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 맥베인 87분서 시리즈 국내 번역본 원서 출간일순 목록

경찰 혐오자; 경관 혐오 Cop Hater (1956)
노상강도 The Mugger (1956)
마약 밀매인 The Pusher (1956)
사기꾼 The Con Man (1957)
살인자의 선택 Killer's Choice (1957)
살의의 쐐기 Killer's Wedge (1959)
킹의 몸값 King's Ransom (1959)
한밤의 공허한 시간 The Empty Hours (1962)
10 플러스 1 Ten Plus One (1963)
조각맞추기 Jigsaw (1970)
백색의 늪 Bread (1974)
소녀와 야수; 알리바이 Blood Relatives (1975)
잃어버린 시간 Long Time No See (1977)
아이스 Ice (1983)
포이즌 Poison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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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 혐오
Cop Hater (1956)
에드 맥베인
동서문화사 2003년
ISBN 9788949701493

경찰소설의 모범


'경관 혐오'는 경찰소설의 모범이 된, 87분서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이다.

권총소지허가신청서, 탄환감정서, 검시해부보고서. 소설에 이렇게 세세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나. 내 평생에 범죄 관련, 특히 살인 관련 공문서를 실제로 볼 일은 단 한 번도 없을 듯 싶다. 작가가 경찰 업무를 잘 알고 있다는 건 알겠다.

에드 맥베인은 경찰소설이라는 장르를 확립한다. 기존 초인적인 능력과 복잡기교한 트릭의 탐정 주인공 소설과는 거리를 두면서 사실적이고도 현실적인 형사들의 이야기를 창작한다.

87분서 시리즈를 4권째 읽었다. 그의 이야기 작법이 보인다. 뛰어난 인물 묘사과 생생한 대화는 따라잡지 못할지라도, 그리고 온갖 경찰 관련 전문 지식도 못 따라하겠지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방법은 확실히 배웠다.

무더운 여름날, 87분서 형사들이 45구경 총에 맞아 하나, 둘, 세 명이 차례차례 죽는다. 형사에게 원한이 있는 자가 범인일 거라 여기고 여러 단서를 잡아 추적해 보지만 막다른 골목에 이를 뿐이다.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경관 혐오자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관이라서 죽인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 때문에 죽인 것이라며 자기 나름의 추리를 기자에게 이야기한다. 살인범 '검은 양복의 사나이'가 기사를 보고서 카렐라 형사의 애인 테디의 집에 찾아가는데...

제목과 사건 전개는 독자가 오인하도록 하기 위한 미끼다. 덥석 물고 끌려가다가 끝에 가서 아 사실은 그런 거였어 의외네 하면서 독서를 끝낸다.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각 사건의 관련성이 보이지 않으니, 미치광이 짓이라고 할밖에 없다. 하지만 살인은 의도적이고 논리적이며 직선이다. 인간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지만 타인의 목숨을 훔치는 행위는 필연적 사건이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달리, 유머가 썰렁하다. 이 정도로 심하게 안 웃기지는 않았는데, 첫 작품이라 그랬나.

맥베인의 범죄 수수께끼는 거의 끝에서야 갑자기 확 풀리면서 딱히 강한 반전 같은 것은 없다. 현란한 트릭이나 대단한 추리력을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이 소설 '경관 혐오'에서는 셜록 홈즈 시리즈 첫 편 '주홍색 연구'에서 보여준 용의자 신상 알아맞추기를 선보였다. 166쪽부터 나오는데, 과학수사대가 DNA 같은 고도의 과학기술력이 없어도 관찰과 과학 지식을 통해 훌륭한 추리를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머리카락만으로 그 사람의 성별과 직업과 나이를, 탄환 검사와 옷에 묻은 핏자국으로 키를 추정해낸다.

'경관 혐오'는 독창적인 소설이라고 말할 순 없다. 범죄추리소설의 장르 틀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과 똑같다. 인물, 배경, 문장은 다르지만 범죄 행위의 틀과 이야기 전개 방식은 같다. 잘 가져다 썼다.

