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전쟁과 평화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박형규 (옮긴이) | 문학동네 | 2017년

신, 양심, 선, 형제애 - 톨스토이의 고뇌

2권 1부는 패전을 한 후 군인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온 모습을 그린다. 참전을 안 했던 인물, 피예르의 근황도 나온다. 자기 스스로 예견했던, 결혼생활의 불행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 제목은 전쟁과 평화인데, 정작 등장인물들이 끝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은 전쟁도 평화도 아니다. 행복과 사랑에 대해 끝없이 사색한다.

다 부질없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러면서 과연 살면서 가장 가치가 있고 의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자기 스스로한테 묻는다.

젊은이들은 자기 사랑을 찾아, 행복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한다. 결혼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나타샤도 있고, 결혼을 잘못 했다고 후회하는 피에르도 있다. 자기의 이상형을 찾았다고 여기며 청혼하는 이들도 있다.

 

사랑의 짝대기가 계속 오간다. 청혼하고 거절당하고 낙담하고 분노하고 그런다.

요즘 보는 통속극 일일 드라마랑 거의 같은 이야기다. 돈, 결혼, 바람, 질투, 도박, 결투, 사랑, 연애, 출세, 소망, 꿈.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러시아 상류사회를 주로 묘사하고 있고, 따라서 결혼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돈과 신분 상승의 길이고, 행복의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요소다.

2권 2부. 아내와 헤어진 후 떠난 여행길 역참에서 피예르는 고민과 사색에 빠진다.

 

"무엇이 좋은 것인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나는 대체 무엇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가? 만물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인가?"

죽음, 절망, 불행의 끝에서 나오는 의문에 대한 답은 그 역참에서 만난, 늙은 프리메이슨한테서 제시된다. 

"자기 안의 존재를 정화하고 갱신해야 하며, 인식하기 전에 믿고, 스스로를 완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 마음속에는 양심이라고 불리는 하느님의 빛이 있는 것입니다."

신, 양심, 도덕적 삶. 톨스토이는 이를 단순히 소설 속에서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행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한테 외면당하고 쓸쓸하게, 혹은 열광 속에서 자신이 발견한 진리 속에서 죽는다.

현실에서 돈 있으면 신으로 대접을 받지만 돈 없으면 시체 취급을 받는다. 진리 따위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애써 양심이니 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누군가의 부는 그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팩트체크를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이를 한 노인이 피예르에게 한다.

 

"당신은 재산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썼습니까? 이웃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몇만이나 되는 당신의 농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들을 도와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신은 방탕한 생활을 위해 그들의 노고를 이용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운이 좋아서 재능을 발휘해서 이 많은 부를 획득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 집착하고 고집하고 절대진리로 믿겠지만, 결국 그 돈은 그 누군가의 노력이며 희생임을 부정할 수는 '양심상의 사실'인 것이다.

죽어라 일한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난을 면하는 정도고 그럭저럭 생황을 하는 수준이다. 재능이 있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재능으로 만든 유형 무형의 서비스가 대단히 많이 팔려야 남들이 부러워 하는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소설 써서 돈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벌고 싶은가? 롤링 여사처럼 되고 싶다고? 당신이 해리포터 같은 소설을 쓴다고 해도 곧바로 갑부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게 출판되어 책으로 나오고 많이 팔려야, 비로소 부자가 된다. 절대 다수의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불행하게도, 돈 자체는 행복이 아니다. 마치 책을 아무리 많이 사 놓았어도 읽지 않은 것처럼, 그 돈이 쓰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게다가 돈이 잘못 쓰이면 방탕과 자만에 빠지기 쉽다. 사기나 도둑질로 어마어마한 돈을 거뭐쥔 자들이 그 돈을 어디에 썼다고 하는가. 유흥비. 그 돈으로 책을 사서 읽거나 누군가를 돕는 데 썼다는 얘기는 소설에서조차 잘 나오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말하는 것은 착한 일을 해서 인류가 형제애에 도달하자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게 줄였나? 결국 이거다. 쓸데없이 깊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비평서 해설서 아무리 파 봐야 결국 이거다.

다시 소설로 되돌아가면,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고 신을 믿는 쪽으로 삶의 진로를 바꾼다. 갱생과 덕행의 길로 들어선다. 무신론자가 종교라는 달콤한 사탕을 열심히 빨아댄다. 이렇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이 글을 쓰는 나는, 불가지론자다.

