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의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메소포타미아의 죽음
유명우 옮김/해문출판사
Murder in Mesopotamia (1936)
메소포타미아 유적 발굴 현장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이다. 수수께끼 풀이식 추리소설이다. '연기의 신' 같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지낸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레더런 간호사가 수기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다. 헤이스팅스 대위와 재프 경감은 등장하지 않는다. 코믹 삼인방의 치고받기 개그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아쉽다. 푸아로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 등장한다. 사건 현장에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살인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를 받고서 가기 때문에 100쪽 넘게 읽어서야 푸아로를 만날 수 있다.
간호사의 눈에 비친 푸아로의 모습은 이렇다. "키는 165센티미터쯤 되고, 인상이 기묘하고 몸집이 통통했으며 몹시 눈에 띄는 콧수염에 달걀 같은 두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희극에 나오는 이발사 같았다!"(127쪽)
애 여사는 일부러 푸아로를 셜록 홈즈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푸아로는 증거 수집과 관찰을 통한 물적 추리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애 여사는 이런 방식의 추리를 쓰면 독자가 함정에 빠지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진술과 외모에서 드러나는 심적 추리에 집중한다.
모두 살인할 동기가 있다. 모두 의심해야 한다. 푸아로는 소거법을 이용한다. 일어난 사건과 남겨진 증거에 제대로 맞는지를 하나씩 따지면서 범인을 찾아낸다. 그렇게 해서 멋진 마무리를 해내는 '푸아로 피날레'는 실제 현실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가상 소설에서는 극적 효과가 뛰어나니까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모인 사람들 중에 살인자가 있는데, 자기가 머리 좋다고 뽐내기 위해 목숨을 걸면서까지 범인을 그 자리에서 밝히겠는가. 한 번 죽이고 두 번 죽이고 세 번 죽인 살인자가 가만있겠는가.
이 작품의 밀실 트릭은 알고 나면 화가 나서 근처에 있는 창문을 부셔버리고 싶을 것이다. 밀실 트릭 대부분이 단순하지만 그걸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콜럼버스의 달걀 같다. 알고 나면 쉽지. 그전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나는 이 책을 예전에 읽었었고 해당 트릭을 기억하고 읽었다. 우리 집 창문은 멀쩡하다. 햇살이 따사롭다.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밑도 끝도 없는 심연의 심리 묘사인 '도스토옙스키'식이 아니라 '실용 심리학'이다. 폐쇄적인 집단인 유적 발굴단에 매력적인 미인이 들어온다. 어떻게 될까? 발굴단장의 아내는 주변 남자들을 유혹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이내 차버리는 '치명적인 여인'이다. 주변 여자들의 질투가 하늘 높이 치솟는다.
정교하게 만든 수수께끼 정통 추리물이다. 비스말라히 아르 라흐만 아르 라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알라신의 이름으로. 사건 재구성으로 과거를 복원하는, 범죄 추리의 고고학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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