추리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아서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 경찰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에드 맥베인의 동시다발 다큐멘터리식 이야기 방식을 따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장르의 굳건한 틀이다. 이 틀에서 벗어나 추리/범죄/탐정/경찰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드거 앨런 포를 창조자로 모시는 '추리소설' 신전에서는 다음의 신조를 따르라. "수수께끼 같은 범죄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 범인과 사건의 진상은 맨 마지막에 밝혀라." 아멘.

동서미스터리북스의 재미 혹은 수수께끼 중에 하나는 책 제목에는 없는 중단편이 하나 더 들어 있다는 점이다. 오탈자가 있어도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는 것, 표지가 본문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 가끔은 종이에서 요상하게 불쾌한 냄새가 난다는 점과 더불어서 말이다.

DMB 64권 이 책에는 '한밤의 공허한 시간'이라는 중편소설이 실렸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책에서 아무런 설명도 해설도 원제도 없다. 아마도 1962년 출간된 중편집 The Empty Hours에 있는 세 편 중에 하나로 보인다.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진행되다가 끝에 가서 합치며 마무리되는 형식이다. '살의의 쐐기', '아이스'도 같은 이야기 형식이다. 작가 스타일이다.

살해된 여자의 계좌와 수표 사용 내역을 끈질지게 추적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기 바로 직전까지 누가 왜 죽였는지 알 수 없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서 종종 보이는 신분 바꿔치기 수법인데 그 흔적을 따라 끝까지 가 봤지만 살인범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절도 사건 조사에서 나온 프랑스 화폐 금액과 살해된 여자 관련 금액에서 사라진 돈이 일치하면서 수수께끼는 확 풀린다, 씁쓸한 여운을 남기면서.

장편 '경관 혐오'보다 중편 '한밤의 공허한 시간'이 더 낫다 싶다. 허기야 첫 작품의 어색하고 어설픈 모습보다야 능글맞고 능숙한 중후반기 작품이 더 나은 것은 당연하고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경관 혐오 별3개, 한밤의 공허한 시간 별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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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선택
Killer's choice (1957)
에드 맥베인
수목출판사 1993년
ISBN 5000071692
피니스아프리카에 2017년
ISBN: 9791185190204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다섯 번째 장편소설 '살인자의 선택'은 대표작이 아니라 망작이다. 피니스 아프리카에에서 이 작품만은 출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나와 버렸다.

시작과 수수께끼는 흥미롭다. 끝까지 읽지 않고서 궁금해서 미친다. 하지만 끝까지 읽었어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범인은 잡혔지만 살해된 사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이야기를 급하게 서둘러 끝내려고 무리한 것이다. 만들다만 조각상처럼 되었다.

이혼녀가 자신의 직장인 주류판매점에서 총을 맞고 죽는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진술이 제각각이고 심지어 정반대이기도 하다. 정말 같은 사람을 얘기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어떤 이는 그녀가 술주정뱅이라고 하는데, 다른 이는 술을 거의 입도 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구를 잘 치고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라고 하는가 하면, 책을 많이 읽으며 발레 공연을 즐겨 보는 고상한 숙녀라는 이도 있다. 돈 많은 유부남과 바람피우는 여자이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왜 그녀를 죽인 것일까? 작가의 억지춤에 의하면, 그런 여러 모습들 중에 하나를 살인자가 택했고 그래서 죽였단다. 그래서 제목이 '살인자의 선택'이다.

살해된 사람에 대해서 사람마다 진술이 제각각인 추리소설이 있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슬픈 사이프러스/삼나무 관'이다. 하지만 그 소설에는 의문이나 수수께끼는 없었다. 진술자마다 자신의 입장과 감정을 반영해서 그 사람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질투 많은 여자는 그녀가 음탕한 년이라고 말하지만 호감을 가졌던 남자는 그녀가 너무 예뻐서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반면, 맥베인의 이 소설 '살인자의 선택'은 끝까지 왜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마다 제각각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 점은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추리소설의 본령인 누가 왜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점에서 성의가 없이 마무리한다.

