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The Clocks (1963)

시작부터 당혹스럽다. 시체를 발견했다며 어느 집에서 뛰쳐나오는 여자. 가서 보니 남자가 죽어 있었다. 남자의 옷에서 명함을 발견해서 보니 보험회사 직원이다. 집주인한테 혹시 보험을 들려고 만나려고 했냐고 물으니까 아니란다. 모르는 사람이란다. 게다가 시체를 발견한 여자 속기사도 부른 적이 없단다. 도대체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발견된 시계들이다. 역시나 집 주인은 자기 시계가 아니란다. 4개의 시계 모두 4시 13분을 가리키고 멈춰 있다. 시계에는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가? 이어서 살인 사건이 또 발생한다.

크리스티 소설에서 '연기의 신' 트릭에 워낙 많이 당해서 시체를 처음 발견한 여자를 의심했다. 하지만 글이 그쪽을 의심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 여자는 용의자에서 제외했다. 생각해 볼 구석이라고는 책 제목처럼 시계밖에 없었다. 뭐지? 뭘까? 뭐야? 궁금하네.

시계는 맥거핀이었다. 소설 원고를 타이핑해주는 곳이라고 얘기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속으라고 만든 장치니 안 빠질 수도 없다. 열심히 시계에 주목한다. 제목에 있지, 표지에 있지, 뭔가 있어 보이지.

유명 추리소설에 대한 평이 푸아로의 입을 통해 실려 있다. "셜록 홈즈 이야기는 현실성도 떨어지는 데다 오류도 많고 인위적이야. 하지만 글 쓰는 기술은, 아, 그건 전혀 다른 거지. 언어의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왓슨 박사라는 훌륭한 캐릭터를 창조해 냈어. 아, 그건 정말 대단한 성공이야."(187쪽) 독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셜록 홈즈지만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왓슨이 중요하다. 기상천외한 인물이야 만들면 그만이지만, 이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쓰는 일은 어렵다. 왓슨의 1인칭 서술로 실감나게 쓴 아서 코난 도일의 언어 기술력은 놀라운 것이다.

...

해문 번역본으로 다시 읽었다. 새로 읽는 기분이었다. 범인과 범행 수법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야기의 윤곽만 어렴풋이 안 상태로 읽었다.

첩보소설과 추리소설이 섞였다. 스파이 잡기와 살인범 체포를 동시에 해낸다. 첩보 관련 간단한 암호문이 있는데 풀기 쉽다. 너무 쉬워서 우스꽝스럽다.

초반부에 환상적인 상황을 만들어내서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푸아로가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전면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콜린 램이라는 배틀 총경의 아들과 램의 친구인 리처드 하드캐슬이 열심히 수사한다. 램이 사건 해결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관련 서류와 사건 이야기를 가지고 푸아로한테 간다. 언제나 그랬듯 푸아로는 들은 얘기와 관련자 진술만으로 사건을 단번에 해결한 듯 보이지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약을 올린다.

14장에서 푸아로가 온갖 추리소설을 비평한다. 물론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의 평가다. '노란 방의 비밀'과 '셜록 홈즈의 모험'을 극찬한다. 미국 탐정소설에서 알콜 중독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것을 비아냥거린다. "미국 스릴러 물에 나오는 탐정이 매 페이지에서 마셔대는 위스키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은 나에게 별로 흥미가 없다네. 그가 장식용 서랍에서 꺼낸 술을 1파인트 마시든, 반 파인트 마시든 그것이 이야기를 전행시키는 데에는 사실 영향을 주는 것 같지가 않으니까."(143쪽)

푸아로 피날레는 사건을 의뢰한 렘마저 살인 용의자로 올려 놓으면서 극에 달한다. 사건이 복잡해보일수록 그 해결은 단순한 법.

설명을 다 들었어도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하다. 시계 4개 중에 1개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페브마시 양 것인데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것일까. 이렇게 복잡한 수수께끼를 만들어서 기여코 반전을 만들어내야 할까. 머리 아프다.

푸아로 출연작이 그렇듯, 이번 소설에서도 한 커플 탄생했다. 본인 연애는 젬병이면서 남들 로맨스 성사를 왜 그렇게 잘하는지. 미스터리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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