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명상하기
프레데릭 프랑크
정신세계사
프레데릭 프랑크의 <연필로 명상하기>에 선(禪) 어쩌고 지껄이는 부분이 많아서 거부감이 있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마음으로 보자." 이처럼 평범하고 쉬운 삶의 진실을, 나는 왜 외면하고 살았던 것일까.
이 책은 그림을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여섯 살 때부터 나는 연필을 쥐고 사물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그려보려는 열의가 대단했었다. 그리하여 내가 쉰 살이 되었을 때는 세상 만물의 다양한 생김새에 대하여 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일흔 살이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 그려 놓은 모든 것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흔 세 살에 비로소 나는 자연과, 동물, 식물, 새, 물고기, 벌레의 참된 본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여든 살이 될 때에는 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고, 아흔 살이 될 때는 아마도 사물의 신비를 꿰뚫어 보게 될 것이며, 또 백 살이 된다면 나는 아마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백 열 살이 될 때는 내가 무엇을 그리든지(그것이 하나의 점이든 선이든)그 모든 것 자체가 온전한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 내가 백 스무 살이 될 때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아도 사물이 내 눈을 통해 저절로 표현될 것이다."
세계 유명 미술관에 자신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는 사람, 프레데릭 프랑크. 바로 이 책을 쓴 사람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물을 진실로 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그 속에 나오는 여자 누드들은 대개가 꿈꾸는 듯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지만, 그것도 결국 구경꾼의 눈을 자극하려는 교태일 뿐이다." 84쪽 누드화에 대한 프레데릭 프랑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는 섹스 도구로 전락한 누드화가 아닌, 애써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알몸을 그린 그림을 보여 주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이 책에 있는 늙은 부부의 누드화는 결코 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책에 있는 그의 그림들은 지극히 간략한 연필 소묘다. 처음 보면 투박하고 엉성하게 보인다. 그러나 계속 보고 있으면 그림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놀라운 그림 솜씨를 발휘하는 화가는 연필로 명상하기 십계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하나, 하루도 쉬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그려라.
둘,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영감이란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라, 일을 해 나가는 가운데에서 찾아오는 것이니까.
셋,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지금껏 배워 온 것에 대해서는 모조리 잊어라.
넷, 좋은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거나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말며, 형편없는 그림이 되었다고 해도 그 자리서 잊어라.
다섯, 남에게 보여줄 욕심으로 그리지 마라. 자시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자기 그림에 대한 비평가가 될 수 없으니.
여섯, 오로지 자기 자신의 눈만을 신뢰하라. 그리고 손으로 하여금 눈이 보는 대로 따르도록 하라.
일곱, 세상 천지 그 어떤 박물관에 있는 금은보화보다 자신이 지금 그리고 있는 이 생쥐 한 마리를 더 소중하게 여겨라.
여덟, 세상 만 가지 사물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그리고 풀대궁 하나라도 자기의 몸만큼 아껴라.
아홉,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그려라. 그리는 그림마다가 깨어 있는 눈에 대한 찬송이 되게 하라.
열, 시대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도 말며, 시대에 맞는 작품을 만들려고 애쓰지도 마라.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시대이다.
169쪽
진정한 작가라면 진정한 화가와도 통한다. 왜냐하면, 둘 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음으로 보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법이 다를 뿐이지 본질적으로 같다.
프레데릭 프랑크의 이 책은 내게 진정한 글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그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아마도 내 나이 백 스무 살쯤에 나의 글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질 것이다.
진정한 문장의 힘은 '문장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 현란하고 많은 어휘보다는 평범하고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세상을 진정으로 참으로 보지 않는 이가 쓴 글은 기껏해야 달콤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마음에서 우러난 참말을 써야 한다. 진정한 작가라면 그 '참말'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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