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기시노 게이코 지음
이선희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책 표지가 논란이다. 사형 폐지론 옹호론을 논하는 진지하고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소설과 달리, 무슨 동화책 느낌이다. 첫인상은 그랬다. 안 어울린다고 여겼다. 소설을 다 읽고나니, 표지에 나온 각 사물들은 소설 내용의 핵심에 해당되는 것으로 잘 표현된 것이었다. 그래도 표지는 아동용 도서처럼 보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체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거의 멈추지 않고 빠르게 읽힌다. 별 꾸밈이나 수식이 없다보니, 문장 읽는 맛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체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프롤로그의 두 남녀 연애는 뭘까 싶었더니, 역시나 결말과 결정적으로 이어지는 힌트이자 암시였다. 시작의 궁금증 때문에 끝까지 읽었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이 도대체 왜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추리소설의 기본에 충실한 설정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살인자의 주변 지인과 살해된 자의 친인척이 어떤 고민과 고통, 혹은 어려움을 겪는지 워낙 잘 써 놓아서 소설이 아니라 심층 뉴스 기사처럼 읽힌다. 아마 이 점 때문에 2014년에 나온 책이 꾸준히 출판되어 나오는 것 같다. 스테디셀러가 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사형 폐지론 논란은 딱히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리고 역시나 딱히 정답이 없어 보였다. 흥미롭고 새로운 점은, 각 사건별로 사형할지 여부를 잘 따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범인의 범행이 단지 살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부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살인범이 사형을 바라기도 한다.
살인한 자는 사형 혹은 무거운 죄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여기고 이를 실현/실천하려는 사요코는, 원리주의/원칙주의자의 한계/실패를 보여준다. 소설의 결말은 상식과 감정에 따른 약간의 해피엔딩이었다. 현실상으로는 살인했다고 무조건 죄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죄가 입증되어야 죄를 받는다.
자신의 과거 죄로 인해, 거의 성인의 경지(노인의 관점/평가에 따르면)에 오른 의사 후미야는 묘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죄가 없었다면, 과연 그가 그정도까지 선행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반면,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유지한 사오리는, 죄 때문에 더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사형이든 죄든 과거든 각 사람마다 각 상황마다 다르게 적절하게 판단해서 다뤄야 한다.
비약한 전개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일 것까지야 싶은데, 각 인물들의 고민과 생각은 공감이 가고 안타까웠다. 작가 히가시노가 이야기에 신파적인 면이 있긴 해도, 인간 감정의 핵심을 잘 짚어서 보여준다.
소설 '공허한 십자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긴장감이 덜하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나름 감동의 깊이는 있다. 읽어 볼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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