수사관들은 계속 헛다리를 짚고 책이 몇 쪽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혀 사건을 해결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범인 스스로 자신의 살인을 미리 밝힌, 자기 손으로 쓴 편지 한 장이 피해자의 집에서 간신히 발견된다.

이후의 연결 추리는 비약이고 억지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살인을 계획했던 자가 충동적으로 살인 경고장을 그것도 손수 손으로 써서 살해될 자한테 보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살인 욕구에 미쳤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자.

하지만 그 수기 편지의 필체를 수많은 자동차 등록 신청서의 서명 필적과 대조해서 찾아낸다? 이 소설의 시대 설정상 요즘처럼 디지털 파일로 된 것이 아닐 테니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일일이 수많은 문서를 봤다는 얘기다. '피살자 관련 용의자들  중에서'라고 한정된 범위에서 문서를 검토해 봤다면 몰라도 그 많은 문서를 다 봤단 말인가.

더구나 누군가 차를 타고 도망쳤다는 목격자 진술 하나만으로는, 차를 타고 도망친 자가 무면허운전자인지 면허운전자인지 그 자동차를 등록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자. 하지만 힘들여 많은 분량을 읽는 독자한테 갑자기 살인자의 수기 한 장 던져주고 추리게임을 끝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독자 입장에서 화가 안 나겠는가. 독자가 총을 쥐고 있고 작가가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면 총은 발사되었을 것이다. 이 87분서 시리즈는 다섯 편으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죽었던 주인공을 되살리게 했던 그 편집자는 원고가 이 모양인데 가만 있었단 말인가. 그 사람도 총 맞아야 한다.

글솜씨와 이야기꾼 능력은 다르다. 맥베인의 글솜씨가 좋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글 잘 쓰는 인간은 드물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다 이야기는 글쓰기와는 다른 차원이다.

글을 잘 쓴다고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글을 잘 쓰지만 소설은 쓰지 않는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수필을 잘 쓰지만, 그리고 간단한 일상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쓰지만, 논리적 허구의 글 구조물인 소설은 단 한 편도 안 썼다. 아니 못 썼다.

글은 잘 못 쓰는데, 소설을 잘 짓는 사람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특유의 장광설 독백을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문장가가 아니라 말 많은 미치광이 수다쟁이다. 하지만 그런 못난 문장들의 연속이 어느 순간에 인간의 심연을 끄집어내는가 하면 독자의 심장을 쥐어 짜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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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The Con Man (1957)
에드 맥베인
피니스아프리카에 2015년
ISBN 9791185190099

사람 좋은 첸 아저씨


'사기꾼'은 87분서 시리즈 네 번째 소설이다. 첫 작품 '경찰 혐오자'와 세 번째 이야기 '마약 밀매인'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출간순으로 읽기 바란다. 경찰 혐오자-노상강도-마약 밀매인-사기꾼.

계속 나타나는 표류 시체. 여자인데 손가락 사이에는 하트 모양의 문신과 글자가 있다. 전편 '마약 밀매인'의 영웅 카렐라는 영웅의 아내 테디는 그 단서를 좇아 문신시술소에 간다. 여기서 사람 좋은 중국인 찰리 첸을 만난다.

세 번째 소설 '마약 밀매인'에서 "그릇된 사상과 탐욕에 사로잡힌 편집자"(266쪽)에 의해 가슴에 총을 세 방이나 맞고도 살아난 우리의 스타 주인공 카렐라 형사와 그의 아내 테디는 이어지는 네 번째 소설 '사기꾼'에서 작가 대놓고 맹활약을 하게 한다.

나름 인상적이긴 한데,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스타덤에 오른 두 남녀가 아니라 문신 시술하는 '착한' 중국인 아저씨 챈이다. 경찰이 나타나면 대개들 겁을 먹거나 비협조적인데, 이 아저씨는 처음 보는 경찰한테 농담까지 하면서 친절하고 자상하다.

