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 체코 대표작가의 반려동물 에세이
카렐 차페크 짓고 그림
요세프 차페크 그림
신소희 옮김 
유유 펴냄
2021년 발행
ISBN 9791189683801

유머와 철학의 문장

아무리 생각해도 체코어를 번역한 것 같지 않아서, 혹시 원문이 영어인가 싶었다. 영어원서  I Had a Dog and a Cat을 발견했다. 조사해 보니까, 영어로 번역한 사람은 Marie and Robert Weatherall다. 부부다. 

이 책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는 체코어 원문이 아니라 영어 번역을 우리말로 옮긴 중역본이다.

제목과 달리, 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고 고양이 이야기는 거의 끝에 조금 있다. 반반치킨처럼 정확히 반반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양이 이야기를 많이 바라는 분이라면 기대치를 낮춰라. 

분량이 이백여 쪽이라서 많지 않아 반나절이면 통독할 수 있었다. 애완동물 사육 금지 빌라 월세집 거실 창가에서 햇살을 받으며 반려동물 수필을 읽으면서 혼자서 소리 안 내며 웃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특이하게도, 옮긴이의 말이 책 맨 앞에 있다. 대개 거의 맨 끝에 둔다. 해설 및 소개를 겸하고 있어서 나름 괜찮긴 하지만, 다 읽고 정리하는 기분으로 옮긴이의 말을 나중에 읽다면 알아서 건너뛰고 읽으면 되겠다.

카렐 차페크는 유머와 철학이 절묘하게 배합된 문장을 구사한다. 글 읽으면서 긴장감 풀고 웃고 있으면 갑자기 묵직한 사유 한 방이 서커펀치처럼 훅 들어온다.

"모든 강아지는 똑같이 행동하지만 그럼에도 각자 성격이 다르다. 종의 유사성은 영원하지만 모든 생물체의 다양성은 무한한 것이다." 75쪽.

"배우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수 없고 시인이 자기만족만을 위해 시를 쓸 수 없고 화가가 자기 벽에 걸어 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듯이. 우리가 진지하게 임하는 모든 활동에는 다른 이의, 친애하는 인류 전체의 흥미와 참여를 필요로 하는 확고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순전히 그런 갈망 때문에 파멸하기도 한다." 178쪽.

"상호 신뢰는 인류 문명보다 오래된 체제이며 그로 인해 인류는 인류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신뢰 상태를 깨뜨린다면 인류가 만든 세상은 야생동물의 세계가 되고 말리라." 207쪽.

개와 고양이가 자꾸만 생산을 많이 해서 작가가 곤란해 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 bird끼들 처치 곤란이라서 아주 미치겠다는 말을 빙빙 돌려서 우아하게 쓰고 있지만, 결국 그 소리다.

초반에 강아지가 너무 많아서 처리하는(죽이는) 이야기가 대놓고 나온다. 오늘날 관점에서는 분노할 일이지만 작가 집필 당시에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2025.8.19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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