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0년 3월 발행

* 우연에 삶을 맡기고 싶은 충동
* 진정한 자유에 대한 의문

주성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뚜렷하게 갈라지듯, 폴 오스터의 소설도 독자들의 반응은 그렇게 양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 건, 둘 다 그 스타일과 개성이 워낙 강해서다. 그 때문에, 그 작품이 그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2000년 4월 17일에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을 읽고 실망했다. 다른 게 나오리라 여겼는데, 예전에 읽었던 그게 또 나온 거였다. 난 대충대충 모두 읽어 버리고 다시는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1년 9개월만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내내 소설에 빠져 들었다. 마지막 쪽까지 읽었다. [문 팰리스]를 읽었을 때 그 감동이 다시 찾아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허무.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소멸에 대한 갈망에 집착한다. 내가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자 하는 소망, 바로 그거다. 아니,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고 싶은, 내 삶을 우연에 맡기고 어떻게 되는지 결론을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건 도박꾼의 심정과 비슷하리라. 내 모든 걸 걸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 하는 것처럼.

폴 오스터의 소설에는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 같은 건 없다. 대신,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과정에 몰입하는 재미를 준다. 사건을 말하지만, 그 사건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한테 맡겨져 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서술해 놓는다. 사건을 전개시키지만, 그 사전 전개에 대한 필연을 독자한테 설명하거나 강요하진 않는다. 대부분 등장 인물의 임의적인 해석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우연의 음악]는 자동차 운전하기와 벽돌쌓기 이야기가 나온다. 무작정 계속 달리는 운전은 자유를,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얽매여 하루하루 벽돌을 쌓아 올리는 일은 구속을 뜻한다. 주인공 나쉬는 엄청난 유산 상속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딱히 할 일이 없자 무작정 차를 타고 달리는 일에 집착한다. 그건 절대 자유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돈은 점점 떨어지고 나쉬는 도박에 가진 돈을 몽땅 건다. 그러나 도박 빚만 불어나 버린다. 그 빚을 갚기 위해 하루하루 꼬박꼬박 벽을 쌓는다. 시간당 10달러짜리 일. 완전 구속이다.

이제야, 폴 오스터가 제2의 카프카, 새로운 실존주의 작가라 불리는 이유를 알 듯하다. 복권 당첨이나 어머어마한 유산 상속은 우리들이 종종 꿈꾸는 절대 자유다. 하지만, 그건 곧 사라져 버리고 그다지 자유롭지도 못하다. 오히려 더 불안하다. 자유가 박탈당하고 하루하루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일만 하니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 오히려 불안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구속은 진짜 구속일까. 삶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직장을 그만두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영 아니다. 쏟아지는 청구서들, 점점 나태해지는 생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덮치는 불안감. 다시 직장을 얻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항상 똑같은 일을 하고 매달 똑같은 월급을 받아 보라. 따분해서 죽을 지경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쇠사슬에 매여있는 기분이다.

나쉬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벽돌을 쌓아 올리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동시에 고립감에 빠지며, 마침내 광기에 사로잡힌다. 돌이켜 보니, 난 나쉬처럼 했다. 혼자서 책을 읽고 그 책들을 하나하나 쌓아올리고 그 읽은 기록을 남기면서 만족감에 스스로 도취되어 갔다. 동시에, 점점 더 높이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려고 했다.

최근 다시 책읽기에 불이 붙었다. 예전엔 이 일이 도대체 뭔지 모르고 시작했으나, 이번엔 분명히 알고 시작한다. 이 일은 명확히 미친 짓이다. 정확히 난 돌았다. 하지만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액셀러레이터는 있어도 브레이크는 없는 차에, 나는 타고 있다. 나쉬가 멈춰야 할 걸 알면서도 오히려 더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난 멈출 마음이 없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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