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선택
Killer's choice (1957)
에드 맥베인
수목출판사 1993년
ISBN 5000071692
피니스아프리카에 2017년
ISBN: 9791185190204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다섯 번째 장편소설 '살인자의 선택'은 대표작이 아니라 망작이다. 피니스 아프리카에에서 이 작품만은 출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나와 버렸다.

시작과 수수께끼는 흥미롭다. 끝까지 읽지 않고서 궁금해서 미친다. 하지만 끝까지 읽었어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범인은 잡혔지만 살해된 사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이야기를 급하게 서둘러 끝내려고 무리한 것이다. 만들다만 조각상처럼 되었다.

이혼녀가 자신의 직장인 주류판매점에서 총을 맞고 죽는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진술이 제각각이고 심지어 정반대이기도 하다. 정말 같은 사람을 얘기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어떤 이는 그녀가 술주정뱅이라고 하는데, 다른 이는 술을 거의 입도 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구를 잘 치고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라고 하는가 하면, 책을 많이 읽으며 발레 공연을 즐겨 보는 고상한 숙녀라는 이도 있다. 돈 많은 유부남과 바람피우는 여자이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왜 그녀를 죽인 것일까? 작가의 억지춤에 의하면, 그런 여러 모습들 중에 하나를 살인자가 택했고 그래서 죽였단다. 그래서 제목이 '살인자의 선택'이다.

살해된 사람에 대해서 사람마다 진술이 제각각인 추리소설이 있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슬픈 사이프러스/삼나무 관'이다. 하지만 그 소설에는 의문이나 수수께끼는 없었다. 진술자마다 자신의 입장과 감정을 반영해서 그 사람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질투 많은 여자는 그녀가 음탕한 년이라고 말하지만 호감을 가졌던 남자는 그녀가 너무 예뻐서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반면, 맥베인의 이 소설 '살인자의 선택'은 끝까지 왜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마다 제각각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 점은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추리소설의 본령인 누가 왜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점에서 성의가 없이 마무리한다.

수사관들은 계속 헛다리를 짚고 책이 몇 쪽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혀 사건을 해결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범인 스스로 자신의 살인을 미리 밝힌, 자기 손으로 쓴 편지 한 장이 피해자의 집에서 간신히 발견된다.

이후의 연결 추리는 비약이고 억지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살인을 계획했던 자가 충동적으로 살인 경고장을 그것도 손수 손으로 써서 살해될 자한테 보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살인 욕구에 미쳤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자.

하지만 그 수기 편지의 필체를 수많은 자동차 등록 신청서의 서명 필적과 대조해서 찾아낸다? 이 소설의 시대 설정상 요즘처럼 디지털 파일로 된 것이 아닐 테니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일일이 수많은 문서를 봤다는 얘기다. '피살자 관련 용의자들  중에서'라고 한정된 범위에서 문서를 검토해 봤다면 몰라도 그 많은 문서를 다 봤단 말인가.

더구나 누군가 차를 타고 도망쳤다는 목격자 진술 하나만으로는, 차를 타고 도망친 자가 무면허운전자인지 면허운전자인지 그 자동차를 등록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자. 하지만 힘들여 많은 분량을 읽는 독자한테 갑자기 살인자의 수기 한 장 던져주고 추리게임을 끝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독자 입장에서 화가 안 나겠는가. 독자가 총을 쥐고 있고 작가가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면 총은 발사되었을 것이다. 이 87분서 시리즈는 다섯 편으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죽었던 주인공을 되살리게 했던 그 편집자는 원고가 이 모양인데 가만 있었단 말인가. 그 사람도 총 맞아야 한다.

글솜씨와 이야기꾼 능력은 다르다. 맥베인의 글솜씨가 좋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글 잘 쓰는 인간은 드물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다 이야기는 글쓰기와는 다른 차원이다.

글을 잘 쓴다고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글을 잘 쓰지만 소설은 쓰지 않는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수필을 잘 쓰지만, 그리고 간단한 일상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쓰지만, 논리적 허구의 글 구조물인 소설은 단 한 편도 안 썼다. 아니 못 썼다.

글은 잘 못 쓰는데, 소설을 잘 짓는 사람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특유의 장광설 독백을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문장가가 아니라 말 많은 미치광이 수다쟁이다. 하지만 그런 못난 문장들의 연속이 어느 순간에 인간의 심연을 끄집어내는가 하면 독자의 심장을 쥐어 짜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소설가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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