독자들이 첸 아저씨 좋아하는 걸 눈치챘는지 용캐도 작가는 이 인물을 잘 기억해서 시리즈 후반기 소설 '아이스'에서 다시 등장시켰다. 변함없이 사람 좋은 분으로 나온다. 그런 사람이 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어느새 정이 들고 마음 편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카렐라 형사가 표류 시체를 조사하는 한편에는, 꼼꼼하고 끈질긴 수사를 하는 브라운 형사가 사기꾼을 찾느라 고생이다. 고작 오 달러를 사기 당하고 수사를 의뢰한 것이지만, 동료 형사들의 비웃음을 들으면서도 브라운 형사답게 성실하게 사기꾼을 추적한다.

단순하지만 하트 문신 안에 있는 글자 수수께끼가 있고 168쪽에 가서 풀린다. 후반부에 위기일발 서스펜스도 있어서, 나름 재미있다. 농담도 전작에 비하면 좀 낫다. 가끔씩 허접한 유머를 구사해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는데 그건 그 나름대로 각 인물들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애써 내가 작가를 변호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가끔 정말 썰렁할 때가 있다.

미남 사기꾼 살인자가 왜 하트 문신을 새기는 것에 집착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렇게 똑똑했던 범죄자가 나 잡아가라고 그런 단서를 일부러 힘들여 남긴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미친놈이니까, 그래서 그래. 그냥 넘어 가? 두 스타 주인공, 특히 테디를 띄우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최고라고 할 순 없어도 재미있게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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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매인
The Pusher (1956)
에드 맥베인
피니스아프리카에 2015년
ISBN 9791185190082

마지막 장면이 멋지다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 스티브 카렐라. 이들의 공통점은? 작가가 죽였으나 독자들의 아우성 때문에 억지로 되살리거나 생명을 연장시킨 캐릭터다. 그리고 모두 시리즈를 오래 끌며 인기를 누렸던 주인공들이다.

소설가가 등장인물을 만들면 캐릭터는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작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이고 작가 좋을 대로 캐릭터가 행동하거나 말하게 할 수 없다. 어느새 입장이 뒤바뀐다. 작가가 캐릭터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작가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채찍질을 해대며 어서 글을 써내라고 명령한다. 글 쓰는 노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미워했던 이유는 그래서다.

87분서 시리즈 세 번째 소설 '마약 밀매인'에서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작가 에드 맥베인에 의해 '멋지게' 죽었다가 출판대리인과 담당편집자의 동시 폭격에 항복하고 초본을 수정해서 살려낸다. 이후 카렐라 형사는 이 시리즈의 중심이자 주인공으로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절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사람이고 암으로 사망했다.

에이전트라 불리는 출판대리인은 출판 전 원고를 읽는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미쪽에서는 출판계약 관련 업무만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작가 대신에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여주고 출판계약을 따내면 중개수수료를 챙긴다. 자기 나름대로 출판시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한테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권할 수 있고, 출판 관계자랑 이야기해보고서 그쪽 권고 사항을 전하기도 한다.

에디터라 불리는 출판편집자는 출판대리인보다 더욱 더 작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영미쪽에서는 편집자가 작가의 글에 신과 같은 권력을 행사한다. 이야기의 방향과 결론은 물론이고 글의 분량을 조절하거나 심지어 문체까지 바꾸라고 명령할 수 있다. 스티븐 킹이 저술은 인간의 영역이고 편집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가장 성공적인 편집 사례는 '바다와 노인'이다. 헤밍웨이가 쓴 이 소설의 초본 분량은 단편이 아니라 중장편에 가까웠다. 한국전 참전 중 참호 속에서 원고를 읽어 본 편집자는 너무 장황해서 독자들이 참지 못하고 읽어주지 않을 거라면서 단편으로 줄이라고 작가에게 명령했다. 이 편집자의 이름은 제임스 미치너, '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에드 맥베인이 캐릭터를 죽였다가 되살리는 글솜씨가 귀신같다. "이제 크리스마스였고, 온 세상이 평온했다. 그러나 스티브 카렐라는 숨을 거두었다."를 마지막 문장만 삭제하고 그 앞부분 장면을 조금 수정해서 정반대 분위기로 만들었다. 3부작으로 완결되는 거였다면 카렐라가 죽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도 나름 멋졌으리라.

