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책 추천

커튼

애거서 크리스티

공보경

황금가지

2015년 푸아로 셀렉션 판

 

★★★★★

추천도서

추리소설 걸작

푸아로 시리즈 마지막 사건

탐정소설 규칙 세 가지를 어긴 작품

 

 

"벨을 울려 커튼을 내리자." 279쪽 커튼을 내린다는 말은 연극의 종료를 뜻한다. 결국 푸아로 시리즈의 마지막, 곧 주인공의 죽음이다. 책 제목 커튼만으로는 알기 힘들지만.

오랜 시간 푸아로 시리즈를 읽어 온 독자한테 '커튼'은 무척 안쓰러운 소설이다. 푸아로의 회색 뇌세포는 여전히 잘 돌아가지만 신체는 이제 다 고장난 기계라서 이미 끝이 보이고 있다. 또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으니.

 

 

푸아로 시리즈의 시작과 끝은 '스타일스 저택'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시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형적인 미스터리 세팅이었고, 끝은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스타일이었다.

끝에서야 범인을 알 수 있다. 푸아로 마지막 사건 소설 '커튼'은 탐정소설의 일반적인 규칙으로 이것 하나만 지키고 나머지는 죄다 파괴해 버린다. 

첫째, 탐정이 범인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한테는 끝까지 누군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 누구한테도 말해주지 않는다. 독자한테는 물론이다.

둘째, 탐정이 범인을 죽인다. 탐정이 살인자다. 일반적인 경우, 탐정은 범인을 발견하거나 체포는 할 수 있어도 자신이 직접 범인을 죽이지 않는다. 

셋쩨, 탐정이 자살한다. 탐정이 자살하는 탐정소설은 거의 없다. 독자는 탐정의 자살 혹음 죽음을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네 번째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걸작 소설들이 그렇듯, 아주 맨 마지막에서야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는 식의 이야기 설계 솜씨는 여전히 경이로웠다. 추리소설의 최상극 지점을 찍어 버렸고 이후에 나온 그 어떤 추리소설도 이만큼 절묘한 솜씨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완벽한 작품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라, 좀 억지다 싶은 부분이 있다. 아무도 없을 때 총을 그 사람의 화장대에 두어서 그 사람의 총으로 속였다는데, 너무 운이 좋다. 다른 사람이 그 총을 목격하고 그 사람한테 물어 보지 않았을까. 왜 총을 그렇게 보이게 두었냐고. 소설은 소설이니까.

 

2021.11.15.

 

내가 이 소설을 몇 번째로 읽었는지 알려면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처음에는 해문에서 펴낸 하드커버로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는데, 표지가 간신히 붙어 있었다. 다음에는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에서 나온 것으로 읽은 듯 하다, 2014년쯤에. 이번 세 번째로는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으로 펴낸 책으로 읽었다. 2018년.

 


4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쉽게도 나는 추리소설 '커튼'의 범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트릭도 어느 정도는 생각이 났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이 아니라 작가의 입장에서 읽게 되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과연 범인을 최대한 모르게 하면서 힌트를 어떻게 뿌리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에 짜놓은 플롯과 트릭은 워낙 복잡해서, 설명을 다 읽은 후에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커튼'은 그나마 다른 작품에 비해서 덜 복잡한 편이다.

 

이 글에서 애써 그 트릭과 전개과정을 분석하고 설명할 마음은 없다. 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재미는 바로 그 수수께끼, 거의 기적에 가까운 범죄 수법에 있기 때문이다. 문장은 평범하고 인물 묘사는 대충임에도 그 신기에 가까운 범죄 트릭은 최고 수준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커튼'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를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했다. 소설에서도 책 '오셀로'를 등장시키고 종종 언급한다.

 

그러니까 살인이나 자살을 직접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보다 한층 교활하게 살인이나 자살을 하도록 부추기는 범인을 등장시킨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엄청난 충격이다. 기존 추리소설의 일반 규칙을 다 배반해 버리다니! 추리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거의 하지 않는 짓을 셋이나 해 버린다.

 

첫째, 탐정이 이미 살인범이 누구인지 안다. 푸아로는 헤이스팅스한테 그렇다고 말하면서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정작 안 알려준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식으로 독자를 약올린다.

 

둘째, 탐정이 살인범을 살인한다. 가장 놀라웠다. 살인을 하는 탐정이라니.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감되어 있긴 했다.

 

셋째, 탐정이 자살한다. 탐정은 시리즈를 잇기 위해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다고? 소설가가 자기 밥줄을 끊는 꼴이다.

 

'커튼'의 영어 원서 제목은 Curtain: Poirot's Last Case다. 푸아로의 '마지막' 사건이다. 번역 제목에는 부제인 이 마지막 사건을 안 써서 우리나라 독자는 종종 손해를 보기도 한다.

 

'커튼'이 푸아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책이라면,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는 가장 나중에 읽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그저 제목 '커튼'만 보고 덥썩 집어 읽었다가 쏟아지는 다른 소설의 스포일러와 푸아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정신이 어찔해지는 것이다.

 

 

푸아로가 처음 등장하는 소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과 'ABC살인 사건'과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읽은 다음에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안 그러면 이 책 '커튼'을 읽다가 지난 책들의 범인과 수법을 알게 되니까.

 

추리소설은 한 번 읽으면 다시는 안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범인을 알고 그 수법까지 안다면, 읽는 재미가 없으니까. 추리소설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여러 번 읽겠지만 독자로서의 재미는 거의 맛볼 수 없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이들한테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언제나 새 책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범인도 수법도 다 잊어 버렸을 테니. 망각의 축복이어라!

 

하여 이 책 '커튼'을 처음 읽는 사람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그 사람은 아마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바로 당신이겠지.

 

2018.09.04.

 

커튼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애거서 크리스티 커튼 - 추리소설의 근본문제 정면 돌파하기

애거서 크리스티는 '푸아로가 죽는 소설'을 미리 써놓았다. 발표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한다. 짐작하기로는 아서 코난 도일처럼 자신보다 자기 창조물이 더 인기 높은 게 싫었을 것이다. 또 그토록 오래 추리소설을 쓸 거라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커튼'은 '푸아로의 퇴장'으로 추리소설의 근본문제를 정면 돌파한다. 범죄소설은 수수께끼 자문자답 살인 자살의 감옥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탈옥을 감행한다. 모든 규칙을 깬다. 탐정이 살인하고 자백하고 자살한다. 증거 없는 추리로 정의를 실현한다.

이 소설의 범죄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를 닮았다. 자신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범행을 하도록 부추긴다. 타인의 감정을 이용하고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게 조작해서 그들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게 유도한다. 

스타일즈 저택에서 시작한 푸아로의 살인범 사냥은 스타일즈 저택에서 끝났다. 허구의 인물 에르퀼 푸아로의 죽음은 실제의 신문 '뉴욕 타임스' 부고 기사로 실린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트릭의 반전 기술력을 최고로 발휘했다. 추천한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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