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1권은 어쩌어찌해서 우에하라 식구들이 도쿄를 떠나 남쪽 아주 작은 섬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이야기였다. 2권은 이 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태평하게 살려니 싶더니 이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아주 난리가 났다.
오키나와는 여러 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겪었다. 본래 독립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우리나라와 교류했다. 그때 나라 이름이 유구였다. 1879년 일본 본토에 강제로 합병되었다. 1945년에는 미국 군정에 들어가고 아예 미군 기지로 전락했었다. 그럼에도 현재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해 긍지와 자존심이 대단하고 전통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아마도 창작의 계기가 오키나와의 역사였던 듯하다. 지은이는 이 오키나와 섬의 과거 역사적 전설과 사실에 허구로 꾸며낸 아니키스트 부부의 모습을 겹쳐 놓는다. 소설 마지막에 그 역사를 자세히 소개한다.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통에 마치 이웃집에서 벌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적절한 표현과 적당한 수식으로 일본 칼처럼 정확하게 딱 그만큼 쓴다. 술을 넘치지 않게 잔 꼭대기까지 정확히 부은 듯. 귀신 같은 솜씨다.
이 시대 마지막 아나키스트 부부는 현실을 떠나 낙원의 섬으로 향한다. 히데오다운 태평한 결말이다. 죽거나 상처 받은 사람은 없었다. 참, 동물 한 마리가 죽긴 했다.
읽으면서 웃고 있다가 문득 날카로운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진심으로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인생을 모조리 걸어야 하는 일이야."(8쪽)
"인간이란 모두 전설을 원하지. 그런 전설을 믿으며 꿈을 꿔보는 거야."(51쪽)
"모모코, 어떤 판단이든 그렇게 너한테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내려서는 안 돼."(141쪽)
"추구하지 않는 놈에게는 어떤 말도 소용없지."(232쪽)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287쪽)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이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288쪽)
소설에서 속 시원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뭐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거나 당신이나 나나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오노, 신채호, 스피노자, 소로, 서준식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그들처럼 행동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몇몇은 실행에 옮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위대한 개인주의자(아나키스트라는 말보다는 이 말이 더 낫다.)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신념과 용기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신성함이 그들에겐 있다. 지로의 아버님 말씀처럼 평범한 사람은 따라하는 게 아니다. 따라할 수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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