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목격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황금가지
임경자 옮김/해문출판사
Dumb Witness 영국판 (1937)
Poirot Loses a Client 미국판 (1937)
이 소설은 제목이 논란이다. 대개들 ‘벙어리 목격자’니까 말 그대로 ‘말을 못하는 사람이 범행을 목격한 사건’이려니 짐작한다. 막상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 그런 사람은 없고 “다른 어떤 개와도 바꿀 수 없는 나의 피터에게”라는 헌사와 함께 ‘밥’이라는 이름의 영리한 테리어가 등장한다. 개가 독자한테 말을 한다. 정확히는 헤이스팅스의 상상 1인칭 서술이다.
제목을 그냥 ‘개’라고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표현한 것 같은데 불평하는 독자가 왜 그리 많은지. 제목 짓기가 소설 쓰는 것보다 어렵다는 얘기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판 제목이 좋다. '푸아로, 고객을 잃다'
아룬델 양은 늙어서 죽은 것이고 그 이전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은 사고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푸아로는 살인이라며 살인범 추적을 시작한다.
모처럼 푸아로와 헤이스팅스가 콤비로 등장한다. 홈즈와 왓슨처럼 푸아로와 헤이스팅스는 같이 나와야 독자가 대하기 편하다. 한 사람이 빠지면 불편하다. 잘난 척하는 ‘인간’을 감싸줄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이 소설은 그나마 크리스티의 장편소설 중에서는 트릭이 적은 편이다. 후반부에 가서야 트릭이 두 개 나온다.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소설 대부분은 용의자들의 심리적 성향을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결과인 살인 사건과 원인인 살인범의 성향(지적 수준, 성격, 범행을 통해 얻는 이익 등)을 대조해 본다.
전형적인 크리스티 추리소설이다. 돈 많은 노인. 유서. 돈에 쪼들린 사람들. 애증의 거미줄. 어김없이 “다 모여. 내가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지.”식의 ‘푸아로 피날레’가 마지막을 장식하며 끝난다.
유산을 둘러싼 친인척의 갈등은 실제가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더 비열하고 더 더럽고 더 쌍스럽다. 죽은 자에 대한 슬픔 따위는 없다.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다. 전쟁 전리품 챙기는 것과 똑같다. 벙어리 목격자 ‘밥’은 푸아로가 차지해서 헤이스팅스에게 전달한다. 푸아로 성격에 개를 키울 순 없지.
※ ‘벙어리 목격자’는 반드시 ‘구름 속의 죽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푸른 열차의 죽음’ 등을 읽은 후에 읽을 것! 이 책에서 푸아로가 지난 사건의 범인 이름을 말한다. 살인보다 무서운 스포일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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