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리고 두려움 2
코넬 울리치 지음
하현길 옮김
시공사 펴냄
2005년 12월 발행
절판
전자책 없음


누아르 소설가 코넬 울리치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편집자가 붙인 제목처럼 밤이 배경이고 인물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하지 마라. 블랙커피 같은 분위기와 시간 압박의 긴장감을 즐기라.


:: 색다른 사건

재즈 밴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밴드 멤버 중에 한 사람이 범인인데... 어떻게 잡을 것인가? 

논리적 추리와 기발한 트릭이 나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야기 앞 부분에 그런 분위기를 풍겼지만 말이다.

함정을 파서 범인(딱히 동기는 없고 그냥 미쳤다.)을 잡는 식이었다. 살인 욕구를 충동질하는 음악으로. 


:: 유리 눈알을 추적하다

강등 당한 경찰 아버지를 위해 실적 올릴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아들 이야기다.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서 청소년 소설 분위기다.

물물교환으로 우연히 얻게 된 유리 눈알을 단서로 범인을 잡으려 한다. 형사 아들답게 재치와 끈기가 있다. 미행도 훌륭히 해낸다.

마침내 그 유리 눈알의 주인/시체를 발견하고, 살인범과 마주한 소년. 이때 아버지가 도착하고 사건은 마무리된다.

짧은 영화 한 편 같다.



:: 죽음을 부르는 무대

공연 중에 갑자기 비틀거리다가 죽은 무희. 우연히 공연을 보던 경찰이 쓰러진 여자를 받아내고 조사에 착수한다. 온 몸에 금박 페인트를 칠하고 지우지 않은 것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는데...

제목만 보고 뭔가 무대 장치 트릭일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 하나를 위한 세 건

날마다 같은 신문대에서 같은 신문을 사서 읽던 사람이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다. 수사 중에 진범을 잡았으나 위의 압력으로 풀어줘야 했던 형사. 이제 경찰을 그만두고 오직 이 범인을 추적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법으로 안 되는, 정의 실현을 위해 집요하게 매달리는 형사 캐릭터다. 

마무리는 운, 혹은 운명적으로 처리되었다. 아쉽지만, 작가 스타일이다. 어쩔 수 없다.


:: 죽음의 장미

부잣집 영애가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자기 스스로 목숨을 걸고 미끼가 된다. 범인은 공습 경보 등화관제에 살인 충동이 일어난다. 미리 알아둔 경보 시각이 다가오고, 자신 앞에 있는 이 남자는 분명 범인인 듯한데...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식으로 전개된다. 범인이라고는 절대 생각 안 했던 사람이다. 역시 운으로 마무리된다. 어찌어찌 해서 범인은 잡히고, 그자는 최후를 맞이한다.



:: 뉴욕 블루스

코넬 울리치의 솜씨가 최고조에 이른 단편소설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남자가 경찰이 와서 자신을 체포해 가길 두려움 속에서 기다린다. 끝에 반전이 있다. 놀라움과 슬픔이, 깨달음과 죽음이 동시에. "예전에 사랑했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로군. 난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데, 당신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359p

작가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문장들이 나온다. 호텔에 처박혀 공포에 찌들린 인간. '그 사람은 결코 방에서 나오는 법이 없고, 식사도 방으로 배달시켜 먹고, 항상 문을 잠가놓고 지낸대.'(321p) 작가가 살던 당시 1960년대 뉴욕 도시 풍경을 그려냈다. 

"인생이란, 한발 한발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이다. 정신이 산 채로 매장되는 것이며, 밝은 곳으로 기어 나오려고 애를 쓸 때마다 그 위에 새롭게 묘지의 흙을 덮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죽음에서는, 결코 완전히 죽을 수 없다." 357~358p

울리치는 그렇게 죽음, 운명, 밤, 두려움에 집착해서 소설을 썼다.

2024.07.12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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