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북하우스 펴냄

챈들러 소설은 잘 안 읽혔다. 읽다가 포기한 것인 수차례다. 필립 말로의 매력에 한없이 빠진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걸 뭐 좋다고 읽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만만치 않게 많다. 이처럼 확연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문장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챈들러의 소설을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기상천외한 직유 표현 문장을 읽기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좋으냐 싫으냐가 결정된다. 하드보일드 소설 문체의 특징은 간결함인데, 이 작가는 한없이 뭐뭐 처럼을 반복해서 문장을 만들어 길게 만든다. 게다가 묘사가 시작되면 세세해서 읽다가 잠들기 일수다.

누가 뭐라 해도 레이먼드 챈들러는 직유의 천재다. 수사법에서 직유법을 많이 쓰면 유치하고 문장이 길어지기 때문에 삼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정말 잘 쓸 수 있다면, 챈들러만큼 쓸 수 있다면 직유법을 남발해도 독자는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재미있는 직유 문장만 모아서 읽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직유법을 쓰면 문장이 길어진다. "그녀는 '돌로 된 사람처럼'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문학적인 문장이 되거나 말장난 문장이 된다. "그녀는 번개같이 계단 밑을 향해 방을 가로지르더니 사슴처럼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런 문장인 것이다.

챈들러는 소설가들이 좋아하는 소설가다. 문장과 주제의식이 좋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문장은 읽는 맛이 있다. 대화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은유는 이렇게 쓰고 직유는 저렇게 쓰면 좋구나. 묘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소설을 쓰려는 이는 배울 것이 많다. 특히, 소설 끝에서 브랜디를 마신 것처럼 마음 속에 퍼지는 훈훈한 감동은 맛을 들이면 챈들러 중독자가 된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은 읽어도 소설가들이 별다른 영감이나 격려를 받지 못한다. 복잡하고도 기이한 플롯 트릭의 재미만 있을 뿐 멋진 문장도 깊은 감동도 없다. 크리스티의 소설은 글로 쓰여진 만화 게임 오락이지 감동적인 문장 문예 작품이 아니다.

'빅 슬립'은 에둘러 진실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탐정이 의뢰를 받은 사건은 가이거라는 협박범을 떼어내 달라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이 의뢰받은 것이 러스티 리건이라는 사람의 실종 사건이냐고 묻거나 그렇다고 확신한다. 나는 리건이란 사람 찾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결국 리건을 찾게 된다, 씁쓸하게. 마치 기사의 성배 찾기처럼 그토록 가까이에 있는 것을 모르고 헤매는 것이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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