 나빠진 현실이라도!" 살아있는 우리는 현실을 참을 수 있다. 현실을 참을 수 없다면 남은 길은 자살밖에 없으므로. 현실을 참지 못하는 자들은 자살하고 현실을 참아내는 사람들은 비록 희생양이 될지라도 희망을 갖는다. 다니엘 페낙은 이 소설에서 '죽음의 종말' 대신 '생명의 시작'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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