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의 카드
애거서 크리스티
황금가지
해문출판사
Card on the Table (1936)

가장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을 트릭과 교란으로 숨겨서 반전을 만드는 일에 지쳤는지, 애 여사는 '테이블 위의 카드'에서 추리소설 독자를 위해 이와는 정반대로 승부수를 던졌다. 전작에서 보여준 '연기의 신' 같은 속임수는 없다. 세월이 지나서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는 억지도 없다. 말하는 사람이 범인도 아니다. 공범자가 없음도 명백하다. 눈앞에 보이는 네 명 중에 한 명이며 범인이다. 모두 살인의 전과가 있다. 그 네 명을 조사하는 탐정들도 마련해 준다. 사립탐정 푸아로, 런던 경시청 배틀 총경, 추리소설가 올리버 부인(아리아드네 올리버), 비밀요원 레이스 대령. 4대 4의 대결! 올스타 청백전?

심리 추리의 예술을 보여준다. 전작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서 그 사람이 읽는 책에서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과 기질을 추리해냈는데, 이번 '테이블 위의 카드'에서는 카드놀이를 하는 방식과 관찰 방식에서 그 사람의 행동 방식을 알아낸다.

네 사람이 브리지 카드 게임을 하던 중에 살인이 일어난다. 그랜드 슬램, 비딩, 러버? 해당 카드 게임의 규칙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이지 알 수가 없었으나 추리에는 별 무리가 없다.

푸아로가 이번에도 엉뚱해 보이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춘다. 브리지 점수표에 무한 관심을 둔다. 용의자들한테 사건 당시 방 안에 있던 것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해 보라고 묻는다. 용의자들의 심리를 이해한 후 범행에 맞는지 여부를 따져서 범인을 잡아낸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우스꽝스럽게 만든 캐릭터 '올리버 부인'을 통해 추리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말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이야기를 쓰려면 머리를 굴려야 하거든. 그리고 머리 굴리는 건 항상 골치 아픈 일이지. 그리고 구성도 짜야 한다고. 그러다가 종종 막히게 마련이고, 막히면 거기서 영영 못 빠져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 그러다 결국엔 빠져나오지만. 글 쓰는 건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일이 아니에요. 다른 것들처럼 힘든 일이지."(188쪽).

"이야기야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어요. 그걸 종이에 옮기는 게 힘들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6천 자가 아니라 3천 자밖에 못 써서, 살인 사건을 또 하나 집어넣고 여주인공을 또 한 번 납치해야 한다니까. 아주 골치 아파요."(189쪽)

미스 마플이 나오는 소설을 올리버 여사가 쓴 것으로 나온다. "'서재의 시체'를 쓰신 그분이요?"(25쪽) '테이블 위의 카드'를 발표한 1936년 당시에 크리스티는 '서재의 시체'를 쓰지 않았다. '서재의 시체'는 1942년에 출판했다.

N메틸 사이클로 헥세닐 메틸 말로닐 요소를 정맥에 다량 투여하면 즉시 의식을 잃게 된단다. 수면제 복용 후 투여하면 치명적이고. 소설에서 그렇게 말하는데, 실제로 그런지 확인은 못했다. 무슨 의약품 이름이 이렇게 길고 복잡한지.

주의사항. 이 책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은 후에 읽어라. 작가가 대놓고 스포일러를 써 놓았다! 전작의 살인범과 살해 방법을 푸아로의 입을 통해 말해 버린다.

Posted by lovego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