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가지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황금가지 펴냄

범인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으나 감정의 홍수에 떠밀려 끝까지 읽었다.

배경은 뉴욕. 주인공은 전직 경찰 무면허 탐정. 이 사람, 알코올 중독자다. 술을 안 마시려고 계속 콜라와 커피를 마셔댄다. 술 마시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날마다 가까운 알코올의존자 모임에 나간다. 하지만 매번 그냥 듣기만 하고 자기 얘기는 안 한다. 그리고 계속 남의 얘기만 들으면서 투덜거린다. 끝에서야 자기 얘기를 털어 놓는다.

1인칭 소설이다. 화자의 독특한 목소리와 고독한 내면에 강하게 빨려들기 쉽다. 반면, 영국식 논리 추리 게임에 익숙한 사람한테는 별 맛이 없다.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의 추리는 빈약하다 못해 앙상한 가지 정도고 그 해결이라는 게 총과 주먹이다.

이 책의 매력은 탐정의 애수다. 내면의 고독. 계속 혼자 중얼거리는 그 잔상이 안개처럼 읽는 사람을 휘감는다. 날마다 누군가 죽고 자살하고 훔치는 무정한 도시에서 겉으로는 냉정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감상적인 주인공이 방황한다.

인종차별주의가 거슬리고 책의 대부분이 사건 진행과 별 상관없는 잡담이다. 허나, 주인공의 입과 눈과 귀를 통해 밀려오는 감정의 물결은 피하기 어렵다.

하드보일드에 익숙하고 주인공의 우울한 내면 풍경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최고의 책이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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