시리즈물은 출간일순으로 읽어야 한다. 후반기에 쓴 소설에 전반기의 사연과 사건을 말하기 때문이다. '마약 밀매인'은 시리즈 세 번째 소설인데, 이 사건 이야기가 '살의의 쐐기'에 나와 있다. 그러니, '살의의 쐐기'를 '마약 밀매인'보다 먼저 읽은 나로서는 읽다가 놀라지 못하고 확인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87분서 시리즈물을 내 준 것만 해도 어디냐 싶다만, 시리즈 순서를 맞춰 출판해 주면 안 되냐고.

셜록 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식 수수께끼 정통 추리물이 강세인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해 많이 팔리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에, 게다가 열린책들의 매그레 시리즈가 판매부진으로 더는 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걸 봤기 때문에, 피니스 아프리카에의 87분서 시리즈도 같은 꼴이 될 것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럼에도 표지가 예쁘고 크기가 아담하고 교정을 네 사람이나 봐서 그런지 오탈자가 거의 없고 온라인에서 본 발행인이자 출판사 사장 박세진 씨가 미남이다. 작가 에드 맥베인의 우중한 사진보다는 번역 출판사 사장인 박세진의 사진을 책날개에 인쇄하는 게 판매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농담이다. 좀 더 나은 작가 사진을 컬러로 실어 주면 좋겠다. 아니면 아예 없는 게 나을 듯.

부디 많이 팔려서 이 시리즈 전권이 나오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카렐라가 가슴에 총 세 방 맞고 죽은 지 삼일만 부활했다. 나는 기적을 믿는다.

'마약 밀매인'은 마약 관련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인데, 작가의 글솜씨는 좋지만 중심 이야기는 훌륭하지 않았다. 밋밋하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사연을 읽는 재미는 대단히 좋다. 대사를 어쩜 이렇게 멋지고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잘 쓰는지. 마지막 장면이 멋지다. 멋진 작가다.

가끔씩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다. 범죄 수사 과정을 전문적이고 자세한 수준까지 설명하며 보여준다. 138쪽에 보면 지문 조사 방법이 나오는데, 지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단다. 잠재적 지문, 식별 가능 지문, 가소성 지문. 이 정도면 범죄수사학 교과서나 전공서적에나 나올 법한 글이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를 읽으면 경찰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경찰이 어떻게 범죄를 수사하는지 경찰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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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Ice: An 87th Precinct Mystery (1983)
에드 맥베인
검은숲 2013년
ISBN 9788952767929

너무 장황해


아무리 좋은 것도 넘치고 지나치면 물리고 실증이 나는 법이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 중 '아이스'는 자신의 장기를 너무 많이 발휘해서 너무 많이 썼다. 인물이 너무 많고 이야기가 장황하다.

영화로 나온 걸 봤다. 소설에 비해 잡스러운 게 제거되어 좋긴 한데, 여전히 87분서 스타일을 완전히 벗어나서 새롭게 만든 건 아니라서 여전히 잡스럽다.

경찰 관련 업무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쓸 필요는 없고 그렇게까지 알고 싶지도 않다.

'아이스'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다. 포도송이 같다. 중심 이야기가 있고 거기에 자잘한 이야기들이 많이 매달렸다. 한 알씩 먹으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난다.

'아이스'는 '10 플러스 1'과 비슷한 이야기다. 계속 같은 총에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고 누가 왜 이들을 죽이는지 알지 못한다. '10 플러스 1'처럼 직선이 아니라 두 선이 꼬였다가 봉합되며 끝난다. 동시 진행하다가 끝에 합쳐지는 것은 '살의의 쐐기'를 닮았다. 시리즈로 워낙 많이 쓰다보니 이야기 틀거리가 비슷해진 것이겠지.

