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바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멜로드라마, 어떤 사랑 이야기
매그레 반장 추리소설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는 중이다. 이미 몇 년 전에 19권까지 완독했는데, 다시 읽고 싶어서였다. 시리즈 초반부의 명작 걸작은 세 번 이상 읽었지만, 그 외 소설은 이렇게 시리즈 19권 전부 읽기를 계획하지 않으면 다시 읽지 않게 될 터였다.
순서대로 읽다보니, 이번 '리버티 바'는 예전 작품의 조합으로 보인다. 사진만 보고, 시체는 아예 보지도 않았다, 그가 지냈던 곳을 둘러보고 그 남자의 삶을 간파해 버린다. '갈레 씨, 홀로 죽다'다. 사건 특유의 그 인간적 냄새와 분위기에 취해 버린, 매그레 반장. 하필 이번 주인공은 매그레와 비슷한 체형에 나이도 비슷하다. 살해당한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자신의 여자들한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준다는 유서를 남긴 남자. '창가의 그림자'에 나오는 못말리는 쿠셰 씨.
이번 '리버티 바'가 그러면서도 다른 점은 겉으로 보기에는 돈 때문에 일어난 살인 같았으나 실은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범죄소설을 읽으려다가 멜로드라마에 빠진다. 살인범을 놓아주는 매그레 반장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씁쓸한 인생. 손수건이 필요한, 징헌 인생 이야기.
추리소설인데 종종 문학작품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헤밍웨이, 마르케스, 헨리 밀러, 지드, 카뮈, 발터 벤야민. 이들이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격찬하는 이유는, 추리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적 드라마가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사람 가슴을 후벼파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지만 범인은 몰랐고, 밝혀진 진실에서 또 다시 슬픈 감정이 북받친다. 살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이야기다.
불쌍한 사랑 이야기
매그레 반장 시리즈를 추리소설로 읽는 것은 그다지 권장 사항이 아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영국식 정통 추리소설에 익숙해서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이런 멜로드라마식 이야기가 나오면 실망하기 쉽다.
이야기의 초점은 살해당한 자와 살해한 자의 사연과 감정에 맞춰 있다.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대개들 단서를 모으고 용의자를 따지고 과연 누가 어떻게 죽인 것인지 짐작해 본다. 이는 심농의 소설에서 무력화된다.
소설의 문체와 어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사람의 인생살이와 구구절절한 사연에 맞춰 있다. 매그레 반장은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만나는 형사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피해자와 용의자의 삶과 감정으로 들어간다.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느낀다.
'리버티 바'는 인생 종착역 같은 분위기의 허름한 술집 이름이다. 거기에 한 남자의 방탕한 삶이 있고 여자 넷이 관련되어 있다. 이중 한 명이 말년의 진정한 사랑이 찾아왔다고 여기다가 살인까지 벌어진다. 불쌍한 사랑 이야기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처리한다. 애써 범인 잡아서 시끄럽게 할 이유는 없었다.
이 소설을 읽고 있자니, 1980년대 초가 생각난다. 술집,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두 여자, 이를 말리는 청년, 한 구석에서 멀뚱하게 두 여자가 싸우는 걸 보는 늙은 남자. 당시 초등학생이었기에 무슨 일이지 몰랐고 나중에야 이해했다.
사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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