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덫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금가지 펴냄
Three Blind Mice and Other Stories (1950)
황금가지 번역본은 '쥐덫'을 포함해서 9편을 수록한 단편집이다.
미스 마플 출연작 4편, 푸아로 출연작 3편, 할리 퀸 출연작 1편이다.
쥐덫 Three Blind Mice
중편소설 '쥐덫'은 장편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만큼이나 유명하다. 두 소설이 닮았다. 사람들이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고 동요를 부르면서 한 사람씩 살해당한다. 도대체 범인이 누군이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반전으로 끝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축소판이다. 동요에서 살인된다고 예고하는 사람 수가 10명이 아니라 3명이고, 섬이 아니라 폭설로 고립된 하숙집이다. 서로를 살인범으로 의심하며 궁지에 몰린다.
반전은 추리소설의 규칙을 위반해서 만들었다. 규칙을 위반하는 게 규칙이 되어 버리는 이상한, 미스터리 소설의 세계다. 아주 흔한 반칙이다. 내가 그 반칙을 얘기하면 추리소설 서평의 반칙이겠지.
'Three Blind Mice'는 라디오 드라마 극본을 소설로 바꾼 것이다. 왕비 생일 축하용 드라마 제작을 의뢰받고서 1주일만에 써냈다고.
이 소설은 장기 공연으로 유명한 연극 'The Mousetrap'의 희곡으로 제목을 바꿔 개작된다. 이 이야기는 연극으로 안성맞춤이다. 장소와 인물이 극단적으로 제한된 상황이다. 작은 하숙집 안에서만 사건이 벌어지고 등장인물은 여덟 명이다.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인물들끼리 서로를 살인범으로 의심하며 죽음의 공포에 떤다.
괴상한 장난 Strange Jest - 미스 마플 출연작
보물 찾기 이야기다. 장난꾸러기 할아버지는 집 안 어딘가에 유산을 남긴 것이 분명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어, 곧 결혼할 커플이 유명한 탐정인 미스 마플에게 의뢰한다. 숨겨진 보물은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유서이거나 상자 속 보석 따위는 아니었다. 너무 눈에 빤히 보여서 보이지 않는 보물이었다.
미스 마플은 작은 마을에서 오래 산 경험을 통해 인간 본성과 범죄 사건을 많이 알고 있다. 푸아로처럼 대단한 추리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비슷한 옛 일이나 옛 사람을 기억의 샘에서 퍼올려 사건을 해결한다.
줄자 살인 사건 The Tape-Measure Murder - 미스 마플 출연작
제목에 범인과 범행 수법이 보이는 이야기다. 이제 남은 수수께끼는 범행 동기와 범행 입증이다.
돈 많은 아내가 목이 줄려 죽었는데 슬퍼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남편. 입소문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퍼지는 작은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 마을 사람들은 남편이 죽였을 거라고 수근거린다. 심지어 수사하는 경찰마저 그렇게 확신한다. 죽은 부인은 최근 마을에 들어온 잘생긴 청년과 만났다는 소문이 돈다.
미스 마플은 사소한 단서를 모아 사건을 간파한다. 줄자, 핀, 실내복, 도난 사건 등이 맞물려 진상이 보여지는, 추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완벽한 하녀 사건 The Case of the Perfect Maid - 미스 마플 출연작
브로치를 훔쳤다는 누명과 접시 하나를 깼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하녀 글래디스. 그녀를 해고한 스키너 자매의 집에는 완벽한 하녀가 들어온다. 메리 미드 마을 사람들은 그런 하녀를 구한 자매를 질투한다. 그러던 어느날 하녀는 사라지고 동네 집집마다 물건을 도둑맞는다.
미스 마플은 현명한 의심을 한다. 완벽한 하녀는 있을 수 없다. "완벽한 전범이란 걸 믿지 않아요. 우리들 중 대부분은 나름대로의 결점을 갖고 있지요. 그리고 집안일은 그 결점들을 이내 드러나게 하는 법이고요!"(180쪽) 마플 할머니는 일부러 가방을 떨어뜨려 하녀의 지문을 채취해 두는 '기발한 함정'을 마련한다.
반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주 쓰는 트릭인 '1인 2역 연기의 신'이 나와서 실망이었으나, 요즘 들어서는 추리소설에서는 당연히 반복되는 장르 규칙처럼 느껴진다, 미스 마플의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추리력은 대만족이었다. 푸아로보다 미스 마플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이 단편소설에서 확실히 알았다. 크리스티 여사가 푸아로는 죽이지만 마플은 살려둔 이유도 알겠더라.
관리인 사건 The Case of the Caretaker - 미스 마플 출연작
이 단편은 장편 '끝없는 밤 Endless Night'으로 개작되었다. 캐릭터 이름만 바뀌고 이야기 틀거리는 거의 그대로다.
오래된 건물을 부시고 새로 지은 집에 살기 시작한 신혼 부부. 그 오래된 집에 살았던 관리인 노파는 그들에게 불행이 닥칠 거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아내는 자꾸만 걱정이 되고 남편은 그 노파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내는 승마 중 낙마로 죽는다. 사람들이 별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믿는 저주를 이용한 범죄다.
나이 들어서 우울증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그 무엇이요."(183쪽) 안 그러면 "나를 원하거나 내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183쪽)라고 말하는 마플 할머니처럼 된다.
꾸며낸 이야기, 그것도 살인을 주로 다루는 추리소설에 빠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수많은 범죄 살인 이야기를 써낸 크리스티 본인은 정작 따분한 삶을 살았다. 주변에 살인은커녕 범죄 비슷한 일도 없었다고. 게다가 소설 쓰는 일을 취미로 여겨서 직업에는 '전업 주부'라고 썼다.
