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슬립
The Big Sleep (1939)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 북하우스 | 2004

직유의 천재, 졸릴 수 있다
챈들러 소설은 잘 안 읽혔다. 읽다가 포기한 것이 수차례다. 필립 말로의 매력에 한없이 빠진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걸 뭐 좋다고 읽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만만치 않게 많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문장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챈들러의 소설을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기상천외한 직유 표현 문장을 읽기 위해서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좋으냐 싫으냐가 결정된다. 하드보일드 소설 문체의 특징은 간결함인데, 이 작가는 그렇지 않다. 한없이 뭐뭐 처럼을 반복해 문장을 만들어 길게 만든다. 게다가 묘사가 시작되면 세세해서 읽다가 잠들기 일수다.
직유법을 쓰면 문장이 길어진다. "그녀는 '돌로 된 사람처럼'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문학적인 문장이 되거나 말장난 문장이 된다. "그녀는 번개같이 계단 밑을 향해 방을 가로지르더니 사슴처럼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런 문장인 것이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직유의 천재다. 수사법에서 직유법을 많이 쓰면 유치하고 문장이 길어지기 때문에 삼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정말 잘 쓸 수 있다면, 챈들러만큼 쓸 수 있다면 직유법을 남발해도 독자는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이 작가의 재미있는 직유 문장만 모아서 읽는 사람도 있다.
챈들러는 소설가들이 좋아하는 소설가다. 문장과 주제의식이 좋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문장은 읽는 맛이 있다. 대화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은유는 이렇게 쓰고 직유는 저렇게 쓰면 좋구나. 묘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소설을 쓰려는 이는 배울 것이 많다. 소설 끝에서 브랜디를 마신 것처럼 마음 속에 퍼지는 훈훈한 감동에 맛을 들이면 챈들러 중독자가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소설가들이 별다른 영감이나 격려를 받지 못한다. 복잡하고도 기이한 플롯 트릭의 재미만 있을 뿐 멋진 문장도 깊은 감동도 없다. 크리스티의 소설은 글로 쓰여진 만화 게임 오락이지 감동적인 문장 문예 작품이 아니다.
장편소설 '빅 슬립'은 에둘러 진실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탐정이 의뢰를 받은 사건은 가이거라는 협박범을 떼어내 달라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이 의뢰받은 것이 러스티 리건이라는 사람의 실종 사건이냐고 묻거나 그렇다고 확신한다. 나는 리건이란 사람 찾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결국 리건을 찾게 된다, 씁쓸하게. 마치 기사의 성배 찾기처럼 그토록 가까이에 있는 것을 모르고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다. 빅 슬립. 깊은 잠. 죽음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읽기에 지루해서 대충 빨리 읽었다. 이미 이야기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끝이 좋아서 결국 다 읽고나서 좋았다. 말과 행동은 냉정해 보이나 마음은 참 따스한 사립탐정, 필립 말로다.
단편만 주구장창 쓰다가 이미 쓴 단편소설의 아이디어를 몇 개 엮어서 장편소설을 처음 시도한 작가 레이먼드 첸들러는 어떻게든 분량을 늘려야 했고 스타일을 확립하고 싶었겠지. 그래서 도입한 직유는 재미와 지루함을 동시에 준다.
북하우스 박현주 번역 '빅 슬립' 전자책은 띄어쓰기 오류가 많다. 2025년 현재까지 아직도 안 고쳤다. 출판사에서 수정할 생각이 없는 듯.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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