마약 이야기가 나오기에 '아이스'가 신종 마약 이름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극장 암표 판매를 뜻하는 거였다. 이것도 아주 자세히 써 놓았다. 그렇게 세세하게 알려 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탄도학, 회계학(돈 세탁하는 방법), 형법, 마약 감별법, 심리학, 정보원 구인 및 관리법, 마약 제조 및 유통, 다아이몬드를 숨기는 방법 등 온갖 범죄 관련 지식을 쓸데없이 자세히 알려준다.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알고 싶지 않단 말이다.

87분서 시리즈의 후반기 작품인데, 실망했다. 면도칼로 사람을 난도질해서 죽이는 뚱뚱한 여자 범죄자에, 질 낮은 농담들, 이전에 설명했던 인물 묘사와 사연의 반복. 선정성이 심하다. 게다가 이야기는 초반에 너저분하게 벌려 놓고 후반에 간단하게 풀린다.

시리즈에서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게 아니라 망가지고 부셔지는 것을 보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버트 클링은 왜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작가한테 따지고 싶다. 성격 좋은 데다가 잘생긴 사람을 미워하나?

뛰어난 글솜씨로 질 낮은 범죄 이야기나 쓰다니. 재능이 아깝다. 많은 작가들이 돈벌이 잘 된다는 이유만으로 추리소설을 썼다. 피와 폭력, 살인과 범죄. 쓰레기들. 욕설들. 모든 작가가 '죄와 벌' 같은 소설을 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작가가 범죄 소설을 써야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에드 맥베인이 글을 잘 쓰지만 과연 좋은 작가인지는 의문이다. 반면에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형사들 식성까지 세세하게 글로 쓰는 걸 보면 말이다. 즐기면서 글을 쓴 게 뻔히 보인다. "카렐라는 소지시와 후추가 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형사실 안에서 서로 식성이 갈리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었다. 마이어는 파스트라미를 넣은 호밀빵을, 클링은 참치를 넣은 흰 빵을, 브라운은 토스터에 구워 햄을 얹은 식빵을 먹고 있었다." 477쪽

실제 형사들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지만, 이 소설에서 형사들이 각자 조사한 사항과 추리를 모아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본 끝에 나름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멋지다.

이 소설의 끝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선행이 악행으로 바꾸고 재판에서 범죄자가 가석방으로 풀려나고 정의는 씁쓸하게 실현된다. 형사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제대로 일을 마무리짓지는 못했다. 87분서 형사들(정확히는 번스 반장)은 사건을 5분서로 넘긴다. 그리고 끝난다.

오탈자 한 개 있었던 듯하고, 521쪽 '쉬운 남자'라는 번역에 할 말을 잃었다. 혹시 이 번역자 전직이 노무현 대통령 번역사 아니었을까.

검은숲에서 그 많은 87분서 시리즈 중에 하필 '아이스'를 고른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분량 때문에? 차라리 마지막 발표작을 하든지 많이 번역되어 알려진 '경관 혐오' 다음 작품을 하는 게 더 나은 전략이지 않았을까.

피니스 아프리카에서 이 시리즈가 계속 잘 나오고 있어서 다행이다. 표지가 어쩜 그리 예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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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플러스 1
Ten Plus One (1963)
에드 맥베인
해문출판사 2004년
ISBN 9788938203649

생생한 인물 묘사

추리소설에 아동용과 성인용이 있다고 한다면, 87분서 시리즈는 성인용이다.

권총, 성교, 폭력, 불륜, 매춘, 마약 등이 나와서 성인용이라는 말이 아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는 그런 것이 나오지만 이야기는 아동용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좋아하는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절대 죽지 않으며 초능력이 있거나 일반인보다 확실히 뛰어난 재능이 있다. 그리고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다. 주인공이 통쾌하게 사건, 문제, 수수께끼를 해결한다.

