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장례식을 마치고

장례식을 마치고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해문출판사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5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황금가지

After the Funeral (1953년) 영국판
Funerals are Fatal (1953년) 미국판

추리소설은 문제와 정답이 있는 수수께끼 게임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작가는 독자를 어떻게 속여서 범인을 모르게 할지 고민하게 되고 독자는 범인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인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20권 이상 읽어 치우면 그 다음부터는 트릭이 거의 다 보인다. 같은 트릭을 반복하거나 여러 트릭을 섞어 변형한다. 수학 문제를 많이 풀면 공식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정해진 속임수가 반복해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가 시작하면서부터 유난스럽게 보이는 코라는 딱 걸릴 수밖에 없다. 아, 그 지겨운 고전 트릭 ‘연기의 신’이 시작되는구나! 헬렌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하잖아. 헉, 웬걸 코라가 살해당한다. 어, 범인이 아닌가 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코라의 뒷바라지를 하는 길크리스트 양마저 독살을 당할 뻔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역시 가족들 중에 있군. 

책 맨 앞에 가계도가 그려져 있다. 자세히 살펴봐야겠군. 이렇게 생각하면 당신은 속는 것이다.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길을 택하도록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다. 이쪽이야, 이쪽! 그쪽으로 가면 망한다. 

추리소설 트릭 대부분이 상식에 도전한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반전을 만들어야 한다. 아버지가 부자다. 상속자는 아들이다. 아버지가 살해당했다. 범인은 아들이다. 이러면 추리소설이 안 된다. 아들이 자기가 아버지를 살해할 거라고 주변에 떠벌리고는 범행 당시에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면, 추리소설이다. 의문이 있고 트릭의 베일이 있으며 정답은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려야 한다. 반전의 기술이다. 

섬세하게 뿌려 놓은 복선을 수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경이롭다.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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