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그림자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갑부 남자 쿠셰가 살해당한다. 금고에 있었던 돈이 사라졌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그의 주변 친인척 인물들이다.

첫째, 그의 두 번째 아내. 딱히 돈이 궁하지 않았지만, 웬만큼 사는 집안의 딸이었으니까, 그의 돈을 보고 결혼하긴 했다.

둘째, 그의 첫 번째 아내. 돈에 환장한 여자다. 남편이란 자기가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로만 여길 뿐이다. 쿠셰가 돈을 잘 벌지 못하자, 이혼하고 연금 확실하게 나오는 공무원한테로 간다. 하지만 이 공무원도 그리 돈은 잘 벌지 못했고 승진도 잘하지 못해서 돈 많이 벌어지 못하기는 마찬기지다. 이러고 있는데, 쿠셰가 벌인 사업이 잘되어서 갑부가 되었다. 속이 뒤집힌 이 여자. 우연히도 쿠셰의 사무실이 훤히 보이는 맞은편 집에서 살고 있다.

셋째, 그의 정부. 쿠셰는 갑부가 되어 돈도 교양도 되는 여자랑 결혼했으나 영 마음이 불편해서 편하게 만날 여자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이 여자는 돈 욕심이 거의 없고 자신은 부자가 될 운명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체념하고 그냥 산다.

넷째, 첫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백수다. 갑부가 된 아버지한테 종종 찾아가서 돈을 타다 쓴다.

따라서 살인 용의자는 다섯 명이다. 첫째 부인. 둘째 부인. 정부. 아들. 첫째 부인의 남편.

제목에 결정적 힌트가 있고 정황상 가장 유력해 보이는 자가 범인으로 밝혀진다.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가 그렇듯, 이번에도 '사람'을 보여준다. 이 '못말리는 쿠셰'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하고서 유서를 미리 작성해 놓았는데, 아이고야 그 세 명의 여자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준다고 써 놓았다.

돈에 돌아버리면 사람이 정말 이상해진다. 쿠셰가 돈이 없었다면 그렇게 죽임을 당했을까. 그 여자가 돈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

돈이 뭔지.

돈 때문에 파멸되는 인간 군상들


돈 때문에 파멸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매그레 시리즈의 주된 초점인 듯하다. 그런 면에서 '창가의 그림자'는 아주 전형적인 드라마다. 살인만 빼면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로 선보여도 별다를 것이 없다.

첫째 아내, 둘째 아내, 정부. 돈 뜯어가는 전처 자식. 돈 먹는 하마 같은 여자를 둔 공무원. 돈 많이 벌게 된 사내. 이 정도 인물만 나열해도 벌써 누가 죽고 용의선상에 누굴 둘 지 뻔히 나온다.

이야기 자체로만 보자면 '창가의 그림자'는 흔한 통속소설이다. 살인자를 잡는 형사반장이 있어서 추리소설이니 범죄소설이니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 정말 그렇다고 느낄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작가는 특정 문장을 반복하면서 기묘한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내는데, 이 문장은 대체로 범인의 심정과 상황을 절실하게 표현한 '핵심'이자 '상징'이다. 전작 '갈레 씨, 홀로 죽다'는 이런 조르주 심농 스타일이 극대화되어 있다.

특히, 이야기 끝 장면에 범죄자의 종말과 매그레 반장의 일상을 겹쳐놓으면서 욕망의 씁쓸함과 일상의 달콤함을 대조시켜 그 감정적 효과를 배로 늘린다.

수수께끼 풀이와 범인 잡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범인의 그 극적인 순간 감정을 갑자기 터진 화산처럼 느낄 수 있게 묘사한 문장력은 심농의 재능이다.

Posted by lovego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