사실성의 관점에서 보면, 홈즈도 푸아로도 말로도 죄다 수퍼맨과 다를 바 없는 캐릭터다. 그리고 그 외 주변 인물들은 마치 인형처럼 들러리를 선다. 이야기는 인형 놀이일 뿐이다. 범죄 수사라기보다는 탐정 놀이다.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은 사건 종결 후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는다. 기이한 트릭에 깜짝 놀라고 기발한 해결에 재미있어 하고 독서는 끝난다. 여운도 감동도 없다. 그래서 추리소설은 쓰레기라고 불러도 딱히 반박할 수 없다. 추리소설 작가 대부분이 탐정소설을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87분서 시리즈는 왜 셜록 홈즈를 비롯한 아동용 추리소설과 차별되는가. 이 소설 시리즈 책 맨 앞에 항상 있는 문구부터 이야기의 초점이 범죄 트릭의 재미가 아니라 범죄 수사의 실제에 있음을 선언한다. "이 소설은 가공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장소도 허구다. 그러나 경찰 활동은 실제의 수사방법에 기초했다."

시리즈 이름에서 알 수 있듯, 87분서 이야기는 특정 인물의 나홀로 잘남을 연기하는 쇼가 아니라 경찰서의 경찰들이 협력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다큐멘터리다. 물론 스티브 카렐라 형사가 대체로 이야기를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나타나 있으나 독불장군식으로 특정 정보와 추리를 독점하다가 마침내 주변 사람들한테 뻐기며 사건의 진상을 짜잔 설명하는, 유치한 아이들 탐정 놀이는 하지 않는다. 어른답게 형사답게 묵묵하게 조사하고 탐문하고 생각하고 체포한다.

독서 체험으로 87분서 시리즈는 독특하다. 추리소설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사실주의 소설이다. 2차 세계 대전 전후 미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다인종 문화의 다양한 삶을 역동적으로 활발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책 읽기가 끝나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사건 해결의 통쾌함보다는 여러 인물들의 삶이다. 그리고 87분서 경찰관들이다.

수수께끼 풀이식 전통 추리소설에 익숙한 이한테는 87분서 시리즈가 그다지 재미도 없고 매력도 없을 수 있다. 에드 맥베인의 열혈 독자한테는 말도 안 되고 절대 그럴 수 없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항의하겠지만,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거니까.

애거서 크리스티식 추리소설 관점에서는 인물 묘사를 잘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사건을 위한 장식품이고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휴지다. 심지어 주인공 탐정조차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그의 삶을 보여주면 안 된다. 평면적이고 기이하고 특이하게 그려내서 무적의 천재 사나이로 보이게 해야 한다. 탐정은 절대적으로 일반인과 다르며 달라야 한다.

에드 맥베인의 소설에서 형사는 말 그대로 정확히 형사다. 영화나 다른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셜록 홈즈 혹은 필립 말로식 형사가 아니다. 알콜 중독에 불운한 과거를 지니며 총 쏘고 다니고 천재적인 추리력으로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내지 않는다. 과학수사대의 도움을 받지만 지극히 상식적이고 사실적인 정보를 얻을 뿐이다.

그럼에도 87분서는 소설이다. 이야기다. 잘 만든 서스펜스다. 주목할 만한 사건이 초반에 발생하고 차츰 긴장이 고조되고 마침내 해결에 이른다. '살의의 쐐기'에서 초반에 사건 두 개가 터지며 동시에 진행하다가 끝에서 합쳐지는, 서스펜스 묘기를 선보였다면 '10 플러스 1'은 저격수의 연쇄 살인으로 여러 사건을 한 줄에 나열하며 위기감과 흥미를 고조시킨다.

