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민음사 펴냄

초반은 영국 고전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영국 중상류층의 모습을 깔끔하게 담아낸다. 다섯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고딕소설로 옮겨 가더니 이내 서서히 커진다. 결론은 뭔지 모르겠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구체적으로 잡히질 않았다. 왜 이야기를 이렇게 흐지부지 끝낼까.

작가는 뚜렷한 대답을 내놓거나 그럴싸한 이야기 전개 대신에 질문을 던진다. 독자를 상황에 던져 놓고, "자, 어떻게 하실래요?" 이런다. 읽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냉정하게 몰아넣는다. 소설이라서 감정 표현에 과장은 있지만 상황은 현실적이다. 결말도 그렇다.

시작은 평범하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한다. 큰 집을 산다. 아이를 많이 낳는다. 행복하게 산다. 문제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생긴다. 왜 그 전에는 임신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가 하필 다섯째 아이부터 갑자기 그런지는 설명이 없다. 그냥 갑자기 괴물 같은 아이가 태어난다. 여기서부터는 상황을 강조해서 표현한다.

임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매섭게 꼬집는다. 부부가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 보니까 기형아다. 왜 여자는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그런 아이를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는 왜 마녀 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모성애는 정상인 자녀한테만 배풀어야 하는가.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그 다섯째 아이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꼼꼼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려는 어머니, 어떻게든 아이를 부정하려는 아버지. 다섯째 아이의 존재가 행복한 가정을 뿔뿔히 흩어 놓는다. 불행의 원인은 바로 그 아이 때문인가?

도리스 레싱은 대답 대신 가족들의 반응을 보여준다. 보라! 가족 이데올로기는 거짓이다. 가족 사랑은 가짜다. 가족 구성원은 자기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어떻게 자기를 키운 부모를 카드빚 때문에 죽일 수 있는가. 죽일 수 있다. 그저 자기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독자는 이 이야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행복하고 화목하고 즐거운 우리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면으로 들어가서 물어 보라. 위선을 버리자. 진실을 보자. 서로 싸움박질하지 않는 집안은 없다. 부모가 재산이 많건 적건 자식들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부모의 사랑을 이용하려고만 드는 자식들은 얼마나 많은가. 자식을 편애하는 부모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시대와 장소의 차이는 있으나 가족 이데올로기의 정곡을 찌른다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핵심을 바로 찔러서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괴로운 독서였다. 추하고 냉혹한 진실을 직면했을 때 도망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문체가 단단하다. 견고하게 글을 쓴다. 장인의 솜씨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삭둑삭둑 베어내듯 거침없이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우스개를 살짝 얹고 쉰다. 귀엽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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