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열린책들
발매 2010.10.10.
당신은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읽고 무슨 기대를 했는가. 인간과 도롱뇽의 진지한 전쟁 이야기? '듄'에 필적하는 에스에프 서사극? 미안하다. 그런 거 이 책에 없다. 그럼 정체가 뭔가?
인류의 탐욕을 비웃는, 우스개 한마당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식민주의 등의 대립으로만 치닫는 근현대 시대에 '착한 도롱뇽'을 등장시킨 것은 인간의 어처구니없는 짓을 비웃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 보라. "세계는 금융 위기와 제국주의적 팽창, 한 치 앞으로 다가온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시대에 체코는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강대국이 아니었으니 피투성이 투쟁의 세계사에 휩쓸리기는 우리나라처럼 마찬가지였다.
카렐 차페크는 이 풍자소설로 부조리한 당시 세계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만화처럼 보여준다. 천연덕스럽게 각종 기사, 논문, 책을 꾸며낸다. 'Daily STAR'지의 여론 조사가 제일 웃겼다. 다음과 같다. "도롱뇽들에게는 당연히 영혼이 없다. 이런 점에서는 사람하고 닮았다." - G. B. 쇼 "그들에게는 섹스어필이 전혀 없다. 그러니 영혼이 있을 리 없다." - 메이 웨스트 "도롱뇽이면 뭐 어떤가. 마르크스주의자만 아니면 되지." - 쿠르트 후버
풍자에 힘을 쏟아 붓는 통에 등장인물간의 갈등 따윈 없다. 계속 이어지는 우스개를 킬킬대며 읽다보면 어느새 작가의 혼잣말에 이른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인류 최종장'을 서둘러 마감한다. 읽고 나면 잡스럽고 거대한 농담이 전부였음을 깨닫는다.
1936년 출간 당시 이 소설은 제국주의의 망상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강대국들에게 곱게 보이지 않았으리라. 노르웨이가 아무리 차페크를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해도 수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래서였지 않았을까. 1938년 뮌헨 조약으로 체코 국경 지대는 독일령이 된다. 차페크는 게슈타포가 자신을 잡으러 올 줄 알면서도 조국에 머문다. 그해 병으로 사망한다. 마침내 나치스가 체코를 점령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불을 뿜는다.
소설 '도롱뇽과의 전쟁'은 오늘날 우리에겐 우스꽝스러운 풍자로 보이나 작가에게는 긴박한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 체코와 자신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리라는 것을 예감하며 쓴 비가였으리라.
당신이 쓰는 글은 관심과 애정으로 현실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현실을 왜곡해서 자신을 만족시키는 글을 쓰거나 그런 책만 읽고 있지는 않은가. 현실의 불안에 깨어있기보다는 몽상의 평온에 잠들려 하는가.
문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차페크는 분명히 말했다. "현실에 무관심한 문학이나, 세계의 현 상황을 말과 생각이 가지는 힘만큼 열정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문학은 나의 것이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돈과 권력과 자기만족에 빠진 글을 생산하는 당신은 '도롱뇽과의 전쟁'에서 패하리라. 작가여, 깨어나라. 글쓰기로 절망에서 일어서라. 문장으로 현실과 싸워라.
현실을 깨우기 위해 꼭 '도롱뇽'일 필요는 없다. '닭'도 좋다. 닭이 인류를 끝장내는 세상을 그려라.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부조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보여라. "닭이 인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통큰치킨' 판매 중단을 선언한 2010년 12월 13일 아침이었다."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겠다. "그다음은 나도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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