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항구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죽이려다 치료하고 다시 죽인다
몇 년만에 다시 읽었다. 초반부 이야기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머리에 총상을 입은 것을 수술한 채 나타난다.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말하는 능력도 상실했다. 마침내 그를 안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선장이란다.
이후 상황은 더 수수께끼가 된다. 집으로 돌아간 선장이 독살을 당한다. 나타난 일만 보면 도대체가 말이 안 된다. 죽이려다가 살리고 다시 죽였다? 장난하나. 매그레 반장은 기괴한 생각 하나를 떠올린다. 애초에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만 지우려고 했다.
제목 '안개의 항구'처럼 좀처럼 뚜렷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독자와 탐정은 사로잡힌다. 다들 뭔가 숨기고 있다.
여행을 위해 요트를 사려는, 부자 남자가 용의자로 나타나는데...
매그레 시리즈가 추리소설이지만 독자와 정당한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이상한 범죄 상황에 처해서 당황하다가 끝에서야 범죄자의 사연을 듣고서 해결되는 식이다. 살인범을 잡고서 놓아주거나 애써 외부에 알리지 않는 형사. 인간 드라마에 치중한 '소설'이다. 범죄 수수께끼 '게임'만 하는 게 아니다.
머리에 총상과 수술 자국
도입부는 환상적이나 지루하고 답답한 중간을 거쳐 전형적인 심농의 눈물 젖은 드라마로 끝난다. 고전 추리소설들이 이런 식의 맬로 드라마 사연으로 사건의 정체를 밝히는데, 너무 구식이라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먼지를 먹는 것 같았다. 엄청난 기대를 했는데 내 사랑, 내 자식, 불운, 가난, 성공, 용서의 구닥다리 이야기를 꺼네 놓으니 할 말을 잃었다.
한 사나이가 발견된다. 말을 못한다. 머리에는 총상 자국이 있고 누군가 수술을 해 준 모양이다. 과연 이 자는 누구이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수소문 끝에 한 여인이 나타나서 신원을 밝혔다. 선장이란다. 둘이 부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같이 소박하게 잘 살았다고.
여인은 사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불쌍한 사내를 누군가 독살했다. 선장의 통장에는 어머어마한 돈이 입금되어 있고 그 유산 상속자는 여인이다. 여인에게는 오빠란 자가 있는데, 의심스럽다.
시장을 비롯한 여러 용의자들이 말을 통 하지 않아서 범인을 잡아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수사 내내 갑갑하다. 매그레 반장이 툭툭 사건의 진상 일부를 툭툭 말해주며 이야기의 종결로 치닫는다.
다른 매그레 시리즈보다 분량은 많았지만 가장 허탈했다. 사건의 진상은 끝까지 알 수 없어 궁금하기보다는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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