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마리 아기 돼지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회상속의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펴냄

Five Little Pigs (1943년) 영국판
Murder in Retrospect (1942년) 미국판

‘다섯 마리 아기 돼지’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 예외적인 작법을 썼다. 애증의 거미줄 속에 살인 수수께끼가 있고 푸아로가 짜잔 놀라운 반전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여전하지만, 과거의 사건을 용의자들의 진술만으로 재구성하여 진실을 밝혀낸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이 책 제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동요를 이야기의 뼈대로 차용해서 그렇게 붙인 모양인데, 이야기 전개와 별 상관은 없다. 애써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고작해야 유력한 용의자가 다섯 명이라는 점 정도다. 미국판/해문 제목이 소설 내용과 잘 어울린다. '회상 속의 살인(Murder in Retrospect)'이다.

별다른 트릭이 없고 독살한 것이 뻔히 드러난 판국에서 단서는 오로지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던 용의자들의 진술뿐이다. 그것도 16년이 지난 일을 기억해내며 자기 입장에서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진술에서 과연 살인범을 잡아낼 수 있을까.

같은 살인 사건이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진술된다. 이 설정을 천재적으로 써내려간 작가가 있었으니,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다. 단편 ‘덤불 속’이다. 영화 ‘라쇼몽’으로 더 잘 알려졌다. 애 여사의 이 작품도 같은 설정이라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읽어 보니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문학의 천재는 아니었다. 인물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지 않고, 묘사력이 훌륭해서 읽으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은 문장력도 없다. 정교한 추리게임 오락구조물을 만드는 데 천재였을 뿐이다. 


이 소설의 후반부 반전에 반전은 놀라웠다. 기교의 반전이 아니라 심리의 반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살인자는 살인으로 심리적으로는 자신을 죽이는 비극에 처한다.

 

 

전자책 표지에는 종이책과 달리 한글 번역 제목이 크게 나오고 영어 원서 제목이 없다.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다시 읽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야기 공학이 멋지다. 세세하게 가공한 솜씨는 역시 미스터리 소설의 장인임을 증명한다. 케롤라인 크레일의 모습을 그려내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인물의 깊은 감정까지는 나아가지 않으며 중점적으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추리소설 범죄 수수께끼 장르 틀 안에서 자제한다.

 

이야기 기술력은 '예술 문학'이 아니다. '기술'이다. 반전에 반전을 만들면서 세세한 것들이 다 들어맞아서 결론을 제시하는 기교다. 바로 이것이 애 여사의 매력이다.

 

추리소설은 글의 목적이 범죄 수수께끼다. 따라서 인물의 감정을 깊게 파고들거나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이 목표 지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차적이다. 범죄 관련 심리적 상태까지가 묘사의 한계다. 더는 나아가지 않는다. 벗어나기 시작하면 예술이고 문학이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아무도 '추리소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범죄는 있으나 수수께끼 제시와 그 해결이 글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역이 있어서 출판사에 제보했다. '배다른 여동생'이라고 나오는데,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이다. 본문에도 나온다. "두 사람은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달라서요."

 

전자책에 오탈자가 전혀 없었다. 놀랐다. 기존 종이책에 오탈자가 많아서 욕을 먹더니 개선한 모양이다.

 

2021.11.01.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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