때마침 이 소설 '10 플러스 1'은 '살의의 쐐기' 다음 편이다. Killer's Wedge, 1959년. Ten Plus One, 1963년. 132쪽("그녀는 스티브를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당신처럼 들어 왔소. 그리고 순식간에 308구경 권총을 빼들고 캐레라를 죽이러 여기 왔다고 떠들어댔지.")에 '살의의 쐐기' 인질극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사건의 대략적인 모습은 11장 끝에서야 드러난다. 왜 제목이 '10 플러스 1'인가. 연극 배역이 11명이다. 그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간다. 도대체 누가 왜 1940년 라므지 대학에서 공연한 연극 '기나긴 귀항로'의 출연진을 라이플총으로 저격하는 것일까? 범인은 의외였다. 출연진 중 한 명이 살인범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다. 알리바이 트릭과 살인동기가 조금은 억지스럽긴 한데, 그럭저럭 설득력은 있었다.

미국 이민자들의 삶과 유태인의 반 독일 감정이 파스텔 수채화처럼 다양하고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매춘부 최하류층부터 무역회사 부사장 최상류층까지 등장한다. 교수, 과일장수, 배우, 의사, 작가, 영화제작자, 변호사, 대학 행정직원, 대학생, 검사, 형사, 포주, 가석방중인 전과자, 전철 매표소 직원 등 다양한 인물들이 동영상 촬영된 것처럼 글로 써 있다. 유머 작가의 콩트 카드도 나름 웃긴다. 재치있는 우스개다.

유머과 유려한 문장까지 가세하며 소설 읽는 재미를 돋운다. 특히 문장은 미국식 뻣뻣한 하드보일드식 간결체가 아니라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어지는 간결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술술 읽혀서 문장에 비누칠을 한 것 같다.

경찰서 안의 모습이 워낙 생생하게 묘사해서, 눈앞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같다. 글 정말 잘 쓰는 작가다.

추리소설이고 스릴러 형식을 취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드라마다. 사람 사는 이야기다. 버트 클링, 신시아 포리스트, 스티브 카렐라. 그들은 그들 각자대로 자기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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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의 쐐기
Killer's Wedge (1959)
에드 맥베인
피니스아프리카에 2013년
ISBN 9788996655756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이야기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게 맞나. 왜 이렇게 생생하게 보이지. 나는 지금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어. 소설책을 읽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꿈을 꾸는 것인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작가 소개는 진짜였다. 글 진짜 잘 쓰는 사람이다. 챈들러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라. 애들이나 읽으라고 해라. 진짜 글, 진짜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챈들러가 아니라 맥베인을 읽어라.

'살의의 쐐기'는 간결하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동안 쓸데없이 복잡하고 어렵게 쓴 소설을 읽은 게 억울한 지경이다. 밑도 끝도 없는 묘사에 너무 꼬아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지경인 음모에 음모, 트릭에 트릭.

정말 잘 쓴 글은 쉽게 읽히면서 이해가 빨리 된다. 그런 면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어슐러 르 귄, 조지 R. R. 마틴, 톨킨, 기타 유명한 작가들은 글을 잘 쓴 게 절대 아니다. 정말 못 쓴 거다.

추리소설, 형사소설, 경찰소설을 읽으려니 기대했다가 여러 인간 군상들의 인생 드라마 한 편을 빠르게 본 느낌이 들었다.

밀실 트릭과 인질극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맨 끝에서 합쳐진다. 그 진행 중에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소개되는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시시하거나 흥미롭지 않은 게 없었다. 여기에 유머까지.

긴장을 조성하는 스릴러 기술력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진실되고 편안하게 들려주는 이야기 방식이 더 매력적인 소설이다. 총 한 자루와 폭발물을 가지고 경찰서에 들어와 자기 애인을 체포한 형사를 죽이겠다는 여자.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읽어가는데 정작 재미있는 것은 이 긴박한 상황이 아니다. 이 점이 놀라웠다. 이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가 술술 펼쳐진다.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은 장편소설임에도 대하소설 분량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스티븐 킹의 평이 정확하다. 맥베인은 "장르 소설에 리얼리즘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최초의 작가"이며 "단순히 재미뿐만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솔직하게 반영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쓰는지 베이비붐 세대에게 가르쳤다." 정말 "끝내주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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