하지만 어리숙하고 실무를 모르는 피예르는 실무자인 관리인한테 속아서 자신이 농노, 농민들한테 큰나큰 선을 행한 것으로 착각한다. 실제로는 착취가 더욱 가중되었다.

톨스토이 자신이 실패했던 농민생활 개선을 피예르와 안드레이의 대화로 낱낱이 가혹하게 자기 비판한다. 지금에서는 계몽주의가 구닥다리지만 당시에는 꽤나 혁명적이었구나 싶다.

안드레이는 행복을 가족한테서 찾는다. 그토록 추구했던 명예는 되도록 자제한다. 태어난 아들과 곁에 있는 아버지와 여동생에 충실하고 다시는 전장에 안 나가려고 한다.

그렇다고 안드레이가 고민이 없는 건 또 아니다. "내 눈앞에 소중한 사람, 나와 굳게 맺어진 사람이 있고, 나는 그 존재에게 죄를 지었다고 느껴 그것을 보상하고 싶은데, 갑자기 그 존재가 고민하고 번민하다가 사라져버려... 어째서일까?"

2부 끝에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서로 강화를 맺는다. 서로 적이었다가 이렇게 갑자기 동맹이 되어, 서로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하고 또 상대방 군사에게도 훈장을 준다.

병사들은 병에 시달리고 굶주리고 있는데, 황제라는 것들은 이러고 있었다. 로스토프는 그동안 품었던 러시아 황제에 대한 환상과 꿈이 깨진다.

2권 3부

그동안 러시아의 동맹이었던 오스트리아를, 러시아와 프랑스 연합군이 쳐들어간다.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는 1세다. 농노 해방령을 발표한 2세로 잘못 알고 있었다. 뭐 내가 러시아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러시아 제국 근대화 시대다. 이제 관직은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얻을 수 있고 공짜로 부려먹던 농노는 해방시켜야 한다.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로마노프, 즉 알렉산드르 1세는 스페란스키 개혁이라는 걸 한다. 이번 3부에서 그 스페란스키를 묘사하고 있다. 주요 인물들 중 한 명인 안드레이가 그를 만난다.

알렉산드르 1세는 이 소설 '전쟁과 평화' 후반부에 나오는, 나폴레온 격퇴 전쟁, 이른바 '조국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두어서 러시아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인물이다. 어쩐지 무슨 인신처럼 묘사되더니.

2권 4부

안드레이와 나타샤는 약혼한다. 가족, 자기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혼을 택한다. 안드레이와 나타샤의 사랑은 무척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다. 소설 후반부에 가면 정말이지 그렇다.

종교에의 몰두를 행복이라고 여기는 이도 있다. 안드레이의 여동생 마리야가 그렇다.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순례자의 길을 택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조카와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피예르는 우울에 빠져 지낸다. 세속의 즐거움과 기존의 습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간신히 종교단체 활동을 하는 중이다.

소설 내내 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질문에 저런 생각에 고민과 성찰을 하는 등장인물들의 독백을 읽을 수 있다. 계속 반성을 거듭하고 확고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사는 데 정답이 없듯.

2권 5부

소설 '전쟁과 폏화'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는 피예르다. 작가 톨스토이를 가장 많이 닮았다. 피예르는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 혹은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전쟁과 평화'에 딱히 주인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한 명을 뽑으라면 이 피예르다.

피예르는 종교단체 소속자들의 위선에 질렸고 환락에 열중하며 그냥저냥 살아간다. 잡담, 독서, 음주의 연속이 삶에 빠져든다.

"'보잘것없는 것도 없고, 중요한 것도 없다, 다 마찬가지다. 그저 되도록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피예르는 생각했다."

당시에 멜랑콜리가 유행이었던 모습은, 코미디다. 실제로는 전혀 우울하지도 절망하지도 삶을 비관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척하고 또 그걸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나타샤는 바람둥이 아나톨한테 홀딱 반해서 안드레이와 파혼하고 야반도주를 하려 한다. 이런 걸 보면, 그 어떤 인물도 이상형으로 그리거나 완벽한 인물로 묘사되진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알고서 읽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여러 오해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획득되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피에르와 나타샤의 연결 감정을 잘 마련해 두었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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