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세트 - 전3권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민음사 펴냄
신곡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번역해 펴냈는데, 애써 민음사를 택한 이유는 순전히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 때문이다. 다른 출판사의 경우 삽화가 구스타프 도레다.
민음사 신곡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이 컬러로 들었다. 모습이 비슷해서 옷 색깔로 구분해서 본다. 단테는 붉은색, 베르길리우스는 파란색이다. 가끔씩 완성한 그림이 아닌 미완성 스케치도 보인다. 다 그리지 못하고 죽은 모양이다. 그래도 천국 갔을 거다, 블레이크 양반은. 나는 잘해 봐야 림보다. 세례를 못 받았으니까.
신곡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으려고 시도하지만 완독하는 사람이 드물다. 왜 이렇게 읽어내기 어려운가? 일단 서양 문화, 그것도 고대와 중세의 문학 지식이 없으면 생소한 이름과 낯선 단어의 나열에 무슨 암호문 읽는 기분이다. 주석을 읽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재미있게도, 게임 파이널판타지에 익숙한 사람이면 의외로 지옥편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그 게임에 나오는 괴물이 신곡의 지옥편에 나오니까. 케르베로스가 나오면 반가워서 춤을 추리라.
아, 그래도 신곡은 역시나 읽기 어렵다. 당신만 읽기 어려운 게 아니다. 번역자들조차 후기글에 읽기 너무 어려웠다고 호소할 정도니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읽기 쉽게 하려고 소설처럼 풀어써낸 번역본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번역하면서 운율이 사라진 마당에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서사시라고 하지만 번역된 문장은 산문으로 읽힌다.
민음사 번역본은 원작 서사시의 형태를 유지하여 3행씩 끊어서 편집되었다. 주석은 각주가 아닌 미주라서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를 반복해야 한다.
세트로 사면 노트 한 권을 준다.
첫 부분 독해를 해 보자.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지옥편 7쪽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별뜻이 없는데, 글을 쓸 당시 시대상황에 맞춰 보면 다른 의미로 풀이된다. 중세 성경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읽어내야 한다.
인생길 반 고비? 35살을 뜻한다. 성경 시편 90장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라고 나온다. 70 나누기 2는 35다. 여기서 길은 그냥 길이 아니라 하느님 천국으로 가는 도중의 순례길이다. 중세 시대에는 현세의 삶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여행 중 일부로 생각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내세를 산다고 믿었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믿거나 말거나 신곡의 재미는 지옥이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편 26쬭
지옥문이 말을 한다. 정확히는 문 꼭대기에 쓰여 있는 글이지만 마치 지옥문이 들어오는 자들한테는 하는 말처럼 들린다. 지옥문다운 말이다. 멋진 지옥문이다.
종교적 색채 때문에 이 책을 안 읽으려는 사람도 있으려나. 오히려 내 주변에 세례 받은 예수쟁이들치고 신곡 읽은 사람이 드물다. 천주교 교도 포함이다. 어딜 빠져나가려고. 성경도 제대로 통독한 사람이 드문데 신곡에 팡세에 실낙원까지 읽어내는 교양을 그대들한테 바라지 않는다. 실낙원은 물론 일본소설이 아니라 존 밀턴의 서사시를 말한다. 나도 네 권 다 제대로 읽진 못했다. 읽기 어려운 책들이다.
교조적 독해라면, 이 책은 하나님 믿고 하나님 뵈러 가자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읽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게다가 신곡은 무신론자들한테 오히려 인기가 더 많은 듯 보인다. 특히, 지옥편.
내 영혼이 괴로울 때마다 '신곡'을 펼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지성과 사랑임을 확인한다.
나는 그 깊숙한 곳에서 보았다.
우주의 조각조각 흩어진 것이
한 권의 책 속에 사랑으로 묶인 것을.
천국편 290쪽
단테의 신곡은 중세를 완성하고 근대를 연 문학작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읽어 보면, 서양 고대 철학 신앙부터 중세 세계관을 충실하게 모두 서사시에 담아내고 있다. 중세의 완성은 곧 근대의 시작이다.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완벽하게 건축하려는 이 작품에서 단테가 살던 현실의 불완전함이 끼어 있다.
서양문화는 기독교 이전의 그리스/로마 문화와의 융합을 무척 고심했다. 그토록 이질적인 문화를 억지로 기독교에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가끔 보면 폭력적이고 권력적이며 독선적이다. 애초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유일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인 듯 보인다. 변방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어느덧 중심을 차지하고는 그 전 종교와 철학과 신화를 모조리 흡수해서 잡아먹는 꼴이라니.
단테는 신곡에서 그동안 서구가 구축했던 철학, 신화, 문학, 역사, 종교를 기독교로 통합하고 정리한다. 이는 중세의 완성이자 근대의 시작이다. 세계 인식에서 신을 떠나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잡는 인본주의는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완성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기묘한 아이러니다. 졸업이 입학인 것처럼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2015.01.17
"당신의 책을 찾도록 만들었습니다."(지옥편 12쪽) 번역이 영어 직역투네. 뭘까. 일러두기에 보니까 영어 번역판을 참고했다고. 단순히 참고한 게 아니라 아예 영문판을 번역한 게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이 2회독인데, 확실히 읽기 수월하다. 열린책들 김운찬 번역과 함께 읽는다.
2015.07.16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명은 슬프다] 권경인 - 사물과 자연 풍경에서 이끌어 낸 잠언 (0) | 2022.09.03 |
---|---|
[신곡] 단테 청목 - 서사시의 느낌을 살린 신승희 번역 (0) | 2022.09.03 |
[눈사람] 최승호 - 눈처럼 내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언어 (0) | 2022.09.03 |
[전쟁교본] 베르톨트 브레히트 - 전쟁을 비웃는 풍자시 (0) | 2022.09.01 |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김기찬의 흑백사진 (0) | 2022.08.25 |
[반성] 김영승 - 고학력 백수의 서정시 (0) | 2022.08.02 |
단테 [신곡] 김운찬 열린책들 - 지옥, 연옥, 천국 묘사 서사시 (0) | 2022.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