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유명우 옮김/해문출판사
박순녀 옮김/동서문화사
The A.B.C. Murders (1936)
예고 연쇄 살인 사건. 푸아로에게 도전장(편지)이 날아든다. "이달 21일 앤도버를 주목하십시오. - ABC" 알파벳 순서대로 살인이 일어난다. A로 시작하는 장소에서 A로 시작하는 사람이 죽는다. B가 터지고 C가 실현된다. D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ABC 씨가 잡히는데 푸아로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헤이스팅스의 1인칭 서술과 ABC 씨의 모습을 보여주는 3인칭 시점이 교차된다. 읽기 시작하면 애 여사 스타일에서 벗어난 사이코패스 범죄려니 싶다. 절대 아니지. 이런 식은 영국적이지 않다. 다 읽고나면, 전형적인 애 여사님의 영국 추리소설이다. 서술 방식이 독자를 속이기 위한 장치임을 알아채는 것은 소설을 다 읽어서야 가능하다.
예고살인이 착착 진행되면서 범죄자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긴장감과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구성력이 훌륭하다. 푸아로가 이미 일어난 살인사건 관계자들을 수사팀으로 꾸려가면서 범인을 잡아낸다. 역시나 다들 모여라 하고서는 "범인은 너야!" 하고 꼭 찍어내는, 그 유명한 '푸아로 피날레'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중학생 때 이 소설을 처음 읽었다. 다시 읽으니, 중간쯤 읽었을 때 범인이 기억났다. 당시에는 범인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라서 뒤쪽을 읽었고 그래도 왜 범인인지 이해가 안 되서 다시 앞으로 가서 읽고 역시 또 궁금해서 다시 뒤쪽을 읽는, 이상한 독서였다.
이제 크리스티 반전 스타일을 워낙 잘 알아서 순진하게 속지 않는다. 독자가 범인을 도저히 예상하지 못하게 하려면 범인을 눈앞이 아니라 아예 코밑에 배치해야 한다. 그러면서 독자의 눈길을 명백하게 잘 보이는 쪽으로 몰아야 한다. 이러면 독자는 범인과 직접 관련된 것에 집중해서 읽게 되고 결정적 힌트는 대충 빨리 읽거나 건너뛴다.
다음에 읽을 '메소포타미아의 살인'도 중학생 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범인을 알고 읽어도 재미있는 것은 뭘까. 정답을 못 맞히게 문제를 만들어내는 글쓰기의 재미를 엿보는 재미다. 재미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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