공동주택 4층 The Third Floor Flat - 에르퀼 푸아로 출연작
아파트 열쇠가 없어서 화물용 승강기를 이용해서 문을 열려다가 엉뚱한 층에 들렸는데, 나중에 보니 거기 살던 부인이 살해당했다. 마침 이 건물 5층에 살던 푸아로가 수사에 나선다. 살인범을 잡는 단서는 테이블, 우편물, 전등 스위치 등 사소한 것이다.
푸아로는 자신의 추리를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 용의자 한 명을 잠깐 기절시킨다.
사랑의 수호자답게 푸아로는 상처 받을 아가씨를 위로해 주라고 청년한테 말한다.
조니 웨이버리 사건 The Adventure of Johnny Waverly - 에르퀼 푸아로 출연작
푸아로와 헤이스팅스가 함께 나오는 경우, 대체로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조니 웨이버리라는 소년의 유괴 사건인데 일어나는 일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자연스럽지 못하고 이상한 부분을 짚어나가자 당혹스러운 진실이 밝혀진다.
조니를 유괴하겠다며 돈을 내 놓으라는 협박편지가 사건 발생 열흘 전부터 배달된다. 두 번째 편지에 날짜가, 세 번째 편지에는 시각까지 정해서 알린다. 사건 발생 당일에는 조니의 엄마가 독극물에 중독되고 조니의 아버지의 베개에는 '오늘 낮 정각'라고 쓴 메모지가 핀에 꽂혀 있었다.
드디어 괘종시계가 12시를 알린다.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밖에서 흉포한 인상의 사내를 체포한다. 하지만 그에게서 발견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지난 번에 수차례 받았던 편지와 같은 내용을 담은 메모였다. 조니의 아빠가 안도의 웃음을 지을 때 자동차 한 대가 조니를 태우고 남쪽 수위실로 도망쳤다. 이윽고 들리는 교회 종소리! 누군가 고의로 집 안 괘종시계를 10분 빠르게 해 놓았던 것이다.
사건 자체만 보면 황당하지만 질서와 방법으로 하나씩 논리적으로 맞춰 나아가보면 범인과 범행이 드러난다.
검은 딸기로 만든 '스물네 마리 검은 새' Four-and-Twenty Blackbirds - 에르퀼 푸아로 출연작
푸아로는 자주 가는 식당에서 항상 주문을 받는 종업원한테서 다소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식당의 10년 단골 신사가 갑자기 식습관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계 영감으로 불리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항상 똑같은 것을 먹기 때문에 안녕이라는 인사말 외에는 아무말도 안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월요일에 나타나 주문을 했다. 더구나 평소 가장 싫어했던 음식을 먹었단다. 검은 딸기 파이, 진한 토마토 주스, 콩팥 푸딩.
푸아로는 살인을 예감한다. 조사를 해 보니, 죽은 자는 평소 치아 관리를 잘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치아가 하얗고 건강했다고 한다. 이에 결정적 단서를 얻어 유산 관계를 알아 보니, 그의 조카가 의심스럽다.
알리바이 조작을 위한 1인2역 연기의 신 트릭은 반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작위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반전의 힘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요즘 추리소설가들조차 이 낡은 수법을 여전히 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의 특징은 결정적 단서가 흔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 등장인물 이름 보닝턴이 맨 끝 277쪽에서 버닝턴으로 나온다. 오타겠지.
사랑의 탐정 The Love Detectives - 할리 퀸 출연작
할리 퀸은 크리스티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만날 때마다 반가운 캐릭터다. 정체를 알 수 없고 갑자기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신비스러운 존재다.
퀸과 짝을 이루는 새터스웨이트는 그에 대한 칭찬을 수없이 한다. 푸아로나 홈즈처럼 저 잘난 맛에 사는 탐정이 아니다. 퀸은 보조 탐정(새터스웨이트)에 대한 칭찬을 아까지 않으며 겸손한 사람이다.
새터스웨이트 :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사건들은 모두 당신이 해결한 것 같은데요. 내가 아니라 말이에요."
할리 퀸 : "당신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해결된 거랍니다." (285~6쪽)
할리 퀸은 새터스웨이트가 사건 개요를 얘기해 주면 "당신은 예술가입니다."라는 칭찬을 해 준다.
퀸은 애증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내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다. 제목처럼 사랑의 탐정이다. "퀸 씨의 관심 분야는 연인들인 것 같네."(286쪽)
이 단편소설은 장편소설 '4개의 시계(해문)/ 시계들(황금가지)'과 닮은 사건이다. 소설의 내용을 빌려다 범행에 악용한다. 사건 현장과 목격자 진술이 지나치게 소설 같았기에 의심을 산다. 청동조각상에 머리가 깨져 살해된 남편. 6시 30분에 멈춘 시계. 죽은 남자의 아내는 자기가 총으로 쏴서 죽였다고 자백하고, 이 여자를 사랑했던 폴 데랑가는 여자의 남편을 칼로 찔러 죽였다고 말한다. "그들은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겁니다." "책에서 읽은 건 정말이지 기묘한 방식으로 떠오르는 법이니까요."(307쪽)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는 영국인이 아닌 외국인에 대해서 무조건 나쁘게 말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는 작가 본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당시 시대 사람들의 대다수 생각이다. "범세계적인 시각의 소유자라고 자부하는 새터스웨이트는 삶에 대한 섬나라(영국, 그 잘난 대영제국) 사람의 태도를 한탄할 자격이 있었다."(282쪽)라고 쓰는 걸 보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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