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현대문학 펴냄

이 소설은 서로 자기가 죽였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진행한다. 도대체 누가 죽였는지 끝에서 힌트만 줄 뿐 명확히 말은 안 해줘서 대개들 처음부터 다시 또 읽게 된다. 범인이 누군지 알기 어려웠다. 검색에 가면 나오는데, 애써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다만, 나처럼 범인이 미와코라고 생각한 분도 있어서 내심 반가웠다는 점은 말해 둬야겠다.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고작 지문 하나와 머릿속 추리로 과연 범인으로 지목해서 체포하고 재판에 넘겨 유죄를 받아낼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가능성이 낮다. 증거가 충분하지 못해 유죄로 확증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추리소설에서는 되도록 범인이 자백하게 한다. 그래서 깔끔하게 해결된다. 안 그러면 그저 탐정의 생각일 뿐이지 않은가.
 
애증으로 얽힌 인간관계 거미줄 속에서 독을 품은 사람들. 살인미수죄를 적용한다면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약혼자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약혼자가 범인이었다는 반전을 기대했다. 결혼하려는 남자의 과거를 알아버려서 말이다. 그런데 가가 형사의 추리로는 그런 결말이 안 나온다.
 
독자의 주의를 캡슐의 숫자에 몰게 해 놓고 끝에서 메롱이다. 크리스티의 수법을 그대로 따다 썼다. 약 이름도 똑같다.
 
1인칭 시점으로 각 용의자들이 벗갈아 이야기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니까 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각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 중에 겹치는 것이 있다면 진실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허나 공모자가 있다면 이도 의심스럽다. 서로 말을 맞춰 거짓말을 하면 되니까. 이같은 안개 속에서 탐정 가가 교이치로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범인이 누구냐는 진실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매력은 범인잡기도 트릭도 아니다. 물론 추리소설은 그 재미로 독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다. 당신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못된 작가다. 미와코는 명백히 범인이 아니다. 하지만 내 양심의 심장을 찌르는 등장인물은 미와코였다.
 
다카히로를 통해 서술되는 미와코의 모습에서, 나는 이 작가의 능숙한 솜씨에 또 한 번 항복하고 말았다. "미와코에게 중요한 건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약혼자를 죽인 범인을 자신이 밝혀냈다, 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성취함으로써 평범하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371쪽

묘한 공감이랄까.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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